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 쾌락의 시대 - 지젝이 본 후기산업사회
권택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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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가 혹은 비평가의 사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낸 용어들의 정의가 각각 다르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철학서나 비평서를 읽다보면 대체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왜 철학자들은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비평가들은 별의별 이론들을 만들어 주장하는가? 칸트, 헤겔, 라캉, 데리다, 들뢰즈, 베르그송, 소쉬르, 푸코, 블랑쇼......그들의 책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속에 내 의식을 두드리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인내를 가지고 조금씩 다가간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으니 나에게도 기적 같은 깨달음의 날이 올 것이다.

  지젝의 <삐딱하기 보기>는 라캉을 이해하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책이다. 지젝은 나처럼 기본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영화(특히 히치콕의 작품)를 통해 라캉의 이론을 설명한다. 친절한 지젝씨를 통해 나는 라캉의 세계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잉여 쾌락의 시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젝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고 재구성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쓰인 책이다. 지젝과 더불어 여러 철학자들이 설명하는 여러 개념들이 체계적으로 비교,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비평가들의 기본적인 이론을 아는 독자라면 이 책은 무척이나 재밌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너무 재밌어서 다 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있긴 했지만 좋은 책이다. 정리하는 마음으로 책의 중요 개념을 요약해 놓는다.

 

* 후기 자본사회 - 잉여 쾌락의 사회. 인간은 잉여 쾌락의 존재이기 때문에, 물건이 넘쳐도 생산을 멈추지 못한다. 잉여가치(surplus value)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멈춘다. 잉여 쾌락의 시대는 물건이 아니라 쓰레기를 낳는다.

* 잉여 - 어느 한쪽에 고정할 수 없는 두 개의 대립 관계를 억지로 어느 한쪽에 고정시키녀 언제나 여분이 남는다. 이것이 잉여이다.

 

* 주이상스 - 주이상스는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삶의 에너지이기에 에로스가 없으면 살 희망도 사라진다.

라캉: 우주 만물을 생성케 하는 에너지. 증오와 파괴의 잔인함.

프로이드: 리비도(공격성, 죽음충동, 마조히즘)

 

* 잉여 주이상스(오브제 프티 아) - 지젝: 잉여 쾌락(not all); 언제나 여분이 존재한다.

잉여 주이상스는 욕망을 낳는 주이상스다. 채워도 남는 결핍, 딱 들어맞지 않기에 자꾸만 지연되는 삶의 목표, 그러기에 죽음으로 퇴행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삶의 동력.

방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아늑하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폭풍우는 아름답다. 스크린을 통해 보는 모든 폭력은 재미있다.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증오와 파괴적 충동은 칸막이 너머로 보이기 때문에 판타지를 만듬.

 

*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 이 둘이 일치하지 않는 한 삶은 지속된다. 젖처럼 보이지만 막상 다가가서 입에 대려는 순간 딱딱한 돌로 변하는 것이 욕망의 대상(라캉은 아무것도 아닌 텅 빈 해골이 베일을 쓰고 숭고한 이상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모든 욕망의 대상이라고 말함). 주체는 모든 결핍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대상을 향해 다가감. 그러나 막상 그 대상을 손에 쥐었을 때 고유 가치는 미끄러져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져버리고 주체는 다시 결핍을 느낌. 그러므로 판타지 속에서 욕망의 대상은 사용 가치가 아니고 교환가치. 대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는 날, 욕망은 멈춤. 자본주의에서 사용 가치란 존재하지 않음. 욕망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사용가치는 단 하나, 죽음 뿐이다.

 

* 잉여가치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지만 그보다 나은 것이 없듯 잉여 가치 역시 최선은 아니지만 그보다 나은 것은 없다. 아버지의 이름이 최선은 아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심연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러나 잉여가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택한 아버지의 이름이요, 텅 빈 기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잉여 가치가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되지 않고 실재계인 nothing 그 자체가 되면 불안해지고 주체가 소멸한다.

 

* 상상계 - 꿈과 목표를 가는 시기

* 실재계 - 그것을 잡는 순간

라캉: 타자. 환상을 가로지르는 타자.

지젝: 잉여, 우수리, 여분, 유령. all을 not all로 만드는 것.

* 상징계 - 상상계와 실재계의 반복이 일어나는 삶의 현장.

