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2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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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책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다시 느껴진다.위대한 작가의 내공이란 이토록 크고 깊단 말인가? 이 책은 1935년 일본과 중국을 방문한 기록문과 20년 후 1957년 다시 두 나라를 방문하고 짧게 기록한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사상은 죽은 후에도 남아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나도 여러 차례 여행했기 때문에 두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 먼 나라, 그리스에서 날아온 작가는 두 나라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감탄하고, 기록하고, 찬양한다. 무심히 지나칠 것들에 지대한 호기심을 품고 그 근원을 밝혀나간다.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동안 나는 두 나라의 겉모습만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며 그동안 궁금했지만, 그 연원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나쳤던 수많은 두 나라의 문화와 습관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기행문이 아니다. 그 나라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 낱낱이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책이다. 한 문장이라도 버릴 것이 없다. 간단 명료하고 예리하다.

    씁쓸하였던 부분은 일본인이 히데요시 장군을 나폴레옹에 비유하며 위대하다고 작가에게 소개하는 부분이다. 일본인에게 히데요시는 한국의 이순신처럼 자랑스러운 존재이다. 작가는 히데요시의 삶과 그의 집을 바라보며 놀라워 한다. 그리고 적는다. 히데요시의 위대한 영혼을 떨쳐낼 수가 없다고....작가는 일본인의 눈으로 히데요시의 삶을 볼 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 당시 누구도 한국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작가는 단지 한국을 몰랐을 뿐이다. 작가는 히데요시의 영웅적 행동, 인생의 목표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존경하였다. 한국에 관한 언급은 단 한번 나온다. 그가 1957년 베이징 국립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이다. ‘우리를 수행한 젊은 한국인은 우리가 한국의 아름다운 작품에 감탄할 때마다 기뻐했다.’ 이 한줄. 한국의 유물들은 단지 그곳에서 잠시 보는 정도밖에 작가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까? 그 젊은 한국인은 누구였을까?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에서 작가는 일본의 문화와 사상을 찬양한다. 고흐는 일본 판화에 매료되었고, 일본 여인을 그렸다. 카잔차키스를 비롯한 수많은 위대한 화가, 작가, 음악가들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감탄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 이들이 한국을 방문했다면, 그리고 그 방문을 예술작품으로서 남겼다면,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예술인들에겐.

   작가는 ‘더러운’ 중국의 ‘악취’와 ‘우글거리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중국에 동화된다. 1935년 중국 여행을 마치며 그는 쓴다. ‘복되어라, 진흙 속의 중국! 이 나라는 장래 인류가 나아갈 길을 미리 알려 주는 세계 유일의 땅이다.’ 작가는 1957년 중국 여행에서 돌아오며 <20년 후>라는 제목으로 중국에 관해 글을 쓰겠다고 메모했다. 그 정도로 작가는 중국에 매료되었다. 곧 일본을 방문하여 가기 전에 일본에 관한 책이나 읽을까 하고 골랐는데 며칠간 책 속에만 빠져 있었다. 일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의 힘이다.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다. 433쪽까지 있구나.

 

# 말을 하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뚱뚱하고 부드러운 몸 속에는 지칠 줄 모르는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가끔 기운이 넘치고 열정적인 뚱보들을 만났다. 그들의 정신은 두껍고 알찬 근육 내부로 촉수를 뻗쳐 자양분을 흡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78-79

 

# 이제 불상들을 보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성급함, 초조함, 서두름을 극복했다. 매 순간의 단순함을 즐긴다. 98.

 

# 오늘 밤에 도착할 교토, 과거 한때 천황이 거주하며 왕도 노릇을 했던 그 도시에는 과연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여행은 넋을 빼앗기는 사냥과 같다. 어떤 새가 날아올지 전혀 모른 채 나아간다. 여행은 포도주와 같다. 무슨 환상이 마음에 찾아올지 모르고 마신다. 확실히 여행하는 중에 자기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발견하다. 원하지 않았어도 눈에 흘러넘치는 수많은 인상들 중에서 마음속의 욕구와 호기심에 더 잘 부응하는 것들을 선택한다. 118.

 

# 내장이 신선하고 시원해진다. 바나나 잎사귀를 활짝 펼쳤을 때 나타나는 연두색 속 같다. 171.

 

# 나는 잠시 절 안마당에 멈추어 서서 나무에 몸을 기대고 조금 전에 맛본 기쁨을 되새겼다. 나의 마음은 황금 풍뎅이 같았다. 새벽녘 백합화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이제 꽃 밖으로 기어 나온 풍뎅이는 황금빛 꽃가루를 온몸에 뒤집어 쓰고 있었다. 세계가 내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다. 293.

 

# 우리는 주방장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이 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베이징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면서 책이나 사서 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을 보았고, 그를 위해 딱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니코스는 주방장의 대답을 메모했다. “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나는 배의 직원이지 승객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에게 용서를 청했고, 그는 사람 좋게 웃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단지 잘못된 관습을 배운 것뿐입니다. 괜찮아요!” 388.

 

#나는 중국인의 기교와 유럽인의 야만주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설명했다. 중국인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음으로써 젓가락과 일체가 된다. 유럽인은 포크로 음식을 찍어 강제로 입에 가져간다. 마오쩌둥이 혁명에 성공한 것은 젓가락 방법을 활용하여 일반 대중을 어루만지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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