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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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를 앞두고
, 게다가 잠시 2개로 늘어났던 나의 방이 다시 하나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장용 책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는 소장해야겠다. 직접적으로 결심한 것은 책 정리를 하다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읽고 나서. 무려 초판으로 가지고 있는데 누렇게 변색된 그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나고 또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글들도 많았다. 중학교 때는 크게 감흥이 없었던 글이었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게 만든 글도 있었고. 똑같이 좋은 글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서 다르다는 거를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직접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이 책이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소장하기로 결심을 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 중에 추리느라 고생했다. 나중에 따로도 포스팅해야지.

 

- 가족을 상대로는 수수께끼를 내는 게 아니다.

 먼 곳까지 강연을 다녀와서 몹시 지쳤던 날이었다. 집에 돌아왔는데 딸아이가 거실을 잔뜩 어질러놓은 것을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그 순간 끌어넘치는 곰솥에 찬물 한술 붓듯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에게 부탁했다.

엄마가 오늘 강연을 하고 와서 지금 굉장히 힘들거든, 좀 깨끗하게 해놓고 쉬고 싶은데 이거랑 저거, 그리고 저것 좀 치워줄래?”

 청소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헤헷 하고 웃고는 어물쩍 넘어가는 게 평소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달랐다. 이것 보고 조금 있다가 할 게요하는 식으로 시간을 미루지도 않고 곧바로 시키는 대로 하는 걸 보고 도리어 내가 놀랐다. (...) 여러 경우를 가정해보고 몇 번 적용해본 끝에 나온 유의미한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했다는 것.

 알고보면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이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직접적인 말이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많은 엄마들은 - 실은 나도 - ‘왜 이렇게 더럽혀놨어?!’ 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는 신경질적으로 청소를 한다. 사실 엄마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감정과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쯤 되면 아이가 눈치채고 청소를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자신이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엄마가 왜 또 저러지? 괜히 나한테 화풀이야 하는 반발심을 느끼며 당황할 뿐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쯤은 알아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괴롭히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기대보다 상대의 마음을 끔찍이도 못 읽어낸다.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사력을 다해 생존하고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보호를 받는 이곳에서만큼은 이중,삼중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특히나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깨닫지 못했던 언어의 원형을 영접하게 된다. 은유와 상징은 잘라내고 모든 빈 공간을 실질적인 언어로 채워 넣어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 이제 나는 이 남자가 나에게 너무 관심이 없구나,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는구나 하며 속상해하는 대신 그때그때 내 상태를 정확히 알려주고 각각에 대한 행동 지령을 발표한다.

내가 지금 우울해서 맛있는 걸 먹고 싶거든. 우리 고기 먹으러 나가자.” “지금부터 어떤 사람 욕을 할 테니까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내 편 들어줘. 여자들은 그렇게 하면 기분이 풀리거든.” (...)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 까지 말로 해야 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가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남편은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다 알려주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 전에는 날 우울하게 한 만큼 남편도 혼란스러워하며 답을 찾는 게 당연한 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혼란과 고통 속에서 답을 찾아내야 내 마음이 풀리는 건데. 그는 혼란스러워만 하고 답을 찾는 건 쉽게 포기했다. 그에게 수수께끼를 내기를 포기한 다음부터는 모든 게 수월해졌다. 그냥 그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지금 그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해야 할 최선은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해준다.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격이지만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려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훨씬 나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91-194p

 

- 가사 분담,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원고 마감을 앞두고 한창 바쁠 때였다. 그날 일을 끝내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저녁밥을 지어 먹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그때 설거지를 미루고 소파에 퍼져버리면 잠자리에 들기전까지 못 일어날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하는데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고무장갑 위로 툭, 눈물이 떨어졌다. 요리는 내가 하고 밥은 다 같이 먹었는데, 왜 설거지도 내가 해야 하나, 더구나 나는 전업주부도 아니고 일을 하는데... 억울하고 억울했다. 소파에 몸을 맡긴채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일순간 살의를 느꼈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하는 기혼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의 남편들만 이럴까?

