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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니콜 크라우스 <남자가 된다는 것>에서 <에르샤디를 보다>가 제일 좋았다. <에르샤디를 보다>의 세 축은 영화, 영화를 본 나, 영화를 본 친구이다. 이들이 본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이다. <체리향기>는 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지만 소설은 <체리향기>의 핵심적인 메세지인, 삶을 소중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삶을 소중히 하는 것 앞에 선행하는 것은 허무와 두려움이다. 허무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소중히 한다는 것인데, 빗소리, 새소리같은 자연의 소리,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소리-우리는 이곳에 음향을 수집하러 왔다는 키아로스타미의 말은 작지만 삶에서 소중히 해야할 것을 의미한다.
소설의 두 인물은 성취 지향적 삶을 살았거나 아버지의 사랑이 결핍된 삶을 살았다. 두 삶 모두 공허함에 빠진다. 그때 이들은 우연히 <체리향기>를 보고 일어서는 것이다. 영화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시키다 삶이 변화되는 과정이 참 좋았다.
국회방송에 <오유경의 인생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책을 소개하는데 재미가 없다. 언급하는 책 중에는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소개되곤 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이 많은데, 그걸 소개하는 정치인이 하는 소리도 필독서 소개에 나오는 뻔한 소리이다. 정치인의 행위는 모든 게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책을 소개할 때도 본인의 정치철학을 말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걸 감안해도 정치인이 하는 책소개를 들으면 이 사람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이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겠다고 꿈을 말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고전에 깊이 감명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나는 왜 심드렁한 기분만 느낄 뿐인가.
<에르샤디를 보다>의 두 인물-결핍된 두 영혼이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를 대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책 소개하는 정치인한테서 보고 싶은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히틀러가 읽은 책 목록을 보라. 하지만 책을 읽은 뒤 나의 결핍을 고백하고, 내 눈이 하찮은 것에도 마음을 쓰는 눈으로 바뀌는 건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선물을 발견하는 눈과, 선물을 선물로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