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배우기 지만지 희곡선집
폴라 보글 지음, 이지훈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보글은 미국 작가로, 커밍하웃한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운전 배우기>로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볼피모어 왈츠>는 에이즈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에이즈로 죽은 자신의 남동생 칼을 모델로 했다. <운전 배우기>는 릴빗과 펙의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서 문제는 펙은 릴빗의 이모부이고 릴빗은 아직 미성년자라는 것이다. 펙은 문학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 중 가장 미워할 수 없는 소아성애자일 것이다. 줄거리와 극의 특징은 책의 것을 그대로 옮긴다. 갓 태어난 조카를 보고 릴빗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모부 펙. 릴빗은 자라나며 펙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펙은 외모도 멋있고, 좋은 남편에 이웃이다. 하지만 그는 신비에 쌓인 인물로 한때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그의 성 정체성은 애매한데 소아성애자이면서 또 동성애자라는 느낌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릴빗의 가슴이 봉긋 솟아오르자 그 가슴에 매혹되고 운전을 가르치면서 결국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을 한다.

   연극은 30대 후반의 릴빗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비밀을 털어놓겠다면서 예전 일을 고백하며 자신의 방황과 성장을 돌아본다. 이제 펙은 죽었고, 릴빗은 성인이 되었다. 고백을 해 나가며 릴빗은 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릴빗은 펙을 더치맨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에 릴빗은 펙의 영혼을 차 뒷자석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떠난다. 작품은 막과 장 없이 20개의 장면들로 구성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 유방극(mammary play)라는 표제를 붙였다. 이것은 가슴이 주제가 되는 동시에 발음이 유사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회상극임을 나타낸다. 시간은 1962년에서 1987년 즘으로 릴빗이 11살에서 35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릴빗은 펙의 접근에 자신이 암묵적으로 공모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오히려 펙을 마음대로 다루었음을 고백한다.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세 명의 코러스는 릴빗의 가족, 친구,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한다. 이들은 그리스 비극에서와 같이 중간중간에 코러스가 삽입된다. 펙은 릴빗이 대학에 진학하도록 권유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인도하는 인물이지만 어런 릴빗을 성추행한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들은 한 가족이다. 펙은 릴빗에게 집착하여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사진을 찍고, 자동차를 선물로 사준다. 릴빗이 태어난 날부터 시작된 그의 사랑은 진실하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다. 펙이 부인과 이혼하고 릴빗과 함께하고 싶다고 하자 릴빗은 가족은 가족이라며 그를 떠난다. 릴빗에게 거절당한 후 펙은 다시 술을 마시고 결국 쓸쓸히 죽는다. 대학 진학 후 릴빗은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녀는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펙에게 이별을 통고한 이후에는 더욱 방황한다. 그러나 27세의 릴빗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대학을 마쳐 어느새 대학 강사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이때는 이미 펙이 죽은 후다. 릴빗과 펙의 관계는 베푸는 자인 동시에 수혜자요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던 셈이다. 따라서 경계는 무너지고 모호해진다.

    등장하는 많은 음악은 시대성을 부각하고 소아성애의 주제를 부각한다.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모타운 송이나 샘 쿸의 소울 뮤직, 로이 오르빈슨의 ‘스위트 드림스’나 마마스 앤 파파의 ‘내 사랑에게 바친다’ 등의 대중음악들. 또 교회합창곡과 경건하고 성스러운 음악. 바그너의 ‘방황하는 더치맨’의 선율은 펙이 바로 그런 사람임을 암시한다.

 

# 펙 :그래, 넌 곧 열여덟 살이야. 아기 고양이는 어른 고양이가 되고, (한숨 쉬며) 난 지금 너하고 같이 있는 이 몇 분을 위해 일주일을 살았어. 너 알지?

릴빗 : 내가 운전할래요.

 

# 펙 : 난 미치지 않았어. 난 단지 네가...날 이해했다고 생각했지. 릴빗. 넌 날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야.

릴빗 : 다른 사람이 상처받아요.

펙 : 내가 강제로 널 어떻게 한 적 있니?

릴빗 :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펙 : 우린 이렇게 같이 있는 걸 좋아할 뿐이야. 말했지.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네가 원할 때 까지는. 알지?

릴빗 : 네

 

# 펙 : 난 자식이 없어.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가장 비슷한 존재는 바로 너야. 네게 줄 게 있어. 정말 중요한 거지. 운전에 관한 건데 말이다....네가 차를 통제하고 있을 때, 그건 너와 차와 길을 통제하고 있다는 거야...누구도 너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어. 그게 힘이다. 넌 어디에 있을 때보다도 내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더 나 자신을 느낀다. 바로 이 힘을 네게 주고 싶어. 세상에는 미친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맛이 간 놈, 거만한 바보, 술주정뱅이, 분노로 가득 찬 십대, 혼이 빠진 마약중동자....그놈들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난 네게 남자처럼 운전하는 걸 가르쳐 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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