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아서 아껴서 읽은 소설집. 작가님은 사랑이 많은 사람 같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고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차고 뜨거운』의 화자처럼 나도 호감을 표시하는 상대에게 의문을 가졌다. ‘왜 나를?’ 이 물음을 지금 생각하니 슬퍼진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_P.11전쟁이 끝났을 때 할머니는 신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귀하고 소중한 우리 섭이, 필이, 은이를 잘 보살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 더는 나이 들지 않기에 영영 보살핌이 필요한 세 자식을 신에게 잠시 맡긴 거라고 믿었다._P.28이제 할머니는 어디에 있어?심장이 백 번 뛰도록 말이 없던 엄마가 마침내 대답했다.할머니는 아주 작아졌어. 어딘가에는 있는데 흙처럼 작아져서 우리 눈엔 보이지 않아. 언젠가는 엄마도 네가 찾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질 거야. 먼지처럼 작아졌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니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어.나는 대답했다.그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엄마가 작아지기 전에 나는 엄마를 주머니에 넣을 거야. 그럼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 지더라도 주머니 어딘가에는 있는 거니까 엄마를 잃어버리지는 않는 거야._P.39엄마가 일기에 썼던 문장을 기억한다. '죽어야 한다면 죽는 게 낫다.' 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매일 밤 삶을 선택한다.『쓰게 될 것』_P.129언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정면만 바라봤다. 갑자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언니가 망했다'고 말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에 오로라네 엄마가 말해줬는데, 망했다는 말만큼 나쁜 말이 없다고 했다. 망했다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언니는 진짜 다 망했다고 믿는 걸까? 그렇게 믿으면서 분리수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왜 다니고 공부는 왜 하는지, 셀카는 왜 찍고 비공식 모임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망했다고 말하면서 왜 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지 정말 모르겠다.『썸머의 마술과학』_P.181안나는 인간의 말보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으며 살아왔다. 그 정보가 거짓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버리면 안나의 삶은 너무 피곤하고 복잡해질 것이다. AI의 답이 거짓일 수도 있다면, 그럼 어디에서 진실을 찾는단 말인가? 인간은 안나에게 상처 주지만 AI는 안나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 그 역시 거짓의 힘이었나? 그러니까 안나는, 여태까지, 인공지능의 거짓 정보에 희생된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의문으로 안나의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었다. 『인간의 쓸모』_P.231우리 집에서 아빠는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도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 존재였다.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려도 가족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존재. 아빠는 자기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세계에 아빠는 없다. 오랜 상상의 힘으로 아빠를 없애버렸다._P.240이십대 초반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내게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기쁨도 설렘도 아니었다. 죄책감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어서 의심이 들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나? 나는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다. 『차고 뜨거운』_P.278물론이야, 나는 포기하지 않아.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치료는 그런 것이었다._P.285그러나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나는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 없거든. 내 몸이 죽으면 내 영혼도 죽는 거야. 그러니까 죽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헌하고 그런 거 절대 하지 마.나쁜 년.엄마가 말했다.이럴 때 보면 넌 진짜 지독하게 나쁜 년이야.『홈 스위트 홈』✦ 안온북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