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흔들거리며 - 탁현민 산문집 파리에서 모그바티스까지
탁현민 글.사진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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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공연연출가이자 교수이며 지난 2012 대선 때 한쪽 편에서 캠페인에 올인 했으나 패배하였고, 도망치듯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세 달간 그곳에 머물렀다. 아무 할일 없이. 그리고 글을 썼다. “절망에 관한 이야기와 좌절에 대한 고백” 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와 내가 추구하는 정치관은 조금 혹은 전혀 맞지 않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책은 재미있다. 간혹 거친 말도 나오지만, 깔깔 거리며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보석처럼 박혀있고, 그의 소소한 일상을 훔쳐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준다. 카페에 앉아 읽는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똑같이 파리에 머물고, 여행기나 에세이를 써도 쓰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구나 싶다. 이 책에 음식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파리에서 감탄했던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와 시장, 미술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으니, 이건 다 저자의 유머 덕이다.

 

# 그러니 여행이 좀 비일상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면, 뭔가 미지에 대한 기대의 시간들로 채워지길 바란다면 좀 덜 꼼꼼해질 필요가 있으며 열려있는 여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좋으면 며칠을 더 머무를 수도 있고, 싫으면 다음날 바로 떠날 수도 있어야 한다. 잘못 시킨 음식을 맛있게 척 먹을 줄도 알아야 하며, 주문을 잘못하여 디저트를 두 개씩 먹게 되어도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즈가 안 맞는 옷을 사도 살을 빼거나 살이 찌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도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산 물건과 똑같은 물건을 더 싸게 파는 가게에 가서 당황하지 말 것이며, 한 번 지나갔던 길을 몇 번이나 다시 돌아오는 것은 그 길과 내가 어떤 인연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보내지도 않을 편지지를 습관적으로 사 모을 줄 알아야 하고,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다 두려움에 떨며 밤길을 걸어보는 경험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무서운데 안 무서운 척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빨리 할 줄 아는 것도 좋다. 집안에 열쇠를 놓고 문이 잠기는 것도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일이다. 진짜 멘붕이 무엇인지 알게 될테니 말이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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