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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불능의 물건에 잠재된 능력, 경시받고 죽어 있는 대상물 속에서 사랑스럽게 재생되는 생명, 아무것도 아닌 것들 속에 깃든 의미 있는 어떤 것에 끌린다. p99-100”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자기가 흔하고 하찮은 것들을 수집해 왔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살면서 겪은 소외와 상실감에서 비롯된 일인데, 그가 수집으로 세계의 낯섬을 받아들이고 배웠다(p169)고 하더라도 값이 나가고 희귀한 것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흔하고 하찮은 것을 수집하다니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안다. 그는 인류의 삶이 많은 것을 파괴한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이고, 탐욕를 채우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해야했던, 파괴의 역사이다. 인간은 약한 이들을 유린했으며 환경을 오염시켰다. 동물의 개체수와 동물이 살 터전이 줄어들었다. 무기를 개발했고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세계를 자신의 탐욕에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에만 관심이 있었다. 흔하고 하찮은 것들을, 인간 탐욕은 제일 먼저 소외시켰고 이용했다.
비가 와 미세먼지가 옅어진 공기, 시골 밤하늘에서만 보이는 별, 담벼락을 날아 다니는 민들레 꽃씨, 보도 블록 사이로 핀 잡초 한 송이, 골목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이 제일 소중하다. 통조림 라벨, 과자 봉지, 우편 봉투 속지처럼 흔하고 하찮은 것들이 소중하다. 그것들은 인간 탐욕의 역사가 제일 먼저 희생시킨 것들이기에 비록 지금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100년 뒤 우리 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지도 모를 것들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살아남은 이 작은 것들은 아름답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의 수집 역사에서 그가 부딪친 소외와 상실감의 시간을 읽을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소외당했고 상실되었던, 인류의 긴 시간이 투영되는 것을 발견했다.
작고 하찮은 것들을 나도 수집해야겠다. 수집이 어렵더라면 소중히 여겨야겠다. 꽃에 물을 줘야 겠다, 아버지와 대화를 해야겠다, 친구한테 손편지를 써야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겠다, 한글을 더 써야겠다. 지금도 사라져 가고 있는, 제일 먼저 사라질 것들이니...
*수집은 세계의 낯섦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것은 방랑벽의 한 형식이다. p169
*수집에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훈련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수집은 실질적인 포옹의 경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p168
*어떤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다른 수집가들은 모두 죄가 더 큰 사람들이다. p251
*사람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는 수집 충동은 극도로 풍요로운 물질사회에서 우리가 받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다수가 각자의 개인사에서 받는 상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수집이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그 효과는 충분할 정도로 좋다. 수집은 사물에서 질서를, 보존에서 미덕을, 모호함에서 지식을 발견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수집이 가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심지어 가치를 창조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p26
*수집이라는 행위는 ‘종교적’이다. 모으거나 한데 묶는다는 어원상의 의미로 볼 때 그렇다. 진귀한 대상물들이 연합되고, 신성한(또는 악마적인) 것이 수집할 만한 대상물 속에 깃든다. 수집은 일종의 마법이다.(또는 기도다.) p79
*나는 불능의 물건에 잠재된 능력, 경시받고 죽어 있는 대상물 속에서 사랑스럽게 재생되는 생명, 아무것도 아닌 것들 속에 깃든 의미 있는 어떤 것에 끌린다. 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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