 첫 번째는 한국사회에서 가장에게 기대하는 책임감 때문이다. 남성들은 능력 유무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가정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의 일을 시한부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 남자들에게 집안일이란 언젠가는 아내가 전담하게 될 일이니 내킬 때만 도와주면 되는 것일 뿐, 결코 내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에서 먹고 산다는 일의 엄혹함이다. 출근 시간은 있으되 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한국의 직장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한다. (...) 일하는 데 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직장인들은 집에 오면 그저 쉬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미루고 싶다. 그러다 보니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가사에 보다 의무감을 느끼게 되어 있는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집안일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남성성과 가사를 상극으로 보는 문화적 잔재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남편들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고 엄포를 놓던 어머니들 아래서 자랐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도 가사라는 과목을 여학생들에게만 가르쳤다. 그냥 해도 힘든 일인데 어려서부터 네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배운 일을 나서서 하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들에게 되도록 남편을 가사에 참여시키기를 권한다. 물론 나도 그러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지치고 힘들수록 남편에게 집안일을 부탁하지 않는다.그를 설득하고 언제쯤 그 일을 해줄 건지 물어보고 잊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들의 스트레스가 내가 직접할 때 드는 힘을 한참 웃돌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느 정도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이번 생애에는 틀린 것 같은 가사 분담을 그래도 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을 위해서다. (...) 가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가장은 누가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은 평생을 두고 보면 삶의 일부이지만 가정생활은 삶 자체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도 집안일은 너무 늦기 전에 어느 정도라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난 나도 포기한 것 - 남편이 집안일을 내 일처럼 당연히 하도록 만드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남편이 그렇게 한다면 그건 그녀의 행운일 뿐이다. 대신 조금씩 설득하고 칭찬해가면서 끌여들여 보는 것이다. 186-190p

 

엄마, 선생님이 지난 학기 교과서를 전부 집에 가져가라고 하셔서 짐을 쌌는데 너무 무거워요. 학교로 좀 와주시면 안 돼요?”

 나는 아이가 웬만큼 크고 나서는 학교에 드나들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 시간을 놓치면 좀처럼 다시 집중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무렵에도 아무리 잠깐이라도 학교에 다녀오고 나면 그날 일은 아예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나이 쯤이면 굳이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자기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우였다.

 아이의 전화를 받은 나는 한 삼초쯤 망설였떤 것 같다. 밖을 내다보니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우산에 무거운 책 보따리 까지,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겠다 싶었다. 나는 가겠다고 대답으ᅳᆯ 하고 겉옷을 챙겨 입고 학교로 나썼다.

 그런데 딸은 학교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집 쪽으로 한참 걸어오고 있었다. 횡단보도 앙v에서 나와 조우한 딸은 제가 불러놓고도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반겼다. 마치 내가 진짜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아이의 짐을 받아들고 걷는 나를 향해 딸이 연신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고마워요..”

마치 지나가던 행인에게 호의를 빚진 것처럼 고마워하는 딸의 모습에 나는 좀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약간의 죄책감도 느꼈다. 평소 엄마가 얼마나 냉정하게 느껴졌으면 이런 정도의 일로 저렇게 고마워할까.

 하지만 딸의 얼굴을 보고 그런 생각은 이내 지워졌다. 짐을 덜고 우산을 나눠 쓰며 걷고 있는 딸은 밝게 웃고 있었다. 아이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평소에 나는 아이에게 엄마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고 그걸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가르쳤다. 그날 아이는 내가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마중나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아이의 책가방을 들어주러 학교로 마중 나가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느끼지 못할 종류의 감정을 아이는 느끼고 있었다.