 

*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 -편지는 바라봄과 보임을 아는 주체의 손으로 넘어감. 따라서 바라봄과 있고 보임을 모르는 왕과 경감은 상상계에 갇혀 있고, 바라봄과 보임이 교차되는 곳에서 진리(편지)를 얻을 수 있음을 아는 장관과 뒤팽은 상징계로 진입하는 주체가 됨. 그런데 편지는 내용이 아닌 편지를 소유한 자가 권력을 가지는 기표. 텅 빈 기표가 주체의 자리를 결정함.

 

* 칸트 -순수이성이라는 경험적 인식과 그것을 뛰어넘는, 실천이성이라는 선험적 이성 제시함. 칸트의 순수이성은 쾌와 불쾌의 감흥이 인간의 의지를 결정하므로 인간 의지의 객관적 재현은 가능하지 않고 우발성만이 인간 의지를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줌.

>>그러나 의식이 아무리 옳다고 판단해도 실천의 영역에 들어서면 무의식이 주인이다. 칸트는 실천의 영역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직관이 아니라 몸이라는 사실을 모름. 법은 욕망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는 욕망을 만들어 우리를 살게 함. 지젝은 칸트가 잉여쾌락을 몰랐다고 말함. 초자아의 지나친 명령은 희생을 부르고, 희생은 쾌락을 낳고, 쾌락은 죽음을 낳음. 독일 군인들 히틀러 명령에 자신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음. 주인의 명령에 따라 완벽한 대상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

 

* 모방욕망(mimetic desire) -르네 지라르가 만든 개념. 모든 욕망에는 매개가 있음.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선하게 살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할 때 그 욕망은 신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 대타자는 신. 신은 가장 숭고한 존재. 그러기에 우리는 불안하지 않음. 신의 욕망을 모방할 때는 마음이 평화로움.

 

*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그림 내기 일화

제욱시스 -이교도의 신. 새들이 쪼아 먹으려 한 것은 진짜 포도. 진짜 포도를 똑같이 그릴 수 있다고 믿는 제욱시스는 진실이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믿는 실증주의자로 상상계적 착오에 빠져 있음. 그러므로 상상계적 자아는 그 포도를 쪼아 먹으려 하며, 포도가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함.

파라시오스 - 기독교적 신. 그는 죽음이 삶의 시작이고 오직 단 하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앎.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은 삶을 지배하는 절대 주인이 죽음이라는 진리. 파라시오스는 기독교가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되듯이 삶이 죽음을 가린 베일임을 암. 삶이 죽음에 의지할 때 우리는 신비한 베일을 벗기려 하지 말고 베일 그 자체를 숭배해야 함. 베일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베일을 숭배하는 것이 사랑. 베일 뒤에 진짜가 있다고 믿고 베일을 제거하려 들면 죽음이 만연하고 베일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불신하면 죽음이 만연함. 무정주부주의와 파시즘은 똑같이 베일을 걷고 죽음을 봄.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으로 이미 원초적인 죽음을 고백했기에 텅 빔과 대적할 수 있음.

 

* 나치즘은 우리에게 명료하면 할수록 무의식의 노예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31.

 

* 이상형이란 살기 위해, 삶의 목적을 위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 환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실재계와의 만남을 지연시키는 욕망의 미끼, 오브제 아이다. 55.

 

* 우리는 포르노를 보면서 혐오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흘러 그 장면을 상상 속에서 재현할 땐 성적 욕망을 느낀다. 베일을 벗긴 혐오스러운 ‘그것’을 주체가 상상 속에서 재현할 때 그것은 다시 판타지의 대상(잉여 쾌락)이 되기 때문이다. 59.

 

* 민주정치와 파시즘의 경계는 그리 견고하지 않다. 둘 다 민중의 함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63.

 

* 포르노 영화와 <현기증>이 어떻게 다른지 라캉의 공식에 대입해보자. 포르노에서 관객은 야한 장면에 사로잡히며, 주체가 되지 못하고 대상으로 전락한다. 관객은 폭력적인 성적 장면에 욕망을 종속시키고 자신을 그 대상과 동일시한다. 79.

 

* 삶은 죽음을 우회하여 천천히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렇게 천천히 가도록 만드는 욕망의 미끼가 잉여 쾌락이다. 도착증은 잉여 쾌락을 인정하지 못한다. 잉여 쾌락이라는 타자를 제거하려다 오히려 그 타자에게 먹히고 마는 것이 도착증이다. 85.

