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 풍경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5
E.T.A. 호프만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평점 :
악마적인 힘의 지배를 받는 게 인간이라는 점이 좋았다. 물체나 동물로 대체되는 것보다 현실적이랄까. 고즈넉한 소설 속 배경과 대비되는 어둡고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의 이야기였다. 특히 『이그나츠 데너』의 주술적인 부분이 소름 끼쳐서 기억에 남는다.
_P.60
"저놈을 쫓아가, 빨리 쫓아가라고, 뭘 꾸물대는 거야? 코펠리우스, 코펠리우스가 나의 최상품 자동인형을 빼앗아 갔어. 20년 동안 작업한 인형이야. 신명을 바친 거라고. 기계 장치, 언어, 동작, 모두 내 거야. 눈알, 네게서 훔친 눈알이야. 망할 놈, 저주받을놈, 저놈을 쫓아가, 올림피아를 데려와, 여기 눈알이 있군!"
『모래 사나이』
_P.86
"그때 그 낯선 남자에게서 어떤 것도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던 내면의 목소리가 지금도 그치지 않아. 나는 자주 내적 비난에 시달리고 있어. 낯선 남자의 돈과 함께 부당한 재물이 우리 집에 들어온 것 같아. 그래서 그 돈으로 마련한 어떤 것에도 제대로 기뻐할 수 없는 거야.(...)사랑하는 조르지나! 당신은 그 사람이 어떤 상대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거 눈치챘어? 그러면서 깊숙이 자리한 작은 눈이 이따금 아주 기이하게 번득이지. 그는 우리가 소탈한 이야기를 할 때 몹시 비열하다고 할 정도로 웃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더라고. 아,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배후에 온갖 불길한 재앙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어. 그 낯선 남자가 우리를 교묘한 올가미로 옭아매고 나면 단번에 재앙을 불러올 것만 같아."
『이그나츠 데너』
_P.208
"(...)'상투스가 울릴 때 교회를 떠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고 반드시 벌을 받아요. 당신은 이제 곧 교회에서 더는 노래하지 못할 거요!' 그것은 농담이었는데, 갑자기 내가 한 말이 왜 그렇게 장엄하게 들렸는지 모르겠어요. 베티나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말없이 교회를 떠났어요. 그 순간부터 그녀가 목소리를 잃어버렸거든요."
『상투스』
_P.319
"종형제, 어리석음이 모든 힘으로 너를 사로잡고 있는데, 간청하노니 그 어리석음에 저항해라! 너의 시작은 무해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아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라. 너는 지금 부주의한 망상으로 인해 살얼음판에 서 있고, 네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얼음판이 깨져 풍덩 빠지고 말 거야. 나는 네 옷자락을 붙잡아 주지 않을 거야. 네가 스스로 빠져나올 거고, 죽을 정도로 아픈 상태에서 '꿈에 감기에 좀 걸렸어요'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 그러나 사악한 열병은 네 생명의 골수를 갉아먹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너는 기운을 차리게 될 거야. 네가 너의 음악으로 감상적인 여자들을 평온한 휴식에서 끌어내는 것 말고는 더 나은 일을 할 줄 모른다면, 악마가 네 음악을 앗아가 버렸으면 한다."
『장자 상속』
_P.414
"아이는 내게 맡겨! 오, 아이는 내게 맡겨. 당신은 나의 영원한 행복을 빼앗아 갈 수 없어. 그리스도의 이름, 성모의 이름으로 간청하겠어. 아이는 내게 맡겨, 아이는 내게 맡겨."
『서원』
_P.512
작가 호프만은 인간 심리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면에 더욱 주목한다. 이러한 후기 낭만주의를 특징적으로 일컬어 '공포 낭만주의 (Schauerromantik)'라고 한다. '공포 낭만주의'란 초자연적인 요소가 풍부한 초기 낭만주의의 환상적 이야기들 대신에 점차 세계의 악마적 힘, 인간 내면에서 파멸을 가져오는 어둡고 기이한 정신적 과정, 사악한 충동, 광기, 불안, 경악 등을 소재로 하는 경향을 말한다.
『권혁준, 해설』
✦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