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숙 작품집 지만지 고전선집 549
한무숙 지음, 김진희 엮음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명륜동에는 한무숙 문학관이 있다. 가끔 그곳을 지나며 한무숙 작가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미안함이 있었다.

   한무숙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편집엔 다른 단편들이 몇 편 더 있는데, 찾아보니 절판이 되어 이 책으로 링크를 걸어놓았다. 늘 이름만 듣다, 처음으로 작가의 단편을 읽었는데, 참 좋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정갈하고 깊이가 있다. 각 단편마다 어투와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 그 맛을 음미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 소재는 독특하고, 내용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돌> <감정이 있는 심연> <그대로의 잠을> <축제와 운명의 장소> <이사종의 아내> <생인손> 을 읽었는데, 몇며 단편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옮겨 적어본다.

 

* 그러고보니 ‘나’가 너무 벅차다. 다섯 자 일곱 치 열여덟 관의 육체가 ‘나’의 전 내용이라고 끊어 생각해 온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나’가 이렇게 벅차고 보니 어떤 것이 짜장 ‘나’인지 흐러터분해지는 것이다.

어젠가 해질 무렵 강에 비낀 무지개를 본 일이 있는데, 그렇게도 치밀하게 결합되었던 빛이 일곱가지 색으로 찬란하게 흐트러지는 것에 넋을 잃었다. 그것은 아름답기보다는 황홀하였다. 아침해에 아롱지는 풀 이슬같이 불안한 아름다움이기도 하였다. 무지개는 오 분을 그대로 지탱하고 있지 못하여 이내 사라지고, 무지개가 사라진 하늘에 엷은 구름이 모래처럼 흐르고 있었다.

허전하고 아쉬우면서도, 무지개가 사라지고 언제나와 같이 하늘이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체념이라고 할까, 무슨 안도 같은 느낌이 가슴에 번져 갔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것이 삶일지도 모른다고 그런 우발된 현상을 삶에 비겨본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지만, 사실 삶이란 허망한 하나의 과제이고 ‘나’라는 것은 무지개처럼 그것을 다양화하고 산일시킬 따름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돌 -

 

 

* 돈화문에 이르렀을 때였다. 싹트기 시작한 가로수의 자줏빛이 도는 연두색 윗가지를 쳐다보면 전아가 낮은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아까 그 백제 관음 말이에요. 난 그리면서 느꼈어요. 우린 지금 그것을 한 가지 유품으로만 취급허구 있지만 그걸 만든 사람은 하나의 의미를 그렇게 구상시킨 게 아니겠어요?”

무슨 말을 하려는 전제인지 몰라서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다안 지나가 버리구 마는 거지요. 사람두 의미까지두!”

그녀는 말을 끊고 한참 잠잠하다가 이번에는 딴사람 같은 잠긴 듯한 음성으로 다시 나직히 말을 이었다.

“나두 어떤 의미가 되구 싶었는데 -선생님헌테-”

“나헌테? 그야 말루 무슨 의미지?”

나는 어떤 기개 같은 것으로 음성이 겉떴다.

“글쎄 사랑일 것이라구 생각해 봤어요. ”

오히려 무감동할 정도로 조용한 어조였다. 단정하게 앞으로 향한 무표정한 옆얼굴이 창백하게 고상했다. 지금 내 옆을 거닐고 있는 바로 이 옆얼굴이다. -감정이 있는 심연 -

* 북받쳐 오르는 분노, 있는 대로의 벽마다에 머리를 부딪쳐 부숴 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막연히 느껴 오던 그 거미줄에 얽힌 것 같은 느낌, 언제나 문턱에서 거절당하는 인생에의 참가, 남들이 일상이 그리도 어려웠던 일들 - 그렇다. 한 벌 한 벌의 남저고리가 입혀질 때마다 한 인격으로부터 자유와 주체성을 박탈해 간 것이다.

숨이 가빠 왔다. 어디로든 우선 그 곳을 떠야 했다. 발에 무엇인가가 걸리는 것을 아무렇게나 차 버리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달은 없으나 창 너머 바라보는 밤하늘에 별이 차갑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못 오는 별빛, 저만치 북쪽 하늘에 돋아난 일곱 개의 보석들, 아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오해가 저 별들을 두고 이어져 왔던 것인가.

........

영호를 낳던 그 더운 날의 광경이 눈 앞에 떠오른다. 이윽고 그 깨끗한 어린 몸에 입혀졌던 남저고리, 앞으로 올 날들이-그에게도 터부가 많이 생기리라. 슬기롭고, 힘이 다른 아이보다 세더라도 골목 대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골목 대장이란 억세고 잔인성을 가지는 것이 일쑤니까. 그리하여 이니셔티브를 잃어버리리라.

무엇에든 흥미와 탐구심을 가져 사물의 있는 모습을 알고 싶어해도 안 된다. 장난감이라든가, 기계 같은 것의 구조가 알고 싶어 그것을 뜨기라도 해 보라. 어른들은 그런 행위에 흉행의 징조를 보고 기겁하여 말릴 것이다. 아이는 모르는 사이에 사물에 대한 관심을 잃고 밍숭하고 착한 아이가 되어 버리리라.

........

철창 이쪽에 끼워져 있는 창 유리에 겨울 밤이 빙화를 얼리는 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읽은 불란서 상징파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나를 잠재워 다오.

그대로의 잠을 재워 다오     - 그대로의 잠을 -

 

 

* 언덕 위는 온통 옥수수밭이어서, 달콤한 옥수수숲의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오곤 하였다. ‘그이’는 이 언덕을 사랑하고 마날 때는 언제나 그 곳을 택했다. 흰 저고리에 자주 치마를 받쳐입고 언덕으로 ‘그이’를 만나러 가는 옥희는 갓스물이었다. 용모가 두드러지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또한 재질이 뛰어나지도 않았으나, 옥희는 왠지 자기는 친구들처럼 여학교를 마친 후에도 집에서 가사 같은 것을 익혀 평범하게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또 무엇인지는 몰라도 자기는 그런 살림 때가 묻지 않은 여성이 되리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소위 ‘희망’이라는 것-그것은 일종의 신앙이었다. 그것은 어느 가능성에의 신앙이 아니고, 젊음에의 신앙이었다. 누구나가 젊은 한 시절 가지는 것이나, 언젠가는 잃어버려야 하는 이 신앙에서 그녀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태는 그 본질의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가끔 사람에게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전옥희 여상의 존재는 이제 친구들의 빈축 거리도 못 되었다. 모두들 어이가 없어 던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축제와 운명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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