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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임종학 강의
모니카 렌츠 지음, 전진만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평점 :
죽음을 다룬 책을 하나 둘 모으고 있다. 나는 주제별, 장르별, 작가별로 책을 정리해 놓고 있는데 방 오른쪽 서가에는 죽음에 대한 책만 꽂아 놓았다.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 에드가 모랭의 <인간과 죽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신, 죽음 그리고 시간>, 어네스트 베커의 <The Denial of Death>,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 다닐로 키슈의 <죽은 자들의 백과사전>, C.S.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이 꽂혀 있고, 책이 말하는 바가 전부 달라 죽음을 고요한 마음으로 살펴 보고 있다.
예컨대 필립 아리에스는 <죽음 앞의 인간>에서 중세에서 근대까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갖는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보여주었고, 에드가 모랭은 <인간과 죽음>에서 삶과 죽음을 연결시켜 인간을 통해서 죽음을 알고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현대 사회가 위생 보건 상의 이유로 죽어가는 자를 격리시켜 만든 고독이 죽어가는 자의 죽음을 앞당긴다고 했고, 박완서와 C.S 루이스는 사랑하는 자가 죽은 슬픔을 신의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모니카 렌치는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에서 죽어가는 자들은 죽음 앞에서 신적인 완성을 좇는다며 죽어가는 자들의 임상사례를 비추면서 말한다.
저자는 정신종양학 의사로 환자들에게 상담치료를 한다고 한다. 고통을 완화시키도록 도와주고, 꿈속 상징을 해석해 준다고 했다. 트라우마에 대처하도록 도와주고, 긴장을 완화시켜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에서 죽어가는 자의 신체적 변화를 내세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보였다. 임사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저자는 죽음이 대결에서 평온으로, 불안에서 신뢰로 바뀌는 것(p242)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것은 두려워 할 일, 창피스러운 일이 될 수 없다.
차인표에 따르면, 김영애 씨가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마지막 촬영을 하며 "나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50회가 끝날 때까지만 살아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부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제작진이나 연기자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내가 아픈 것 때문에 누가 안되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다고 한다. 촬영이 끝난 뒤 수의와 영정사진을 직접 고르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한다.
김영애 씨처럼, 살아 있는 한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 삶을 즐기는 것은 죽음 앞에 선 자의 존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어가는 자가 존엄을 잃지 않고 죽어갈 수 있게 사회가 죽어가는 자를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모니카 렌치의 글을 읽었다. 모니카 렌치의 책을 서가에 꽂아 놓았다...
●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죽음이 위협받고 있다. 온전한 과정으로서의 죽음에게 죽음이 본래 갖고 있었던 존엄을 돌려주어야 한다. 여기서 존엄이란 인간 삶의 드라마에서 종막을 장식하는 위대함과 의미 앞에서 정의를 표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죽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으레 겪는 경험들이 비록 그들 내면 안에서 너무나 강렬하고 영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도 그 모두가 진실임을 그들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 p228-229
● 임종준비란 죽어가는 사람의 내적 요구를 들어주고 그 이후에 그가 편안히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의 문턱을 넘는 과정과 인지 감각의 변화에 대해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자극받았던 이전 상태로 복귀시켜서도 안 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제공했던 자기중심적인 세계에 계속 머무리라고 말해서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세를 떠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우리는 그들 내면에서 충돌하는 모순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과도한 의료 조치로 억지로 목숨을 부지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그건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다. p2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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