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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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먹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작가가 소개하는 책들이 읽고 싶어지는 산문이다. 아직도 이렇게 읽을 책이 많구나. 다시 한번 죽기 전에 이 재밌는 책들을 다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_P.33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부를 가리고 산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창피해서, 상처를 줄까 봐, 원망을 들을까 봐. 매끄럽고 평온해 보이는 가면 뒤에 숨기고 있던, 누군가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되더라도 지나치게 상처받거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안에 숨어 있던 추악함, 시기심과 죄의식, 두려움과 조바심 같은 감정들을 맞닥뜨려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이란 한지를 여러 번 접어 만든 지화처럼, 켜켜이 쌓은 페이스트리의 결처럼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빛과 어둠이 술렁이며 그려놓는 그림. 그것이 마음의 풍경이다.
_P.132
루시의 어린 딸이 엄마에게 말한 것처럼 삶은 소설과 달리 다시 쓸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그럼에도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고, 다양한 색으로 물드는 해 질 녘의 하늘처럼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변신을” 거듭하는 것이 삶이라고 알려준다. 모든 생이 감동을 준다는 루시 바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끝끝내 그토록 서툰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툴고 서툴렀던 당신들. 경이로운 생의 주인인 당신들의 이름을 나는 오늘 나직이 불러본다.
_P.155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겪은 무수한 일들이, 만난 사람들이 우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데, 우리는 경험만이 아니라 그중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버리는가 하는 선택에 따라 빚어지기 때문이다. 생존의 위협을 느꼈을 어린 시절을 통과했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 인간에 대한 혐오나 절망을 말하는 대신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미쉬카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보살피고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려 노력하는 마리와 제롬의 이야기는 선의의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보게끔 이끈다. 악의가 시끄럽고 요란하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 순간에도 선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번져나간다. 고요하지만 멈추지 않고.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볕을 찾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다.
_P.259
『디어 라이프』를 다시 읽으며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은 나의 내밀한 고백에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단다”라고 읊조려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이 그런 것이라면, 당신과 내가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들인 한 인생은 아직 친애할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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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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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서 아껴서 읽은 소설집. 작가님은 사랑이 많은 사람 같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고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차고 뜨거운』의 화자처럼 나도 호감을 표시하는 상대에게 의문을 가졌다. ‘왜 나를?’ 이 물음을 지금 생각하니 슬퍼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_P.11
전쟁이 끝났을 때 할머니는 신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귀하고 소중한 우리 섭이, 필이, 은이를 잘 보살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 더는 나이 들지 않기에 영영 보살핌이 필요한 세 자식을 신에게 잠시 맡긴 거라고 믿었다.
_P.28
이제 할머니는 어디에 있어?
심장이 백 번 뛰도록 말이 없던 엄마가 마침내 대답했다.
할머니는 아주 작아졌어. 어딘가에는 있는데 흙처럼 작아져서 우리 눈엔 보이지 않아. 언젠가는 엄마도 네가 찾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질 거야. 먼지처럼 작아졌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니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어.
나는 대답했다.
그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엄마가 작아지기 전에 나는 엄마를 주머니에 넣을 거야. 그럼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 지더라도 주머니 어딘가에는 있는 거니까 엄마를 잃어버리지는 않는 거야.
_P.39
엄마가 일기에 썼던 문장을 기억한다. '죽어야 한다면 죽는 게 낫다.' 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매일 밤 삶을 선택한다.
『쓰게 될 것』

_P.129
언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정면만 바라봤다. 갑자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언니가 망했다'고 말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에 오로라네 엄마가 말해줬는데, 망했다는 말만큼 나쁜 말이 없다고 했다. 망했다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언니는 진짜 다 망했다고 믿는 걸까? 그렇게 믿으면서 분리수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왜 다니고 공부는 왜 하는지, 셀카는 왜 찍고 비공식 모임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망했다고 말하면서 왜 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지 정말 모르겠다.
『썸머의 마술과학』

_P.181
안나는 인간의 말보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으며 살아왔다. 그 정보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버리면 안나의 삶은 너무 피곤하고 복잡해질 것이다. AI의 답이 거짓일 수도 있다면, 그럼 어디에서 진실을 찾는단 말인가? 인간은 안나에게 상처 주지만 AI는 안나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 그 역시 거짓의 힘이었나? 그러니까 안나는, 여태까지, 인공지능의 거짓 정보에 희생된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의문으로 안나의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었다.
『인간의 쓸모』

_P.231
우리 집에서 아빠는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 존재였다.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려도 가족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존재. 아빠는 자기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세계에 아빠는 없다. 오랜 상상의 힘으로 아빠를 없애버렸다.
_P.240
이십대 초반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기쁨도 설렘도 아니었다. 죄책감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어서 의심이 들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나? 나는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다.
『차고 뜨거운』

