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P.82그들이 향하는 지구는 결코 낙원이 아니다. 개척 착취자들의 본사가 있고 브로커로부터 보호할 대책도 없이 행성 간 입양아를 내보내는 곳이다. 오염되고 파괴되어 인간이 살 수 있는 구역도 제한된 지 오래고 무엇보다 떠돌이인 그들을 반겨 주리란 보장도 없었다. 이곳보다 더 진절머리 나고 악몽처럼 표독스러운 삶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갈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시작된 자리에 보란 듯 당당하게 존재하고 싶었다. 힘닿는 한 있고 싶은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럴 힘이 되어 줄 서로를 위해 그들은 만나야 했던 것이다.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 우주 시대에 지구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행성에서 만난 호림과 젠은 연인이 되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십 년을 준비한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가는 긴 시간 둘이 동시에 깨어 있어도 될 만큼의 물자가 없기에 여행은 곧 작별을 의미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이 변할까 걱정하지만 지구에 도착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아주 로맨틱한 이야기다._P.127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정주은은 자신이 하나의 가전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만세, 엘리자베스』⟡ 로봇청소기와 몸이 바뀌고도 출근을 걱정하는 K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구나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았다._P.269“너희를 모두 내게 담아서 데려갈게.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미래로.『용의 만화경』⟡ 인간을 사랑하는 김용 씨, 너무 다정한 용이잖아요. 김용 씨 이야기 더 보고 싶어요._P.340‘아니야, 도련님의 정부 따위. 내가 얻고 싶은 건 도련님이 있는 자리였다. 자리 말이야. 이름 말이야. 별 볼 일 없는 인생 말고, 있는 힘을 다해 봤자 누굴 대신해 주다 가루처럼 소모되는 인생 말고.’『소모품 마법사』⟡ 사이렌 과몰입 다시 시작되다. 욕망이 있고 센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10편의 소설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니 너무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황금가지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Agua Viva는 단어 그대로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로 번역되고, 일반적으로는 해파리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뼈대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은 뼈대 즉 특정한 형태를 강제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계이며, 그 살아 있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해파리는 그 세계와 가장 닮은 개체다.(편집자 주) 『아구아 비바』는 정해진 틀 없이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글로 보여진다. 한눈팔면 흐름을 놓치고 다시 읽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의 글이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이유를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으며 몸소 느꼈다. 그래서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해한 부분만 정리하자면 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길 바란 것은 아닐까._P.17미래를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미래가 되고, 모든 시간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된다. _P.55거울이 등장하기 전, 인간은 호수에 비친 그림자 말고는 자기 얼굴을 알지 못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모두가 자신이 가진 얼굴에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 나는 내 얼굴을 볼 것이다. 맨얼굴. 세상에 내 얼굴과 똑같이 생긴 얼굴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_P.138당신에게 한 가지 비밀을 말해 주겠다 : 삶은 치명적인 것이다. 지금 다른 모든 걸 멈추고 당신에게 이걸 말해야겠다 : 죽음은 불가능이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은 그저 미래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걸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_P.156내가 당신에게 쓰고 있는 건 ‘이것‘이다. 그건 멈추지 않을 것이다 : 계속 될 것이다.나를 보고 나를 사랑하라. 아니 :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지.✦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세문집을 출간하지만 나는 을유문화사의 세문집을 읽고 모으고 있다. 표지도 가장 예쁘고 휴대하기 좋은 판형에 양장본이고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지 않는 다양한 나라의 고전을 번역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래서 『필사의 시간』 서평단을 모집할 때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나와 너무 다른 필체의 유한빈 님의 글씨를 따라 쓰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고 모든 페이지가 쫙 펼쳐지고 종이가 두껍지 않은데 펜 비침도 없어서 필사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필사할 문장이 하나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2~3문장을 더 제시했어도 좋았을 거 같다.✦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서평이 아니었다면 아끼고 아끼며 힘든 날 몇 장씩 읽었을 것 같다. 특히 《Track 1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이 지나고》의 글들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들었던 옥상달빛의 노래가 생각나서 CD를 찾았다. 만약 지금 힘들다면 그들의 노래를 들어도 좋고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덕분에 적어도 나는 위로 받았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나는 열아홉 살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어. 오랜 고민을 하다가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 그때 이후로 나는 매일매일이 새로워. 내가 선택한 삶이잖아.”언니는 계속해서 말했다.“그래서 난 과거도 미래도 생각 안 해. 그냥 지금만 생각해. 게으르게 살았든, 열심히 살았든 결국 소중한 하루잖아.”_윤주, 『현재 위에 굳게 발을 딛고서』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래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린 날, 아직 나를 울게 하고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낸 거라고._세진,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세상에는 위로로 가득하다. 백 가지 아픔이 있다면 백 가지 위로가 있는 것도 세상이다. 다만 내가 외면하고 있을 뿐.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나를 힘껏 안아주고 있다._세진, 『새들의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위즈덤하우스에서 책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시작부터 시그브리트라는 여성이 살해된다. 피해자가 살인자의 차를 타는 것과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 외에 194쪽까지 살인범에 대해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심지어 독자를 제외하고 수사를 하는 경찰들에게 시그브리트는 실종 상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르틴 베크는 국가범죄수사국 살인수사과의 책임자이고 그의 오래된 파트너 콜베리와 함께 실종자를 찾기 위해 안데르슬뢰브에 온다. 시그브리트의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의 대한 작은 단서를 알게 되는 게 280쪽이니까 굉장히 느린 흐름의 수사물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경찰 살해 사건이 후반부에 발생하는데 시그브리트의 사건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새로운 사건이 나와서 놀랐다. 나는 범죄 수사물을 읽으며 범인을 찾는 걸 좋아하는데 이 소설을 그럴 수가 없는 소설이다. 내가 아는 스웨덴 범죄 수사물은 헨닝 만켈의 발란데르 시리즈인데 마르틴 베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헤어질 결심 때문에 알았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닮았다. 주인공이 경찰이고 그들은 경험이 많아 노련할 뿐 특별한 능력이 없으며 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복지 국가라는 스웨덴 말고 그 이면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준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10권이 완결이고 『경찰 살해자』가 9권이다. 이 책에 전작의 범인 두 명이 나오는데 그 내용을 몰라도 이 책을 읽는데 문제는 없지만 그 사건들이 궁금하다._P.194”우리가 아는 사실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르도 부인은 10월 17일 수요일 정오경 안데르슬뢰브 우체국을 나섰습니다. 그후로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 혹은 정류장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하는 목격자가 한 명 있습니다. 끝. 우리가 아는 바는 이게 답니다.“_P.280그는 베이지색 볼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그는 시그브리트를 시게라고 불렀다.수사의 실마리가 될 내용은 별로 없었다.✦ 엘릭시르에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