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노래들 - 현대 미국시와 시론
이일환 지음 / 제이앤씨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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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2월의 아침. 빗소리 좋다. 비가 오는 건 싫은데 빗소리는 참 좋다. 햇살이 반짝일 때 빗소리만 들려오는 날씨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상상력의 노래들>(이일환 역, 제이앤 씨.2008) 을 읽었다. 현대미국시들만 모아 놓았다.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면 시가 아닐까? 시인이 모국어로 창조한 시를 다른 언어로 바꾸려고 할 때, 이미 그 시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시는 원문으로 읽어야 하지만 영어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우리말로 번역된 시를 읽으니 역시 한국시를 읽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시, 2부는 시론, 3부는 영시. 처음 들어본 시인도 무척 많다. 새로운 시들과 시인들을 받아들이다보니 눈이 피곤하다. 시를 쓰는 것은 집 한 채를 만드는 것이다. 주춧돌을 쌓고, 재료를 모은다. 몇 개의 창을 내야 할지, 방은 어떻게 분할해야 할지 생각한다. 뼈대를 올리고, 시멘트를 바르고, 지붕을 얹는다. 장판을 깔고, 벽지 색깔을 맞추고 배수와 조명시설을 확인한다. 이제 집이 다 되었다. 사람들이 집을 구경하려고 전등을 딸깍 켜는 순간 시 한편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젠 확인하고 감탄할 시간이다.

   사람의 일생이 몇 줄 안에 담길 수 있는 것이 시이다. 시는 이 세상을 가장 단순하고도 깊이 표현 할 수 있다. 어려운 시도 많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만이 진정한 시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내가 읽어야 될 시는 손에 꼽아야 될지도 모른다. 시 전체를 통해 어떤 느낌을 받기도 하고, 한 문장에서 기쁨을 얻기도 한다. 나에게 시를 읽는다는 건 휴식이다. 좋은 시는 마음을 즐겁게 한다. 한 줄의 문장이 한 권의 소설보다 좋을 때다 있다. 시를 쓰려고 몇 번 노력했으나 어렵다.

   로버트 프로스트, 에즈라 파운드, T.S 엘리엇, 랭스턴 휴즈, 엘리자베스 비숍, 권돌린 브룩스, 앨런 긴즈버그, 실비아 플래스, 그나마 아는 시인들이다. 나머지는 처음 보는 시인들이다. 시 공부 좀 해야겠다. 2부 시론에서는 12명의 시인이 시에 관하여 쓴 에세이이다. 글들이 얼마나 좋은지, 읽으면서 감탄하였다. 시인들의 문장은 산문에서도 드러난다. 깔끔하고, 명료하며,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좋은 문장들을 몇 개 적자면 “우리가 시 속에 집어 넣으려는 것은 삶이다”, “글짓기는 그 어느 본질에 있어서도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실질적 힘은 순전히 상상력의 힘이다”, “말하자, 관념들이 아니라 사물들 속에서,라고”, “어느 무엇을 드러내지 않는,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쓰지 말것”, “그럴듯하려고 하지 말라. 이것은 예쁘장한 철학적 에세이들을 쓰는 사람들에게 맡겨라”, “시란 정서의 풀어놓음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탈피이고,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탈피이다”, “시에 대한 발견을 하는 최선의 방법은 시를 읽는 것이다.”

욕심이 생길 땐 시를 읽자. 마음이 번잡할 땐 시를 소리내어 읽자. 시 몇 구절을 옮겨보면.

 

*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부분. 로버트 프로스트

 

* ‘진짜 두꺼비들이 있는 상상의 정원’을 내놓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시를 갖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당신이 한편으로는

시의 날 재료를 날 것 그대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진정한 것을

찾으려 한다면, 당신은 시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Poetry- 부분. 매리엔 무어

 

* 한번은 오래 된 볼티모어시를

기쁨으로 마음과 머리가 가득찬 채로 차 타고 가는데,

한 볼티모어 사람이

나를 똑바로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8살이었고 매우 작았는데,

그도 조금도 더 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혀를

쑥 내밀고는, 나에게 말했다, “검둥이”

 

나는 5월부터 12월까지

볼티모어 전부를 다 보았지만,

거기서 일어난 모든 일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Incident-전문. 카운티 컬른

 

* 어느 날 명사들이 거리에 운집했다.

한 형용서가 어두운 아름다움을 내보이며 그 옆을 걸어갔다.

명사들은 충격을 받고, 움직이고, 변화했다.

그 다음날 동사 하나가 차를 타고 와서는, 문장을 창조하였다.

각 문장은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 예를 들어, “형용사가 그 옆을

걸어간 날은 어둡고 비오는 날이었지만, 나는 초록색의 실제의

땅으로부터 소멸하는 날까지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순수하고 향기로운 표정을 기억할 것이다.”

또는, “창문 좀 닫아주시겠어요, 앤드류?”

또는, 예컨대, “고마워요, 창문틀에 있는 분홍색 화분의

꽃들이 요즘 연한 노란색으로 색이 변했어요, 요 가까이에 있는

보일러 공장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말이에요.”

 

봄날에 문장들과 명사들이 조용히 풀밭에 누워 있었다.

한 외로운 접속사가 여기저기서 “그리고! 그러나!”라고 외쳐대었다.

그러나 형용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형용사가 문장에서 없어져 버렸듯이

나도 당신의 눈, 귀, 그리고 목구멍에로 없어져 간다 -

당신은 언어의 전멸 때까지도

파멸될 수 없는

단 하나의 키스로 나를 매혹시켰다.

-Permanently- 전문. 케네스 코크

 

*그의 소중한 사람, 그의 아내는 젊고 예쁘다, 그녀의 숄은 장미빛,

핑크빛, 그리고 하얀색이다.

그녀의 슬리퍼는 검정색 에나멜 가죽인데, 미국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부채를 가지고 다닌다, 정숙한 여인이라 사람들이 너무 자주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은 자기 아내나 연인에 너무 바빠

수염 기른 그 사내의 아내를 쳐다볼지도 의문이다.

-The instruction manual- 부분. 존 애쉬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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