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위대한 소리들 작고 위대한 소리 시리즈
데릭 젠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실천문학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네 멋대로 써라> 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으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 빌려왔다. 책은 너무 유쾌하고 재밌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쓴 또 다른 책 <거짓된 진실>을 읽었는데 이건 또 너무 무겁고 심각하고 생각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 <작고 위대한 소리들>(Listening to the land)은 너무 재밌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잔잔한? 책이다.

    데릭 젠슨은 1960년 생으로 콜로라도 광업대학을 졸업하고 동부 워싱턴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급진적인 사회변혁운동가이면서 작가, 농부이다. 이 책은 잒가인 저자가 12명의 환경론자, 신학자, 선주민, 심리학자, 여성주의 등의 지성인들과 보다 평화롭게 사는 법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한 권의 책으로 여러 명의 생각을 읽고, 공감하고,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자연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어떻게 사는 것이 지구와 인간 모두에게 좋은지 다시 한번 생각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다만 인터뷰어 대부분이 환경과 연관지었을 때 기독교를 좋지 않게 보고 있고,(일부 맞는 말이긴 하지만 틀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한 사람도 있어 조금 아쉬웠다.

 

# 요즘은 우리들 대부분이 도시에 살지요. 그 말은 우리 대부분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감각 정보나 감각 경험으로부터도 완전히 차단된, 일종의 격리된 감방에 산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이에요.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정보는 ‘조작된’ 것이고, 그 대부분이 기계를 매개로 전달되는 것이지요. 나는 그런 현실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의 감각 능력이 너무 축소되어 더 이상 우리가 뭘 상실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존 A 리빙스턴

 

# 사랑에 빠지면 상상력은 과로를 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서로를 발견할 방법을 찾습니다. -매튜 폭스

 

# 미디어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현실로 인식하도록 요구받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볼 때 편집이 많이 되고 속도를 아주 높인 버진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서로 많이 뒤섞인 것을요. 소위 뉴스란 걸 보는데, 그건 사실이라곤 하지만 진작에 찍어둔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볼 수 없는 대상에 것들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실제와는 사실상 다른 무엇에 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적으로 앞뒤로 조종하며 시간을 압축하기도 하는 허구의 프로그램으로 보게도 됩니다. 게다가 광고와 스포츠가 섞이고 다큐멘터리도 가세하지요. 다큐멘터리는 이전에 일어나 현실을 개조한 허구적 버전입니다. 이 모든 자르고 편집하고, 극도의 효과를 부여한 것들입니다. 카메라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어서, 우리는 실내에 있으면서 바깥을 구경하게 되지요. 화면에 두 가지 영상이 나오기도 하고, 만화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건 이미지는 우리 머릿속에 박히게 되어 있어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일단 텔레비전을 보고 나면 머릿속에 콜게이트 치약이니, 맥도날드니,포드 토러스 자동차니, 미클롭 맥주니 하는 것들의 이미지가 불쑥불쑥 떠오르게 되어 있어요. 그런 이미지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미지는 이미 우리의 뇌리에 박혀버리고 맙니다. 그게 광고주들의 목표지요. 광고주는 잘 알고 있어요. 우리 뇌리에다 이미지를 충분히 자주 심어주면, 우리가 신경으로 이루어진 광고판 같은 이미지를 저장해두고 돌아다니다 시장에 가서 그 상품을 볼 때 그 광고판의 불이 번쩍 켜진다는 걸 말이죠.(중략)

혹 텔레비전에 폭력이 없다 해도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일은 폭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건 텔레비전을 볼 때 화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것이 텔레비전의 일이고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반응을 억누르게 되지요. 그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시청자는 모든 반응을 조용히 속으로 억누르게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지각체계가 너무 빨라지는 문제가 있습니다.(중략)

그러다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방 안은 빙빙 돌고 있지도 않고 마구 뛰어다니고 있지도 않지요. 자연으로 나가면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산들바람은 슬슬 불고 강물은 유유히 흐르기만 하지요. 자연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아주 느리고 조용해질 필요가 있어요. -제리 맨더

 

# 나는 ‘정신적 무감각’이란 것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해보았아요. <살아있는 죽음: 히로시마의 생존자들>에서 처음으로 소개한 개념이지요. 히로시마의 생존자들에게 무감각은 삶을 지탱해주는 메커니즘이었어요. 감정을 거의 자동적으로 차단해버림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나 파괴행위에 관여하는 집단의 경우 정신적 무감각은 위험한 것이 됩니다. -로버트 제이 리프튼

 

# 최근에 나는 폴 윈터와 참여적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연주자와 객석의 감상자를 나누는 음악과는 대조적인 음악 말이에요. 음악은 우리가 권위주의적 체제에 사회적으로 복종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지요. 우리가 음악을 이용하고 듣고 경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사회구조의 차이를 상상해 보세요. 심포니를 예로 들어 봅시다. 작곡가, 지휘자, 독주자는 섬처럼 고립적인 묘기를 보이고, 청중은 각자의 고립된 작은 공간에 가만히 앉아 겁이 나서 말도 기침도 못하지요. (중략) 규모가 작은 사회의 음악은 나누기보다는 합치지요.-폴 셰퍼드

 

# 에리히 프롬이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기본적으로 나는 비관론자다. 그러나 낙관론자가 아니라면 나는 자살을 해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아르노 그루엔

 

# 우린 너무 심각하고 진지해요. 우리가 놀이를 하건 도발을 하건 사람들이 들어주거나 봐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린 자신의 유희적 에너지를 잊어버리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신해버려요. 우리의 광대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나요? -테리 템피스트 윌리엄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