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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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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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과 원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 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날이 밝아도 개와 말뚝 사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음.

 

직선:
등뼈와 말뚝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온몸으로 말뚝을 잡아당기는 발버둥과
대지처럼 미동도 않는 말뚝 사이에서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고요한 거리.
:
말뚝과 등거리에 있는 무수한 등뼈들의 궤적.
말뚝을 정점으로 좌우 위아래로 요동치는 등뼈.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려도 오차 없는 등거리.
격렬할수록 완벽한 주(圓周)의 곡선.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 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등뼈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굽어진 채 뛰고 꺾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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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둔다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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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

 

투명해진다. 하늘이 탁 트이고 딱지 앉았던 벌레구멍 터지고

남은 살 자잘히 바스러지고 잎맥만 선명히 남은 이파리

늦가을 바람을 그대로 관통시킨다

비로소 앞뒤 바람 가리지 않게 되었다

 

산책길에 언제부터인가 팽개쳐 있는 돌

문득 눈에 밟혀 길섶 잇몸에 박아준다

 

덮을 풀 한 포기 마른 나뭇잎 한장 없이

한데 잠든 돌 꿈을 꾼 아침

혹시 딴 데로 옮겨줄까 다가가니

그는 하얀 서리를 입고 앉아 있었다

괜찮다고,

하루 한 차례 볕도 든다고, 이처럼

마음 한가운데가 밑도 끝도 없이 내려앉는 절기엔

화사한 옷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앞의 햇볕 가리지 말아달라고*

 

* 그 돌이 디오게네스를 기억하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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