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 조지 오웰 평론집
조지 오웰 지음, 조지 패커 엮음, 하윤숙 옮김 / 이론과실천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조지오웰/조지 패커 엮음/하윤숙 역

   도서관에서 신간 코너를 둘러보다 발견한 책. 오웰이 쓴 평론집이라~누가 가져갈새라 얼른 빌려왔다. 읽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좋다. 제목도 좋군. ‘정독 도서관’과 ‘토끼의 지혜’는 서울에서 유일한 나의 단골장소이다.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아라.

   조지 오엘은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우리에겐 <동물농장>과 <1984>년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오웰하면 돼지들이 사람들처럼 서서 식사를 하는 섬뜩한 장면과 ‘빅브라더스’의 무시무시한 눈을 묘사했던 작가 라는 정도의 정보밖에는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오웰의 확고한 사상과, 글에 대한 신념과 생각 등을 읽을 수 있었다.

   오웰은 1903년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벵골에서 태어났으며 두살때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버마에서 대영제국 경찰관으로 근무하였으나 1927년에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감으로 경찰직을 사직하고 런던과 파리에서 하층 계급과 함께 생활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글들을 썼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시민군과 BBC 방송작가로 활동했고, 사회주의 신문인 <트리뷴>의 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지만 오웰은 유려한 에세이스트다. 그의 글은 단호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한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용기와 솔직함에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글들을 썼다니, 오웰의 다른 비소설들을 읽어보고 싶다.

    책에는 1940~1948년까지 그가 썼던 다양한 글들이 담겨있다. 다만 모든 글들은 그 시대의 영국인으로서 바라본 세계이기 때문에 몇몇 에세이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가 힘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소년 주간지’는 기본적으로 가판대에서 청소년들이 사보는 주간지에 관해 쓴 글이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주간지는 영국의 주간지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소년동아 같은) 공감을 느끼거나 몰입하여 읽기가 힘들다. 다만, 아 영국에는 이런 식의 소년 주간지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 또한 수많은 작가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나오는데, 한국에 알려지지 않는 작가가 많아 그 작가가 어떤 성향의 글을 썼는지 모른 채, 오웰의 말을 따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재미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 T.S. 엘리엇, 찰스 티킨스, 살바도르 달리, <걸리버 여행기> 등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면 오웰의 논지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하게 된다. 좋은 대중소설이란 무엇인지, 문학을 지키는 예방책과 작가에 관한 글들도 참 좋다. 그가 갖고 있던 신념(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와 경계)은 어느 글을 읽어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마크 트웨인의 에세이를 읽고 그가 좋아졌듯,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그가 좋아졌다.

 

# 디킨스에 비해 톨스토이가 훨씬 폭넓은 이해력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톨스토이는 당신에 대해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처럼 느껴지는가? 톨스토이가 훨씬 재능이 많다거나, 아니면 최종적으로 판단할 때 훨씬 지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톨스토이는 성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인물들은 영혼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디킨스의 인물들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91.

 

#. 예를 들어 <율리시스>에서 정말 탁월한 점은 그 소재가 지닌 평범함이다. 물론 조이스는 시인이고 세세한 것이 깊은 관심을 쏟는 사람이기 때문에 <율리시스>에는 이것 말고도 많은 특성이 있다. 하지만 조이스의 진정한 업적은 익숙한 것을 글로 옮겨놓았다는 데 있다. 그는 과감하게도-이는 단지 기법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다-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어리석은 일을 끄집어내어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바로 가까이 있는 미국을 발견했다. 145.

 

# 인기있는 작가라고 할 때 이 말은 실제로 그 작가가 서른 살 이하 사람들에게 숭배된다는 의미다. 157.

 

# 1934년 또는 1935년에는 얼마간 ‘좌파’ 색채를 띠지 않으면 문학 모임 내에서 별난 존재로 취급되었고 이후 일이 년이 지나자 하나의 좌파 정통이 자리잡았으며 특정 주제에 대해 반드시 특정 견해 체계를 지니도록 정해졌다. 작가는 적극적인 ‘좌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글을 못 쓴다는 견해가 힘을 없게 되었다. 1935년에서 1939년 사이에 공산당의 마흔 살 이하의 모든 작가에게 저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갔다. 몇 년 전 로마 카톨릭이 유행이었을 때 아무개가 카톨릭에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예삿일로 들리던 것처럼 이제는 아무개가 ‘입당했다’는 말이 예삿소리로 들렸다. 176.

 

# 히틀러 무리나 스탈린 무리는 살인을 필요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자신들의 냉혈함을 결코 드러내지 않은 채 살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청산’이니 ‘제거’니 그 밖에 다른 부드러운 표현을 쓴다....좌파적 사고의 아주 많은 부분은 불이 뜨겁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불을 가지고 노는 장난 같은 것이다. 1935년에서 1939년 사이 영국 지식인들은 전쟁을 들먹이는 데 심취해 있었는데 이는 대체로 전쟁을 면제받은 개인의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83.

 

 

#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에 가까운 사람들이 문학 평론에서 불균형할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지녔다. 꼬리표를 붙이는 시기였고 슬로건과 얼버무림의 시기였다....이런 분위기에서 좋은 소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정통의 냄새를 따지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소설이 나올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의 비정통성을 염려하면서 양심에 시달리는 사람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좋은 소설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187.

 

# 키플링의 가장 훌륭한 이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재기 넘치지 않고, ‘대담하지’ 않으며, 보수적 부르주아를 깜짝 놀라게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는 점이다. 키플링은 대체로 평범한 것을 다루며 우리는 평범한 세계에 살기 때문에 그가 말한 많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 심지어 그가 보여주는 최악의 어리석음조차도 와일드의 짧은 풍자시나 <인간과 초인>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멋진 경구 모음집 같은 동시대의 ‘교양있는’ 발언보다 덜 천박하고 덜 짜증나게 들린다. 255.

 

# 봉건주의나 파시즘이 산문 작가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시인에게는 꼭 그렇지도 않다. 시인이나 산문 작가 모두에게 정말 치명적인 것은 어정쩡하게 현대적인 보수주의다. 266.

 

# 물론 달리의 자서전이나 그림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하지만 달리는 확실히 진단이 필요하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보다는 왜 그와 같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 문제다. 그가 병든 지성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그의 말로는 개종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제정신을 차린 사람 또는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그처럼 득의만면하게 자신의 과거 악행을 과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289.

 

# 하지만 ‘객관적 분리’라는 명목하에 <택시 안에 썩어가는 마네킹-달리>같은 사진이 도덕적 중립서을 띄는 것처럼 위장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사진은 병들어 있으며 혐오스럽다. 294.

 

# 상상력을 펼치는 작가는 주관적 느낌을 왜곡해야 할 때 자유롭지 않다. 작가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주관적 느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거나 희화화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자기 마음속의 풍경을 거짓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작가는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작가에게 그런 일을 강요한다면 창작능력이 고갈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333.

 

# 정치에서는 두 가지 죄악 중 그나마 작은 죄악을 선택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으며 악마처럼 또는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겨우 벗어날 수 있는 상황도 있다.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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