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스캔들 2 - 명작은 왜 명작인가 명작 스캔들 2
장 피에르 윈터.알렉상드라 파브르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 중 한명인 장 피에르 윈터는 자크 라캉의 제자로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적인 내용을 라캉에게서 배웠다. 또 한명의 저자 파브르는 미술사 전공으로 정신분석학과 예술 비평이 접목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저자가 만나 유명한 예술 작품을 다루었으니 어떠한 유형의 글이 나올지는 짐작이 될 것이다. 윈터 또한 머리말에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예술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분석하였는데 이때 예술가에게 이론을 내세워 뭔가를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먼저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저자들은 프로이트가 예술작품을 접근했던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책에는 대부분이 알고 있는 유명한 명화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 작가의 삶, 그림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 등을 차근차근 읽어나간다. 이 과정은 꽤 진지하고, 깊이 있으며, 설득력이 있다. 물론 어떤 작품 분석에서는 내 생각과 달라 혹은 너무 무리한 해석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작품을 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며, 여러 대답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이다. 이 중 몇 개의 작품 해설을 요약해 보았다. 가만히 앉아 책 속에 담긴 여러 미술관들이 소장한 그림을 보고 있자니 이유 없이 마음이 붕붕 뜬다. 봄이 오려나보다.

 

* 밀로의 ‘비너스’ - 밀로의 비너스는 두 팔을 상실했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그 팔의 존재를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게 한다. 내게 그것이 없기에 그것을 욕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현상이다.

 

*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 그녀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아무것도 손상되지 않은 자신의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등장했고, 그녀와 함께 관승성, 육체의 아름다움, 욕망의 자유로운 발산 등 기독교가 수세기에 걸쳐 억압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랐다. 이 그림의 밝은 빛은 세상이 반 계몽주의 어둠에서 벗어났음을 시사한다.

 

*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티나의 마돈다’ - 우리가 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두 천사의 위치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이 장면을 바라볼 때 감상자로서 우리는 결국 그렇게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피터 브뤼헐의 ‘바벨탑 - 우리는 무언가를 말할 때 우리가 하는 말을 상대가 이해했는지 절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것은 상대와 같은 언어로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가지 언어로 소통한다고 믿지만, 각기 다른 두 가지 언어로 대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주체이자,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객체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 관계의 모호함은 공주에게도 적용된다. 공주는 그림 밖에 서 있는 국왕 부부를 바라보는 주체이지만, 그림의 대상으로서 객체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선을 매개로 주체와 객체가 복잡하게 얽힌 현상, 즉 인식 주체의 부재를 두고 푸코는 전지적이고 선험적인 인식 주체의 상실, 즉 데카르트가 말한 코키토의 부재에 주목한다.

벨라스케스는 그림 속의 그림을 돌려 놓음으로서 역설적으로 명작의 진실은 항상 숨어 있고, 그 진실을 알려면 해독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했다고 볼 수 있다.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 - 일상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놀랍고 새로운 것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는 친숙한 것이 드러난다. 우리는 늘 친숙한 것을 간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친숙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 서양 회화에서 전쟁이라는 주제는 늘 승자에 대한 찬양을 염두에 두고 표현되었다. 그런데 고야는 이 작품에서 고대부터 지켜온 이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정신에서 승리한 사람들 편에 섰다.

 

*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 다비드는 역사의 한순간에 단절의 상처가 남긴 흔적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뛰어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청렴한 혁명가가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지 그 극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이 그림에서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여인은 남자의 욕망 혹은 사랑에 자신과 관계없는 어떤 것이 숨어 있음을 감지한다. 쾌락에 완전히 자신을 내던지지 않은 그녀, 그리고 그녀와 상관없이 그녀를 통해 또 다른 인물 즉 아버지를 향하고 있는 남자의 욕망 사이에서 그녀의 무아지경은 변증법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 사람들은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에게 말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재로는 상대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자신, 곧 자신의 타아에게 말하고 있다.

 

*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 마그리트가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명확하지 않은 언어와 사물 간의 관계다. 이 그림의 화면 아래쪽에 쓰인 문장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린 시절에 보았던 글과 글의 의미에서 느꼈던 자유를 갑자기 회복시켜 주었다는 데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