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들 - 개정판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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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아이들> 이 세상 모든 어른이 읽어야 하는 책. 1판 1쇄 2004년 5월, 2판 2쇄 2007년 6월 발행본 읽음. 처음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나서이다. 5살의 주인공 꼬마 ‘제제’와 함께 울고 웃으며 책을 읽었다. 그때의 감동과 놀람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하이타니 겐지로님의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안나 카레리나>나 위대하고 <논어>도 훌륭하고 <율리시스>도 멋진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동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어린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꼭 읽도록 법으로 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겐지로를 처음 알게 된 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통해서였다. 단지 제목이 너무 예뻐 읽은 책이었는데 읽고 나서 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고다니 선생님이 데쓰조가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쓴 사람이니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태양의 아이>, <소녀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당연히 그럴 줄만 알았다. 그러나 겐지로의 자전적인 책 <내가 만난 아이들>을 읽으며 작가의 처참한 삶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는 그의 마음이 놀랍기만 하였다.

    겐지로는 1934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여 공사장에서 일해야 했던 그. 17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러던 중 큰형이 들보에 목을 메고, 잇따라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자 충격과 절망감에 휩싸인 그는 교단을 떠나 오키나와를 여행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신 민간인 학살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던 참혹한 역사의 땅 오키나와에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그는 그들의 낙천성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참된 상냥함이 잉태됨을 깨닫는다. “인간의 상냥함을 생각함으로써, 나는 소생했는지 모른다.” 그 뒤 그는 그곳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써내며 소박하게 살다 2006년 암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오키나와를 새롭게 알게 되고 어린이들을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일본의 어린이 문학가이자 우리시대의 큰 스승이었던 겐지로의 치열한 삶의 기록을 적은 것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도 버릴 것이 없다. 모든 구절을 다 머릿속에 넣고 싶다. 책에는 겐지로의 글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아이들의 보석 같은 시들이 담겨 있다. 그는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지, 또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알게 해준다. 그는 아이들이 절망에도 불구하고 상냥함을 잃지 않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정신이 번쩍 든다.

 

# 주머니에서 영어 사전을 꺼내 본다. 학문의 세계가 언젠가는 이 비참한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줄꺼야. 나는 남몰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 훔친 옥수수를 굽는 동안 둘 다 이상하게 손발이 떨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떨림이 멎지 않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다같이 옥수수를 먹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왜 눈이 빛나는 것일까? 다섯 살배기 남동생도, 세 살배기 여동생도 눈빛을 번뜩이며 옥수수를 뜯어 먹었다.

 

# 선생님의 구두 -5학년 오카모토 료코

 

교단 옆에

선생님의 구두가 있다

오른쪽 구두가

누워 있다

왼쪽은

똑바로

일으켜 주고 싶지만

수업중

 

# 나는 그 아이를 통해 저항의 의미를 배웠다. “절망과 맞부딪쳐 이겨 내지 않고서는 진정한 상냥함을 지닐 수 없다..”는 노 철학자 하야시 다케지 씨의 말이 지금 이 순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새삼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껏 나를 길러 준 상냥한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을 먹으며 살아왔다고.

 

# 눈 - 이시이 도시오

 

눈이 펑펑 옵니다

사람은

그 밑에서 살고 있습니다

 

# 나보고 돼지라고 한다

돼지우리로 돌아가라

한다

나는 돼지 말을 몰라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꿀꿀꿀만 하면 된다고

한다

꿀꿀꿀은 우리나라 말이야

-1년 나카노 마사유키-

 

# 아름다운 것은 말이지, 참고 참고 또 참았을 때 만들어지는 거야

 

# 어린이는 작은 거인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어린이, 스스로 성장하려는 한없는 에너지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어린이, 내가 어린이를 이런 존재로 보게 된 바탕에 오키나와가 있다.

딱지 -마코토

 

딱지는 재미있으니까

못하게 하면 안돼

나는 딱지를 못하게 하면

밥도 안 먹을 거야

나는 딱지가 없으면

공부도 안 할 거야

딱지가 없으면

나는 죽는 게 나아

딱지를 찢으면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딱지는 내 친구니까

찢으면 안 돼

 

# 읽는 사람에게 그 감촉이 전해지도록 쓰지 않은 것은 표현이라고 할 수 없어

 

# 창의성 없는 교사의 빈약한 수업이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를 공부하기 싫은 아이로 만들고 있다.

 

# 하느님, 요즘은 왜 새로운 동물을 발명하지 않으세요? 지금 있는 동물은 죄다 너무 오래된 것들뿐이에요.

 

# 하야시 선생님의 질문에 누가 대답을 하면 선생님은 자꾸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래도 생각하는 힘이 좋아진다. 그리고 머리에 쏙 들어온다.

 

# 하이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내 수업이 다른 사람의 수업과 조금이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소크라테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수업은 독사(doxa, 참된 인식의 이데아에 대하여 낮은 주관적 인식)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꼼꼼히 들여다 보는 거죠. 다른 수업에는 이런 면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조사해 온 몇몇 가지를 발표하고, 교사가 그것을 적당히 안배해서 결론을 내린다면 과연 수업이 제대로 될까요? 아이들이 조사해 온 것은 아이들의 의견, 내가 쓰는 말로 하자면 독사에 지나지 않아요. 교사는 그것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따져봐야 해요. 아이들이 발표하는 의견은 교사에게 꼼꼼히 들여다보고 따져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서 필요하지요.

 

# 내 수업에서도 아이들의 반응이 뚜렷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활발하게 발표했지만, 그것은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활발하게 발표하던 아이들이 침묵했을 때, 아이들의 얼굴은 확연히 달라졌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무엇일까. 하이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 아이들은 발가벗겨진 경험을 결코 고통스럽다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것 역시 하나의 해방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정화가 아닐까요? 빌려온 지식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아이들은 해방되고 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업중인 아이들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이 아닐까요?”

 

# 내가 만난 아이들아,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 이 인사는 내가 계속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 내 속에 있는 수많은 죽은 이가 언제까지나 살아 있도록, 내가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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