_P.278
물론이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치료는 그런 것이었다.
_P.285
그러나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 없거든. 내 몸이 죽으면 내 영혼도 죽는 거야. 그러니까 죽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고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나쁜 년.
엄마가 말했다.
이럴 때 보면 넌 진짜 지독하게 나쁜 년이야.
『홈 스위트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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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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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작가가 쓴 여성은 남성에 대한 사랑과 그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상사병으로 비극을 맞이한다. 박민정 작가가 쓴 여성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그 원인이 남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이제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건 남성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_P.38
그는 밤과 낮으로 그이를 다시 만나지라고 기도했다. 잠깐 동안이었을지라도 그 아름다운 순결을 표시한 듯한 감성이 정결한 마음속에 잊지 못할 추억의 보금자리를 치게 하였던 것이다.
_P.59
이런 때를 당하여 소련은 얼마나 난처하였으랴. 그 마음속에는 아직 송효순의 인상이 나날이 깊어가면 깊어갔지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데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그것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김명순, 『돌아다볼 때』

_P.107
"내 딸도 예뻤다우, 그 애들도 신식 연애로 서로 보고 혼인했었더라우. 그런데 당신의 딸이 그 애 남편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내 딸이 죽었소."
_P.142
왜, 무슨 편지기에 잠을 못 주무세요."
하면서 그 옆에서 편지를 펴들고 누워서 생각하는 저의 허리에 손길을 올려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의탁할 곳 없는 그 처가 칠 년간이나 자기를 기다리느라고 까다로운 시집살이를 한 생각을 하고, 그 옆에 다른 여자의 편지를 읽는 것이 참을 수 없는 큰 죄 같아서, 은연중에 그 아내의 가슴에 손을 올려 놓아주며 차마 못할 말이지마는 그 처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친구한테서 온 편지인데, 그 답장 쓸 것을 생각하느라고 얼른 잘 수가 없으니 먼저 자요.”
했다.
김명순, 『외로운 사람들』

_P.292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릿속에선 세윤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선 선역도 악역도 여자야. 우리가 남자들이랑 깊은 관계 맺을 일 있어? 너나 나나 조심해야 하는 건 이제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로사는 다른 여자들이랑 달라.
박민정, 『천사가 날 대신해』

김명순 작가가 쓴 여성은 남성에 대한 사랑과 그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상사병으로 비극을 맞이한다. 박민정 작가가 쓴 여성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그 원인이 남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건 남성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_P.38
그는 밤과 낮으로 그이를 다시 만나 지라고 기도했다. 잠깐 동안이었을지라도 그 아름다운 순결을 표시한 듯한 감성이 정결한 마음속에 잊지 못할 추억의 보금자리를 치게 하였던 것이다.
_P.59
이런 때를 당하여 소련은 얼마나 난처하였으랴. 그 마음속에는 아직 송효순의 인상이 나날이 깊어가면 깊어갔지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데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그것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김명순, 『돌아다볼 때』

_P.107
"내 딸도 예뻤다우, 그 애들도 신식 연애로 서로 보고 혼인했었더라우. 그런데 당신의 딸이 그 애 남편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내 딸이 죽었소."
_P.142
왜, 무슨 편지기에 잠을 못 주무세요."
하면서 그 옆에서 편지를 펴들고 누워서 생각하는 저의 허리에 손길을 올려놓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의탁할 곳 없는 그 처가 칠 년간이나 자기를 기다리느라고 까다로운 시집살이를 한 생각을 하고, 그 옆에 다른 여자의 편지를 읽는 것이 참을 수 없는 큰 죄 같아서, 은연중에 그 아내의 가슴에 손을 올려 놓아주며 차마 못할 말이지마는 그 처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친구한테서 온 편지인데, 그 답장 쓸 것을 생각하느라고 얼른 잘 수가 없으니 먼저 자요.”
했다.
김명순, 『외로운 사람들』

_P.292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릿속에선 세윤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선 선역도 악역도 여자야. 우리가 남자들이랑 깊은 관계 맺을 일 있어? 너나 나나 조심해야 하는 건 이제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로사는 다른 여자들이랑 달라.
박민정, 『천사가 날 대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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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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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은 약혼녀 안나에게 결혼 전 둘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고 결국 안나는 그에게 자신의 비밀을 보여준다. 충격받은 라파엘이 잠시 떠난 사이 안나는 사라진다. 전직 형사 마르크와 함께 안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신분을 위조했고 진짜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 범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클레어 칼라일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 커다란 비밀에 다가간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것들이 맞았기에 한숨 놓았다가 마지막 비밀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까도 까도 새로운 비밀이 나오는 재밌는 소설이다.

