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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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서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르 중 하나는 시집이다. 시는 한 편 한 편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며 혹은 틈틈이 대화를 하며 읽기에 참 좋다. 어느 카페에 들어갔는데 한 쪽 면에 책들이 꽂혀 있기에 둘러보다 발견한 책이다. 신경림 시인께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들을 엮어 만든 시집인데 중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시들도 몇 편 있어 더욱 정답다. 단 몇 개의 단어로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시인들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엎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숭거리고 살아난 야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 입이 우물거리는,

 

꽃 피긴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 묵화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졋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문득 -정호승

 

문득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

그때처럼

수평선 위로

당신하고

걷고 싶었어요

 

 

*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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