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셔요, 우리
오래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찻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 마음에 끓어오르는
담백한 물빛 이야기를
큰 소리로 고백하지 않아도
익어서 더욱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차를 마셔요
오래 기뻐하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산을 닮은 어진 눈빛과
바다를 닮은 푸른 지혜로
치우침 없는 중용을 익히면서
언제나 은은한 미소를
지닐 수 있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싶거든
뜻대로만 되지 않는 세상 일들
혼자서 만들어 내는 쓸쓸함
남이 만들어 준 근심과 상처들을
단숨에 잊을 순 없어도
노여움을 품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며
차를 마시는 것은
사랑을 마시는 것
기쁨을 마시는 것
기다림을 마시는 것이라고
다시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가 서로의 눈빛에서 확인하는
고마운 행복이여
조용히 차를 마시는 동안
세월은 강으로 흐르고
조금씩 욕심을 버려서
더욱 맑아진 우리의 가슴속에선
어느 날 혼을 흔드는
아름다운 피리소리가 들려올테지요?
꽃잎
잎이 다칠까 봐 위에서 피는 꽃
꽃이 다칠까 봐 아래에 놓은 잎
그래서 예쁜 꽃잎이구나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콩 너는 죽었다
콩 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