_P.14
“비밀은 비밀일 때만 가치가 있으니까 더는 캐묻지 마.”
_P.96
내 약혼녀인 '안나'는 실제로는 누구였나?
그녀는 파리에 오기 전 어디에 살았을까?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40만 유로의 출처는?
사진에서 본 세 구의 시체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그녀는 진실의 일부를 밝히고 나서 왜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_P.222
나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제 그 사실을 밝힐 사이도 없이 프랑크 중령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프랑크 중령은 운명에 대한 순종의 표시로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그래, 나름 괜찮은 결말이야.
프랑크 중령은 숨을 거두기 직전 그렇게 생각했다.
_P.247
내가 누구인지 그 남자가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내가 하인츠 키퍼에게 납치되었던 소녀라는 사실은 다른 모든 수식어를 삼켜버리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가진 꼬리표일 테니까. 내가 만난 남자는 그 사실을 알더라도 나를 사랑해줄 테지만 그 전과 같지는 않으리라. 적어도 연민과 동정심이 더해질 테니까. 나는 동정심 따위는 필요 없을뿐더러 사람들이 어디서나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녀로 남고 싶지 않다.
_P.317
클레어 칼라일 사건은 10년도 넘은 이 시점에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대서양을 가뿐히 건너 엄청난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
마르크는 자신이 한낱 진실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_P.329
"나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작가 선생도 이미 진실이 뭔지 알아차렸을 텐데요?"
_P.346
"조이스의 딸 클레어가 프랑스에서 납치되었는데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겠죠. 제가 만약 조이스의 입장이었더라도 언론이 납치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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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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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어디서 오냐면 말이지,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P.131) 직감을 무시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살아가며 느낀다. 그리고 가족이 그런 것들을 대신 느껴주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내 첫 생리 전 언니가 꿨던 내가 임신하는 꿈이라던가, 엄마가 딸에 대해 느끼는 어떤 직감들은 거의 맞는 법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생존자가 되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중요할 뿐이다.

_P.32
어머니는 꼿꼿하셨고 매일 일하셨어요. 늘 위에 계셨지요. 아래도 아닌, 중간도 아닌, 언제나 위에 계셨어요. 어머니는 내 여동생 프란시스카처럼 말수는 적었지만, 내가 남편을 여의었을 때 내게 말씀하셨지요. 딸아, 고개를 들거라, 어미처럼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열심히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앞으로 나아가거라.
_P.96
"벼룩 문제는 보기보다 더 심각하기 마련이야, 조에. 그거 아니, 유리병에 벼룩을 한가득 넣으면 벼룩들은 뛰어오르다 뚜껑에 부딪치지. 뚜껑 높이까지 계속 뛰어오르거든. 왜냐하면, 걔들은 벼룩이고 벼룩이 하는 일은 뛰어오르는 거잖니. 그런데 네가 뚜껑을 없애도 걔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한계까지만 뛰어오른단다. 뚜껑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못 하거든. 남성우월주의적으로 굴러가는 체계 안의 문제도 똑같아. 너도, 레안드라도 한계에 부딪치는 벼룩이 아니야. 조에, 명심하거라. 너희는 원하는 만큼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단다. 유리병에 뚜껑이 있다면, 너희가 직접 없애는 거야."
_P.119
세상에는 버러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 버러지들에게는 이름이 없지요. 성경에도 버러지 같은 자들은 있는 법입니다. 그들은 마을에도 있고, 모든 언어와 시대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여자들의 배 속에서 나올 테지만, 내게 그들은 이름 없는 존재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_P.220
이어서 마취의가 들어왔다. 축 늘어진 속눈썹에 처진 눈썹,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머리, 수녀 같은 분위기와 강한 로션 냄새를 풍기는 여자였다. 그것이 그날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냄새로, 길에서 똑같은 로션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매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여자는 역설적이게도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100에서 1까지 거꾸로 숫자를 세어보라고 했고, 숫자를 서너 개 정도 말했을 뿐인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신이 들자 손톱에 샤넬 로고를 박은 여자가 이제 끝났다고, 조금 쉬다가 집에 가면 된다고 했다.
_P275
우리 가족 안에서 문제아 역할은 언제나 레안드라의 몫이었다. 아빠는 레안드라가 학교에서 퇴학당할 때마다 괴로워했고, 엄마는 그 애가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권위에 대들며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힘들어했다. 엄마 마음 깊숙한 곳에는 레안드라가 어떤 사람인지 신뢰 하는 구석이 있었지만, 아빠는 레안드라의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행실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할까 봐 진심으로 걱정했다. 내 동생은 폭탄이었고, 한 집안을 날리는 데에는 폭탄 하나면 족하다.
_P.309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전부 다 가지지 않았습니까, 오늘 부족한 것이 없다면 내일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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