 나는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지나친 희생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희생의 대가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실망감이 어떤 것인지도 말이다. 아기가 조금씩 제 생각을 가지고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할 때 쯤 엄마들이 몸과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식과 남편에게 쏟아 붓는데, 그게 아주 당연한 것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다. 가족에게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전업주부들만 이런 감정을 겪는 것도 아니다.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쉽게 고갈될 수 있는 워킹맘들도 그런 감정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 그녀에게는 희생이 일종의 습관으로 굳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쯤 되면 상대방도 받는 것이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내 노력과 관심의 중심이 내가 아닐 때, 언젠가는 그 대상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는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 도대체 누가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영문 모를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

세상을 물들이는 악은 언제나 불행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행복한 사람은 남에게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결국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인 셈이다. 세계 평화라는 거대 담론으로 나아갈 것도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 불행해지니 말이다나는 아직도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시기에 딸을 어떻게 대했는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바빠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불행했던 시절이 딸에게 가장 미안하다. 불행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의 가장 약한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자식이다. 그래서 불행한 엄마들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힘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

 아이나 남편과의 사이에서 뭔가 삐걱거릴 때 멀리 떨어져 살펴보면 거기에는 항상 내 자신이 아닌 그들을 통해 행복감이나 대리만족 따위를 느껴보려고 하는 내가 있었다. 행복의 중심이 내가 아닐 때 서로가 불행해지더란 말이다. 자꾸만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는 건 씁쓸한 역설이다. 어머니들의 전매특허인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시작되는 각종 슬픔의 대서사시가 그 증거다.

 따라서 나는 내가 행복해지는 걸 제일 우선순위에 놓기로 했다. (...) 이런 식으로 점점 더 행복해지다 보면 아주 나이가 많아졌을 때 저절로 세상의 빛이 되어 있지 않을까? 242-247p

 

 임신 육 개월에 접어들 때쯤이었나, 배는 무거워 오는데 아직도 입덧이 가시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과일 코너의 멜론을 봤는데 태어나서 그런 강렬한 식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너무나 먹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지금처럼 먹고 싶다고 덜렁 들어 카트에 실어 넣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 나는 족히 십 분은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그냥 집으로 왔지만 이상하게도 그 일이 영 잊히지를 않았다.그리고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꽤 오래갔다. 가계부를 쓰던 내 입장에서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해도, 남편이 이거 하나 먹는다고 우리 굶지 않아! 먹고 싶음 먹어야지!’하고 호기롭게 장바구니에 담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해서 멜론은 나에게 서글픔과 원망의 과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 보니 이 신파적인 멜론의 추억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신용카드를 쥐고 있던 내가 그냥 멜론을 샀으면 될 일이었고, ‘이거 하나 먹는다고 굶지 않아! 먹고 싶음 먹어야지!’는 남편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 내 입에서 나왔어야 할 말이었다. 당시 아직 이십 대였던 남편은 멜론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무리해서 살 만큼 먹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하는 데까지밖에 생각이 못 미치는 철부지일 뿐이었다. 차라리 그때 내가 결단을 내려 멜론을 사먹고 다음 날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라도 했다면 궁색하지만 재밌는 추억거리 하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죄 없는 멜론에 한을 뒤집어씌우는 대신에 말이다.

 나는 아직도 주변에서 슬픈 희생으로 한을 켜켜이 쌓아가는 여성들은 많이 본다. 내 입으로 나를 좀 더 생각해달라고, 배려하고 챙겨달라고 말하는 일이 자존심 상하고 피곤한 일로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정말 뜻밖에도 가족들은 아내나 어머니가 자신의 욕구를 희생했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한다. 최근 앞의 멜론 사건의 전말을 남편에게 말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랬어? 그냥 사먹지 그랬어?”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은 원망과 허망함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로 바뀌어 고스란히 가족에게 되돌아간다. 나 자신을 허술하게 대접하는 습관은 가족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이제 세상살이에 익숙해진 덕에 내가 원하는 것을 거침없으면서도 맘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화법에 능숙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때로는 해야 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는 지론을 곧 잘 실천한다. 비록 남편이 내 말에 집중하게 하려면 텔레비전을 끄고 스마트폰을 빼앗은 다음 내 눈을 쳐다보게 해야 하고, 사춘기 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신중히 말을 골라야 하지만.

