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나태주 지음 / 푸른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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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한편이 갖는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때로 시는 연인의 다정한 속삭임, 달콤한 커피, 아이의 깨끗한 미소, 충분한 휴식처럼 다가온다. 특히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해야 할 일은 잔뜩 쌓여 있는, 추운 겨울의 오후라면 더욱 그렇다. 잠깐 휴식을 취하려 시집을 펼쳤는데 첫 장부터 너무 좋아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시는 모름지기 조금씩 읽어야 제 맛인데, 통째로 읽으니 더욱 맛있다. 시인의 언어는 단순하지만, 단순함이 아름다운 시를 만든다. 얇은 시집 한 권을 읽으며 시인의 삶을 엿본 기분이다. 시집의 맨 끝장에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정년퇴임하면서 결심한 일이 있다. 이제 나는 절대로 남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이 그것이다. 남을 위해서 먹기 싫은 술도 먹지 않겠고 가기 싫은 모임에도 가지 않을 것이며 만나기 싫은 사람은 단호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 좋은 대로만 살 것이다.” 아, 이 말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불필요한 만남과 일들을 줄여야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나보다 앞서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선언을 읽으며 생각한다. 하루가 저물고 있다. 충분한 하루였다.

 

* 꽃신

 

꽃을 신고 오시는 이

누구십니까?

 

아, 저만큼

봄님이시군요!

 

어렵게 어렵게 찾아 왔다가

잠시 있다 떠나가는 봄

 

짧기에 더욱 안타깝고

안쓰러운 사랑

 

사랑아 너도 갈 때는

꽃신 신고 가거라.

 

* 새사람

 

그럼요

날마다 새날이고

봄마다 새봄이구요

사람마다 새사람

 

그중에서도 당신은

새봄에 새로 그리운

사람 중에서도 첫 번째

새사람입니다.

 

* 새해 아침

 

언제나 좋은 벗

 

당신의 향기가

나를 살립니다.

 

* 충분한 하루

 

하나님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밝은 해를 보게 하시고

세 끼 밥을 먹게 하시고

성한 다리로 길을 걷게 하셨을뿐더러

길을 걸으며 새소리를 듣게 하셨으니

얼마나 크신 축복인지요

더구나 아무하고도 말다툼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 신세 크게 지지 않고 살게 해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제 빠르게 지나가는 저녁시간입니다

하나님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내일도 하루 충분하게 살게 하여주십시오.

 

* 오후

 

구름의 잔에

음악을 풀어 넣는다

 

비어 있는 인생이

문득 향기롭다.

 

* 귓속말 2

 

순간순간 어렵게 헤어지고

하루하루 힘들게 만난다

 

같이 가자 우리

멀리까지 같이 가자

 

울면서 말을 해도 너는 끝내

알아듣지 못한다.

 

* 마음을 얻다

 

있는 것도 없다고

당신이 말하면

없는 것이고

 

없는 것도 있다고

당신이 말하면

있는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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