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30년 전쟁의 한 연대기 범우희곡선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연희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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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 이름은 들어보았을 억척어멈. 하도 예전에 읽어 다시 읽어보았는데 역시 좋다. 브레히트가 추구했던 소격효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카트린이 울면서 북을 두드리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이 났다. 이 극은 전쟁을 따라다니며 돈을 벌려다 자식 셋을 잃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억척 엄마는 30년 동안 군대를 따라다니며 전쟁 중 획득한 물건을 사고팔아 생계를 잇는다. 그러나 그녀가 전쟁터에서 군인들과의 거래를 위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그녀의 세 자식들(슈바이처카스, 아일리프, 카트린)을 차례로 잃고 만다. 이것은 커다란 모순이다. 억척엄마는 자식들을 위해 억척스럽게 돈을 벌려고 하는데 정작 그 돈 때문에 자식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모순이 개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그의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억척엄마는 이윤추구의 규칙을 따르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으며 카트린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인간적인 삶을 택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억척엄마는 자식을 모두 잃은 뒤에도 여전히 마차를 끌고 전쟁을 따른다. 전쟁터에서 흥정하며, 전쟁을 찬양하며 삶을 이어가는 그녀의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이며 이것은 자식들을 모두 죽음으로 이끈다. 그렇다고 우리는 억척엄마를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흥정하는 그녀의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억척어멈과 카트린이 포장마차를 끌며 한 농가를 지나갈 때, 안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 - 장미 한 송이 우리를 즐겁게 하네.

             정원 한 가운데에 있는

            장미꽃은 아주 예쁘게 피어났다네.

            삼월에 씨를 심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네.

            정원이 있는 사람은 좋겠네,

            장미가 그렇게 예쁘게 피었으니.

                          :

   이때 지문에서는 억척어멈과 카트린이 귀를 기울이느라고 멈춰 섰다가 다시 길을 간다고 적혀 있다. 억척어멈이 노래를 듣기 위해 멈춰 섰다는 지문을 읽으며 그녀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예술적인 혹은 인간적인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정원이 없고 지붕이 없는 억척어멈은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냉혹하게 버려야 했을 것이다.

    서사극으로 유명한 작가는 이 극 역시 30년에 걸친 삶이 담겨 있으며 극 중에서 ‘낯설기 하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12개의 장면들이 단순한 나열을 연상시키는 몽타쥬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면들 시작에 앞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 짧게 설명된다. 따라서 관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기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작가는 극 진행 사이에 수시로 끼어드는 노래들 등을 사용하여 관객이 극중 인물에 대해 감정 이입을 통한 동일화를 느끼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러한 장치들은 극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대본만 읽었으니 실제로 연극을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시 좋은 책은 다시 읽어도 재밌다. 짦은 문장도 두고두고 생각난다. 요즘엔 그런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억척 어멈ー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억척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버림받았기 때문이에요.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부터가 그들의 상황에서는 필요해요. 또는 그들이 밭을 갈어엎거나, 그것도 전쟁중에(!) 자식들을 낳는 것도 그들이 억척이라는 것을 보여주죠.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전망이 없으니까. 서로 얼굴을 마주보려고만 해도 그들은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억척이 필요해요. 그들이 황제 한 명과 교황 한 명을 견뎌낸다는 사실도 엄청난 억척을 증명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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