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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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좀 느리게 읽는데 책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여서 급하게 읽게 되어 아쉽다. 그래도 시인의 다정함이 느껴지는 에세이를 읽으며 내 기억들이 떠올라 좋았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일 때 주변에 바셀린을 발라주던 나의 엄마. 서랍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엄마의 반지를 껴보던 어린 나. 그리고 14살 사랑이와 매일 산책하는 날들.(어제도 비를 맞으며 산책을 했지)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노트를 사서 메모도 일기도 아닌 것을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 쓸 수 있기를.

_P.76
사랑하는 사람들아, 죽지 말고 살자. 당신들의 목소리가 나를 살린다.
_P.84
무엇을 쓸지 막막할 땐 엄마가 내뱉은 한마디, 언젠가 가보았던 공원과 주민센터, 나만 할 것 같은 공상을 떠올려 보면 좋아요.
_P.115
여태까지 한 번도 책을 버려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파지처럼 길가에 내놓는 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솎아내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_P.120
엄마는 손톱 주변의 살갗이 물들지 않도록 바셀린을 발랐다. 그다음에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둔 비닐 랩을 손가락에 감싸고 잠투정에 벗겨지지 않도록 굵은 실로 살짝 묶어주었다.
_P.128
이따금 엄마의 목걸이를 하고 외출한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이나 울적한 날에. 하나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 버려야만 했던 엄마의 무수한 미래를 가늠해보면서. 그러나 어느 쪽이든 내가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엄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열었던 미래로 인해 내가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목에서 찰랑거리는 펜던트의 촉감을 느낀다. 나의 탄생 이전부터 시작된 시간이 나를 구슬처럼 꿰고 지나간다.
_P.270
어찌 되었든 나에겐 이날밖에 없다는 것. 내가 맞이 한 오늘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고 오로지 단 하루로 존재할 뿐이라는 것. 그 단상을 곱씹다가 어떤 페이지도 찢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삶이 추하게 느껴지는 날에 대해 썼더라도, 숨기고 싶은 감정들이 맨얼굴처럼 드러나도 없애거나 버리지 말자고. 나는 그곳에 어젯밤부터 구상했던 시의 문장을 이어서 쓰고 가름끈을 올려두었다. 내일 다시 열어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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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이주윤 지음 / 빅피시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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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책 처음 써본 건 아닌데 항상 열 장 정도 쓰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필사책이 최근에 많이 보여도 다 못 쓸 거 같아서 장바구니에만 넣어두고 구매하진 않았는데 이 필사책 너무 재밌다. 필사할 문장도 좋고 글씨가 잘 써짐. 왠지 다 쓸 수 있을 거 같다. 오랜만에 쓰는 손글씨가 어색하면서도 더 잘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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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아가씨
허태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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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산왕산을 다스리던 호랑이였던 태경은 나쁜 사람도 많이 먹었지만 죄 없는 사람도 먹었기에 살생의 죄로 현생에서 죗값을 치러야 한다. 표지 때문에 가벼운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루는 사건들이 약자에게 일어나고 매우 현실적이다. 그리고 실종 아동을 다룬다는 점에서 드라마 〔미씽: 그들이 있었다〕도 생각났다.(다들 이 드라마 봤으면)

_P.22
"선녀님께서 이르시길, 특별한 손님이 올 것이므로 성심껏 맞으라 하시더군요. 예약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신령한 기운을 느끼지 못했으나 해가 저물며 달라졌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꿈을 꾸는 듯 어떤 영상이 덮쳐왔어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뛰어오는 것이었지요. 으르렁거리며 날뛰는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오금이 저렸습니다. 산왕산 입구를 통과해 향하는 방향이 분명 이 신당인지라 밖으로 나왔지요. 그랬더니 빨간색 K3가 나타나더니...... 차에서 내리는 산신님 모습이 보였습니다요."
_P.157
"지금이 좋아. 호랑이 기운을 느끼는 특별한 시간들이. 평범한 사람 같은 건 되고 싶지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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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세븐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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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킬러 나나오는 정말 운이 없구나. 난 안 읽었지만 불릿 트레인을 본 독자는 더 재밌지 않았을까. 명절에 개봉하는 잘 만든 오락 액션 영화를 본 것 같다. 이런 영화에는 후반에 꼭 반전이 등장하는데 소설도 그랬다.

_P.122
마리아가 극장에서 습격당하는 것도 저지하고 싶었다. 무엇 보다 이 호텔 자체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_P.218
"매화나무는 매화꽃을 피우면 돼.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으면 그만이고. 장미꽃과 비교한들 아무 의미도 없어."
_P.229
"아니,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착한 사람은 아니지. 나랑 소다 그리고 당신이 고용한 코코도 위험하고 불법적인 일을 해왔어. 착할 리가 있나."
_P.288
"잘 들어, 넌 운이 없어."
_P.312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호텔? 시체 천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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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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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침략해 나눠 가진 뒤 자원을 약탈하고 원주민을 학살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침략자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거나 광기에 사로잡혔던 건 어쩌면 벌이 아니었을까. 중편 소설이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와 화자 말로가 혼자 말하는 형식이라 쉽게 읽히진 않았다.

_P.11
인간의 꿈, 영국연방의 씨앗, 제국의 싹....... 이 위대한 것들 가운데 저 강의 썰물을 타고 신비로운 미지의 땅으로 흘러가지 않은 게 있었던가!
_P.34
그곳에서는 과열된 지하 묘지처럼 고요하고 흙냄새 나는 분위기 속에서 죽음과 교역의 즐거운 춤판이 벌어지고 있더군. 마치 자연의 여신이 침입자들을 물리치기라도 하려는 듯 위험한 파도로 경계를 이루어놓은 무형의 해안을 따라서, 또한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강과 개울을 넘나들며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곳의 강기슭은 썩어서 진흙이 되어가고 있었고, 물은 점액처럼 걸쭉해져서 뒤틀린 맹그로브 숲을 침범하고 있었어. 맹그로브 숲은 극단적이고 무력한 절망에 빠진 채 우리를 향해 온몸을 비틀고 있는 듯했지. 우리는 그 어디서도 특별한 인상을 받을 만큼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모호하면서도 숨이 막힐 듯한 궁금증 같은 것이 점점 커져만 갔어. 그것은 악몽의 암시에 둘러싸인 피곤한 순례나 마찬가지였지.
_P.73
그들이 욕망하는 것은 대지의 저 깊은 내장에서 보물을 뜯어 내는 것일 뿐, 금고를 터는 절도범이 그러하듯 그 욕망의 한 구석에는 그 어떤 도덕적 목적도 존재하지 않았지.
_P.139
그는 내가 그곳 상황을 너무 모른다면서, 그 머리통들은 반역자들의 것이라고 말했어. 내가 심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충격을 받더군. 반역자라니! 과연 다음에는 어떤 설명을 듣게 될까나? 원주민들을 적이라고 했다가, 범죄자라고 했다가, 일꾼이라고 했다가, 이제 이들은 또, 반역자라고 하다니 말이야.

✦ 휴머니스트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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