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좀 느리게 읽는데 책에 집중할 수 없는 시기여서 급하게 읽게 되어 아쉽다. 그래도 시인의 다정함이 느껴지는 에세이를 읽으며 내 기억들이 떠올라 좋았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일 때 주변에 바셀린을 발라주던 나의 엄마. 서랍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엄마의 반지를 껴보던 어린 나. 그리고 14살 사랑이와 매일 산책하는 날들.(어제도 비를 맞으며 산책을 했지)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노트를 사서 메모도 일기도 아닌 것을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 쓸 수 있기를._P.76사랑하는 사람들아, 죽지 말고 살자. 당신들의 목소리가 나를 살린다._P.84무엇을 쓸지 막막할 땐 엄마가 내뱉은 한마디, 언젠가 가보았던 공원과 주민센터, 나만 할 것 같은 공상을 떠올려 보면 좋아요._P.115여태까지 한 번도 책을 버려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파지처럼 길가에 내놓는 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솎아내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_P.120엄마는 손톱 주변의 살갗이 물들지 않도록 바셀린을 발랐다. 그다음에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둔 비닐 랩을 손가락에 감싸고 잠투정에 벗겨지지 않도록 굵은 실로 살짝 묶어주었다._P.128이따금 엄마의 목걸이를 하고 외출한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날이나 울적한 날에. 하나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 버려야만 했던 엄마의 무수한 미래를 가늠해보면서. 그러나 어느 쪽이든 내가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엄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열었던 미래로 인해 내가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목에서 찰랑거리는 펜던트의 촉감을 느낀다. 나의 탄생 이전부터 시작된 시간이 나를 구슬처럼 꿰고 지나간다._P.270어찌 되었든 나에겐 이날밖에 없다는 것. 내가 맞이 한 오늘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고 오로지 단 하루로 존재할 뿐이라는 것. 그 단상을 곱씹다가 어떤 페이지도 찢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삶이 추하게 느껴지는 날에 대해 썼더라도, 숨기고 싶은 감정들이 맨얼굴처럼 드러나도 없애거나 버리지 말자고. 나는 그곳에 어젯밤부터 구상했던 시의 문장을 이어서 쓰고 가름끈을 올려두었다. 내일 다시 열어볼 수 있게.✦ 현대문학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