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평점 :
처음 읽은 서경식 교수의 책은 <디아스포라 기행>이였다. 그동안 전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재일 동포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였고, 과연 민족과 디아스포라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하게 만들어 준 책이였다. 디아스포라로서 겪었던 그의 정체성의 고민들과 국가에 관한 의문과 끊임없는 탐구가 유려한 문체로 적혀 있었다. 곧 그에게 매료되었고 <소년의 눈물>,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디아스포라의 눈>, <시대를 건너는 법>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어려운 부분은 어려운 대로 놔두었다. 예를 들면 일본의 문화에 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기에 <소년의 눈물>에서 그가 유년시절에 읽고 보았던 일본의 도서와 영화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부분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력적이고, 색다른 깨달음이 되었다.
<청춘의 사신>은 그가 1983년부터 유럽의 미술관을 순례하며 알게 된 화가들의 삶과 작품들의 견문기를 모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림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의 두 형님은 모국인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박정희 군사 정권때 간첩 혐의를 받고 구속되었다. 그가 현실의 도피처로 유럽 여행을 떠날 때는 이미 형님들이 감옥에 구속된 지 1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자가 붙잡은 것은 그림이었다. 그림은 그에게 지하실 벽에 뚫린 작은 ‘창’이었다. 그 창을 통해 그는 가까스로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그림이 함께 있어 전혀 모르는 화가를 만난다 할지라도 글을 읽으며 그림을 보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나름 그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모르는 화가들도 수두룩했다. 그림의 출처를 보면 분명 나도 가봤던 미술관이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그림들도 많았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그의 글 중에 20세기 회화의 대표작을 한 점만 고르라고 한다면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게르니카’를 고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 그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한다. 루브르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까스로 본 ‘모나리자’는 나의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너무 작아 자세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런던과 파리의 수많은 미술관들을 지나 마드리드에 도착한 다음 날 소피아 미술관에서 ‘게르니카’를 보는 순간 그 거대한 그림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게르니카’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 한참을 그 방에서 서성대었다. 고야의 그림들도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지만, 유럽에서 봤던 그림들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게르니카’였다. S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벤야민이 그토록 강조한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책을 읽으며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새로운 그림들을 보고 작가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기쁨. 꼭 언젠가 이 그림들을 보러 가리라 다짐하며 책장을 덮는다.
# pogrom :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
Shtetl : 러시아와 동유럽의 작은 유대인 마을
# 칸딘스키는 음악에서 ‘소리’와 마찬가지로 회화에서 ‘색채’와 ‘형태’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색채’와 ‘형태’만으로 예술가의 ‘내적 필연성’을 직접 표현하고자 했다. 61.
# 1892년에 브레멘에서 태어난 찌글러는 바이마르와 뮌휀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25년에 히틀러와 개인적으로 알게 되어, 뮌헨의 나찌당 수뇌부에 미술전문가로 참여했다. 1933년에 나찌가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새로 창설된 제국예술원의 인사위원회에 참여했고, 1936년에 제국예술원 총재의 지위에 올랐다. 같은 해에 찌글러는 선전부 장관 괴벨스의 명령을 받고, 1938년까지 독일 전역의 공립미술관에서 약 1만 2천 점의 판화와 데생, 약 5천 점의 회화를 압수했다. ‘퇴폐미술전’에는 찌글러의 주도로 압수된 작품들 가운데 112명 작가의 작품 730점이 전시되었다. 전시는 9개의 작품군으로 분류되어 이루어졌다.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