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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물잔에 빠뜨린 각설탕처럼 내 사적인 삶이 막 부스러지기 시작하던 지난해의 여름, 이후의 진짜 작별들이 아직 전조에 불과했던시기에 ‘작별‘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었다. 진눈깨비 속에 녹아서사라지는 눈- 여자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정말 마지막 인사일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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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아니니받아들였을 때 초래되는 훨씬더비고 파괴적인 결과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지독한 자기비하의결국 위험하고 난폭한 성향이 되어, 자신을 거듭거듭 욕보이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다른 부류는 자기 정지키하고, 자신들에게 부족한 강한 자아상을 건네주는 구조 속으로-어간다. 대부분은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지만 말없이. 이름도그것을 표현하거나 인정할 목소리도 없이 붕괴하는 사람도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아를 일으켜세울 ‘두 다리‘를 가지기아이들에게 자존감의 종말은 금방,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무관모와 무시하는 어른, 자체의 언어와 법과 이미지로 절망을 ?
세상에 어린 나이라는 취약성이 더해지면 파멸로 이르는 길은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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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내가 가진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무언가 요구가 있을 때 가능하면 그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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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essa 2024-06-27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좋은하루되세요^^!
 

삶의 단위는 이제국가가 아니라 도시입니다.
뉴요커와 서울러의 정체성은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몰려들었습니다. 도시공학을 전공한건축가에게 지방과 서울의 균형 발전이라는 오랜 숙제에 관해 질문하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서울은 부산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도쿄나 상하이 또는 뉴욕과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국경을 넘어 자기 삶의 범주를 확장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은 세계 여러 도시를 오가며 삽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과 부산의 비교우위를 논하는 것은 한가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검색 엔진에 ‘visa for skilled workers(숙련 노동자 비자)‘라고 넣으면 여러 국가들이 주르륵 올라옵니다. 자신만의 전문성으로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으며 자신이 머무르는도시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비자 제도입니다.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의 취업 허가를 제공하고 부모님을모셔올 수 있으며, 1년~3년 이내에 영주권 취득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에, 심지어 중간에 직업을 바꿀 수 있다는 너그러운 비자가 이민에 까다롭던 일본에서 허용되었습니다. 3

까요? 칭찬은 개인에게 해야 하고 책임은 같이 져야 합니다.
칭찬은 집단으로 받고 책임은 개인이 지는 구조에서는 먼저나서는 사람이 바보가 됩니다. 이처럼 다양성의 이점도 조직의 문화가 바뀌어야 실효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다양성보다 선행해야 할 것이 형평성입니다.
형평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안전함을 느껴야 구성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또 다음이야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평성이 먼저, 포용성이 그다음, 마지막이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은 형평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맺은 열매입니다.
다양성은 항상 포용성과 함께 갑니다. 포용성이 가지를드리우지 않으면 다양성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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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고맙고 아쉬웠던 나의 아버지,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 다른듯 하지만
쉽게 읽혀지지 않는 뭉클함이 있었다.
노후를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가 아버지의 자리가
어땠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아버지의 인생에 영향을 미던 사건들, 나 역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내가 부모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글과 같은 글이. - P19

어느 일요일, 미사가 끝난 후, 열두 살이었던 나는아버지와 함께 시청의 커다란 계단을 올랐다. 우리는시립 도서관의 문을 찾았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나는 너무 신이 나 있었다. 문 뒤로 아무 소리도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문을 밀었다. 그곳은조용했다. 교회보다 더, 마룻바닥은 삐걱거렸고 무엇보다고 오래되고 낯선 냄새가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서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높은 데스크에서 우리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내가 질문을 하는 동안 잠자코 있었다. 책을 빌리러 왔어요." 둘 중의 한 남자가 바로 대답했다. "무슨 책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집에서 원하는책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비스킷 상표를 대듯 쉽게 책의 이름을 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우리 대신 내게는 콜롱바를, 아버지에게는 모파상의 가벼운 소설을 골라줬다. 우리는도서관에 다시 가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반납 기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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