 

* 모든 제국주의 파시즘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행동한다. 그 목표는 결코 우수리와 여분과 잉여를 남겨선 안 되면 완벽한 자아 이상을 실현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자아 이상의 실현이란 바로 죽음이다. 그러므로 파시즘의 종착점은 죽음에 이르는 대상 파괴요 자아 파괴다. 113.

 

* 부러음과 증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사랑이란 승화되지 않으면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죽음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7.

 

* nothing이 승화되어 숭고하게 나타나지 않고 nothing 그대로 나타나는사회는 도착증에 걸린 사회다. 지젝은 후기 상품사회는 nothing을 먹는 사회라고 지적한다. 130.

 

* 아버지의 이름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연결짓는 잉여 쾌락이다. 그리고 이것이 숭고한 위치로 승화된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131.

 

* 미학은 파괴적인 증오와 악을 언어의 베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프로이트는 파괴적 리비도를 예술로 우회하여 분출시키는 것을 최고의 승화로 보았다. 163.

 

* 물은 사용가치를 갖는다. 콜라는 잉여 쾌락을 준다. 콜라는 처음 나왔을 때 교환가치를 갖지만 그 다음 단계에선 잉여 가치 자체를 생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인 없는 콜라, 슈거 프리 콜라, 다이어트 콜라.....이처럼 진짜 콜라의 맛은 사라지고 각종 상표가 덧붙여 잉여 가치만이 남는다.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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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 2 위대한 영화 2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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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로저 에버트.....이제는 모두 고인이 된 위대한 영화 비평가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영화 분석은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 내가 에버트의 글을 읽고 그가 언급한 영화를 찾아보듯이. 에버트의 글은 어렵지 않다. 그는 영화를 차별하지 않는다. 책에 언급된 영화들 중 몇 편은 위대한 영화에 속하기엔 조금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담백한 글을 읽고 나면 그 영화에 담긴 위대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에버트의 글은 재미있다. 수십 편의 영화들이 담겨 있기에 책도 두껍고, 수많은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 줄거리가 끝도 없이 쏟아져 어지럽기도 하지만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노련한 영화 평론가의 시각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영화를 보는 나의 시각도 향상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으로 인해 봐야 할 영화 목록은 좀 더 늘어났고 영화에 대한 사랑은 좀 더 자랐으며 위대한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심은 최고로 치솟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이라면, 방 안에서 며칠 째 책만 읽고 있자니 점점 동굴 속 곰이 되어 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어서 쌓여있는 영화와 책을 꼭꼭 씹어 먹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지.

 

* 이것은 <위대한 영화>의 두 번째 책이다. 그러나 이 안에 들어 있는 작품들은 2진이 아니다. 나는 랭킹과 리스트를 믿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10편’ 등을 밝혀달라는 권유도 나는 거부한다. 그런 리스트들은 무의미하며, 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날짜가 바뀌는 순간에 리스트의 내용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게 이 방침에 대한 예외는 딱 두 가지다. 먼저 나는 해마다 그해 최고의 작품들을 선정하는데, 영화평론가라면 모름지기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법률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사이드 앤 사운드>가 전세계의 감독들과 평론가들을 상대로 매 10년마다 실시하는 설문조사에 참여한다. -머릿말 중에서-

 

*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미화하지 않고는 말 할 수 없다. -구로사와-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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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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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는 1987년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포스터를 한 장 만들었다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흑백으로 분리되어 있고 그 위에는 한 문장을 적혀 있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 이 말은 여성의 몸이 출산과 유산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전쟁터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을 의도한 것이었으며, 그녀는 이 포스터를 낙태 권리 회복 시위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너의 몸이 전쟁터” 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풀어낼 수 있지만 현대인에게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각종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약품으로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병원과 미용 산업은 우리의 몸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여성들은 44 혹은 55 사이즈를 위해 남성들은 멋진 복근과 근육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절망한다. 수시로 먹어주어야 하는 다이어트 약과 영양제, 쌍꺼풀 수술부터 시작하여 안면수술까지 우리 몸은 편하게 쉴 기회가 없다. 왜? 못생기고 뚱뚱한 것은 죄라는 인식 때문이다. 외모가 경쟁력이고 날씬한 몸은 자기관리의 척도로 작용한다. 누가 이것을 규정하는가? 대중매체와 아름다움에 대해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다.

