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소비다 - 상품 미학적 교육에 대한 비평
볼프강 울리히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 손으로 직접 가는, 나무로 만든 후추 용기는 양념을 치는 행위를 진정한 수공업처럼 보이게 만든다. 후추 알갱이를 미세하게 갈 때 생기는 소리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후추 용기가 60센티미터, 심지어는 80센티미터가 되는 경우, 후추를 치는 일 자체가 노동이 된다. 이 때 후추를 침으로써 요리가 완성되고, 마치 서명으로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는 것처럼 된다.

 

 

전기로 작동하든 수동으로 작동하든 후추를 갈 수 있는 용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무관심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식사과정을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으로, 가능한 한 품질 좋고 가공하지 않은 원재료처럼 보이며 무엇보다도 값비싼 향신료를 사용하는 전문가로 생각한다. 그와는 달리 미리 갈린 후추가 담긴 후추 병을 사용하는 사람은 속물처럼 보일수도 있는 위험을 어느 정도까지는 감수해야만 한다. 야심적으로 만들어진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와 달리, 이 경우에는 초조하고 약간은 억지로 부족함을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후추가 음식 위에 흩뿌려진다. 21-2

 

 

* 결과적으로 권력은 오히려 무력감으로 변하게 되고, 수용자는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만 조망할 수는 없는 상태에 괴로움을 느끼며, 최악의 경우 맥도날드의 정보지에서 보듯 정보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저널리스트 슈테판 쿠츠마니는 각각의 계란 원산지를 조사해보려고 했을 때 느낀 무력감을 모범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모든 계란에 반드시 인쇄되어야만 하는 숫자 코드로 구체적인 흔적에 다가갈 수는 있지만, 그 흔적을 뒤쫒아 가는 사람은 정신 나간 것 같은 순환적 고리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조만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장소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한다. 62-3

 

 

* 가게에서부터 이런 제품이 연출을 떠맡게 된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가족, 동반자, 친구를 위해 요리하고, 전문적 능력에 대해 칭찬을 듣고, 긴 주말을 자신의 부엌에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순간에 작동하는 내면의 영상을 연출하는 것이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기구가 눈에 띄고 특수한 형태로 제작될수록 더욱더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여러 연구에서 구매 결정이 다음 사실에 강하게 좌우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엄격하게 용도가 정해진 요리용 부속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그 기구들을 사용하면 새로운 실행 방법을 도입하고 요리의 상황을 좀 더 긍정적이고 감정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희망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84

 

 

* 유기농 제품과 공정 무역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비싸다는 점도 소비자에게 그의 깨끗한 양심을 확인해준다. 어쨌든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 사람은 생태와 지속성에 대해 입에 발린 고백만 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가 좀 더 신중하게 자원을 다루고 직원들에게 좀 더 많은 월급을 지불하거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에 신경을 쓰도록 재산의 일부분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깨끗한 양심을 얻는 것이 기본 구조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훨씬 강한 구매 동기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생산자는 소비자의 편에 서서 깨끗한 양심이 정당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자기가 하는 일을 투명하게 만들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세한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일을 드러낸다.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심하는 대신, 역설적으로 비싼 가격을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표시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깨끗한 양심을 추가적으로 지불한 돈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급부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한 소비 태도의 결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구매하고자 하는 원래의 상품이기도 하다. 164

 

 

* 과즙 음료를 비롯해 그것과 비슷한 제품을 사는 사람들이 양심의 오아시스에서 바라보면서 값싼 제품과 로하스 원칙을 따르지 않는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도덕적 의견을 보이는 것은 우려할 만한 태도다. 유기농 제품이나 도덕적 문구가 적힌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평가를 내리는 데 더 엄격하고 덜 관용적이라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분명 그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이 올바른 편에 있다는 약속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좀 더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이 보이는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서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보통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 대해 보이는 신랄한 말과 경멸적인 언급을 양심적 소비자에게서 더 자주 보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늘어난 텔레비전 시청 시간, 컴퓨터 게임, 비만과 연관되어 있고, 심한 불신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법률로 그런 생활양식을 금지하고자 한다. 174

 

 

* 지난 200년 동안 강력해진 교양 시민 계층은 계속 자신을 더 나은 인간이라고 느끼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예술에 몰두함으로써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진리와 선과도 특별히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교양이 없고 저속하다고 느끼는 그들 아래에 있는 계층과 그들이 표피적이고 속물적이라고 비난하는 그들 위에 있는 계층 모두를 향해 자만심을 드러내 보인다. 그들은 두 계층 모두에 음악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교양 시민이 교양과 예술을 이해하는 태도를 숭배하는 것과 비슷하게 소비 시민은 깨끗한 양심을 숭배하게 되었다. 179

* ‘몰스킨 제품 사용자’ 집단에 속한 다른 사용자의 사진은 역사 영화에 나오는 정지 화면 같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펜과 잉크를 사용해서 쓴 글이 있고, 사진도 부분적으로는 과거의 모습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그것은 흑백이나 세피아 색조로 처리되었다. ‘몰스킨’ 수첩과 함께 소재로서 특별히 사랑받은 것은 초, 찻잔 혹은 커피 잔이었다. 이런 부속물도 ‘명상적 삶’을 옹호한다. 동시에 이런 물건에서는 온기나 보호를 동경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그것은 현대적 삶에 깔려 있는 차가움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화면 구성에서조차 반현대적 생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

 

 

* 비트겐슈타인은 집에 사는 것을 일련의 제의적인 행동으로 생생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주제로 삼았다. 문을 여는 것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것, 창문을 여는 것 혹은 승강기를 이용하는 것이 그런 제식의 일부가 되었다. 모든 경우 그는 사물을 직접 연출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익숙한 것보다 약간 높은 곳에 문고리를 설치했다. 또한 무심코 행동하지 못하게 승강기의 잠금 장치는 이중으로 잠기거나 풀리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사물은 편안하고 유용한 역할에서 벗어나 현존하는 사물이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물은 사용자를 교육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지은 집이 “단호하고 섬세하게 듣는 해위와 훌륭한 태도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 같은 언급은 독일 수공업자 연맹의 요구에 들어맞는다. 그것은 미학에서 윤리학으로 통하는 길을 낼 수 있으며, ‘훌륭한 형식’으로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218

 

 

* “따라서 인간이 결국 죽는다는 사실은 정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많은 물건이 주변에 쌓여간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인간은 죽음에 순종해야 한다. 인간은 이사를 할 때 비로소 자기 주변에 물건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제대로 깨닫게 된다. 책만이 아니다. 편지, 크고 작은 종이, 신문, 깡통, 상자, 연고, 가루, 몇천 가지에 달하는 도구, 늙고 어리석은 그대여, 그대는 얼마나 자주 책상 서랍의 뒤쪽 모퉁이에 있는 오래된 종이봉투를 끄집어내서 열어보고, 사용하다 남은 라일락 차나 현삼 차 찌꺼기가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버릴지 혹은 다시 보관할지를 생각하는가? 서둘러 가서, 단번에 그 잡동사니와 작별을 고하라!

-프리드리히 테오도르 피셔, <많은 사람 중 한 사람>(1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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