  <몸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해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았던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한 책이다.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식이장애, 비만, 멀쩡한 몸을 스스로는 흉하다고 인식하여 변형시키려고 하는 신체이형증, 성형중독, 섹스와 섹슈얼리티 문제, 사이버 공간에서 아바타에 몰두하는 경향 등등,, 그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영국의 심리 치료사인 작가는 사람들이 몸에 갇혀야만 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간다. 어쩌다 우리가 외모에 이렇게 집착하게 되었나? 어쩌다 미의 기준이 이렇게 획일화되었나?

  어쩌면 이 책은 모두가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편협했던 나의 생각들을 수정하고 바로 세우는 기회가 되었다.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이 아닌, 나 스스로 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기 원한다. 온갖 휘황찬란한 화장품과 성형 광고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과 함께 내면의 깨끗함을 위해 힘쓰길 원한다. 우리는 몸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몸에 갇혀 살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짧다.

 

* 내게(아바타) 인사를 한 뒤에 내 나이를 알고는 조용히 물러난 그 남자들은 어쩌면 내 동년배인지도 모른다. 장년기에 이른 그들은 다시 한번 젊음의 기억을 되살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 여기에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늙어가는 몸의 물질성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젊은 육신이다. 그것이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아니, 어쩌면 환상이기 때문에 더더욱. ‘쎄컨드 라이프’는 대안적 정체성을 창조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욕망의 투사를 가상으로 물질화해준다. 154.

 

* 사진가들은 아이들의 사진에도 디지털 수정을 가한다. 벌어진 치아나 흐트러진 머리칼은 아이의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특징을 포착한 것이라기보다, 인화하기 전에 바로잡아야 할 오점이다. 아이들은 점점 더 어린 나이에서부터 몸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174.

 

* 영양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당대 사람들의 견해를 표현한 것에 가깝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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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힘 - 파블로 네루다 시집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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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은 정호승 시인이 영문판 Fully Empowered 텍스트를 번역한 것이다. 네루다의 시는 어렵지 않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는 좋은 시이다. 네루다는 평범한 민중의 삶을 깊이 관찰하고, 그 속으로 들어와 공감한다. 따라서 그의 시는 꾸밈이 없고 생명력이 넘친다. 네루다는 칠레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가난으로 점철된 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는 절망 가운데에서도 충만한 힘을 느낀다. 그 힘이 시인을 살게 하며, 그의 시를 읽는 우리를 살게 한다.

 

 

* 아이 씻기기

 

지상에서 제이 오래된 사랑이

아이들의 조상을 씻기고 머리 빗겨,

다리와 무릎을 정상으로 만든다;

물은 솟아오르고, 비누는 미끄러지고,

티 없는 몸이 꽃과 어머니의

공기를 숨쉬기 위해 솟아오른다.

 

오 그 주의 깊은 조심성,

귀여운 속임수,

그 사랑스런 투쟁!

 

이제 머리카락은

목탄으로 이리저리 그어서 얽힌 생가죽,

톱밥과 오일,

검댕, 철사 그리고 게들로 얽힌-

그리하여 사랑이 참을성 있게,

참을성 있게,

양동이와 스펀지

빗과 타월을 준비하면

문지름과 빗질과 호박에서

오래된 검약에서 그리고 재스민에서

아이가 솟아오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해져서,

어머니의 팔에서 뛰어나오고,

다시 그 회오리바람을 타고 기어오르고,

진흙, 오일, 오줌, 그리고 잉크를 찾고,

스스로 다치고, 돌에 걸려 넘어진다.

그렇게, 새로 씻겨, 아이는 삶으로 뛰어든다;

나중에는 청결을 유지하는 시간밖에

없을 터이니, 그것도 그때는 생기 없이.

 

*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이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엇이 죽었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는 그게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그는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가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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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lfkf 2018-11-2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호승이 아니라 정현종이다 병신새끼야 한글도 못읽나 병신이
그리고 뭐가 어렵지 않냐 개새끼야 조또 모르는 새끼가 아는척은 니미랄
 
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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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서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르 중 하나는 시집이다. 시는 한 편 한 편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며 혹은 틈틈이 대화를 하며 읽기에 참 좋다.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한 쪽 면에 책들이 꽂혀 있기에 둘러보다 발견한 책이다. 신경림 시인께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들을 엮어 만든 시집인데 중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시들도 몇 편 있어 더욱 정답다. 단 몇 개의 단어로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시인들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엎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야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 입이 우물거리는,

 

꽃 피긴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 묵화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졋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문득 -정호승

 

문득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

그때처럼

수평선 위로

당신하고

걷고 싶었어요

 

 

*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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