 이제 스스로를 대접하는 데에 익숙해진 내가 좋다. 멜론에 얽힌 슬픈 추억 따위는 다시 만들지 않을 자신이 있다. 43-46p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아빠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아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남이 챙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챙기는 거다. 사실 저 위의 메론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엄마도 위의 메론 에피소드처럼 그 상황에서는 말하지 않고 꾸욱 참고 다름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다가 몇 년 후 십 몇 년 후에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스타일. 며칠 전 내가 CAE 합격 턱으로 고기를 샀다. 고기를 먹다가 시헙 공부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시험 준비할 때 엄마가 얼마나 배려했는지, 그리고 엄마가 시험 준비할 때는 아빠가 배려해주지를 않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기억 없다는 반응.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엄마가 하면 힘들었겠다. 그런데 그때 이거 이거 도와달라고 말하지 그랬어~’ 라고 보탰었는데 워낙에 같은 패턴으로 반복이 되어서 이제는 그냥 그래~’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서인지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게다가 올해 말부터는 은퇴하시면서 엄마 아빠 둘다 집에서 지내게 되니까 이런 패턴을 좀 깨야 한다고 생각해서 위의 메론 이야기를 했다.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말로 하라고. 소제목을 그대로 써서 가족에게 수수께끼 내는 거 아니야라고도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그래봐야 똑같아~’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요즘에 친할머니께서 몇달에 한 번씩 우리 집에 2-3주씩 와서 지내신다. 아무래도 그러면 엄마가 해야할 일이 몇 배가 되니까 같이 밥을 먹다가 내가 나서서 '아빠가 좀 많이 도와줄 수 있을 때 할머니를 모셔오자'고 얘기했었다. 그때는 게다가 엄마가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우리와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셔서 챙겨드리려고 점심시간에 집까지 왔다가기도 하고, 주말에도 우리 아침 먹고 할머니 아침 챙겨 드리고 우리 점심 먹고 할머니 간식 챙겨드리고 같이 저녁 먹고. 때마다 약 챙겨 드리고 평소보다 집안 상태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것까지. 그런데 아빠는 일의 연장선상이라고는 하나 그 때 유독 바빠서 일주일에 3-4번 회식에 주말에는 골프를 갔거든. 그래서 할머니께서 큰집으로 돌아가시고 셋이서 밥을 먹을 때 내가 할머니께서 오실 때는 아빠가 최소한 평일 2번은 같이 식사하고, 오시기 전 주말은 다같이 대청소할 수 있게 잡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오히려 나는 서운하지 않은데 왜 그러냐. 일이고 사회생활인데 어쩔 수 없는 거 난 이해한다 라며 나를 몰아붙였다. 제일 어이없었던 것은 그러고서 몇 달 후 유현이가 전에 얘기를 참 잘했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거. 뭐야? 나한테 뭐라고 하지를 말던가, 엄마가 자기가 원하는 거 힘든 거를 말하지 않아서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오히려 내가 유난 떠는 것처럼 그래놓고!!!

 나는 내가 화가 나면 뭐에 대해서 화가 났는지 콕 찝어서 이야기하고, 서운한 점도 바로 이야기하고,원하는 게 있으면 알아차려주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말한다. 여자들은 보통 안 이런 다는데 내가 왜 이런 성격이 되었나 했는데 엄마처럼 참고 알아주길 기다렸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는 걸 봐와서 일지도 모른다.

 내 삶을, 내 시간을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남들도 그것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희생이 습관이 되듯, 받는 것도 습관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가족에게 또 나에게 해주는 만큼 절대로, 절대로 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가족들이 원하는 것보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열심히 챙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전에 엄마에게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라는 책도 줬었고.

 엄마가 나에게 너도 결혼해봐라 그럼 이해할 거라고 하는데 이건 성격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남편이랑 부딪히는 부분도 당연히 있겠지만 엄마와 내가 워낙 성격이 다르니까. 책에서 결혼 생활을 해보면서 깨달은 방법인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기를 난 지금도 하고 있거든. 특히 남자인 친구들에게는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한다. 책에 나온 예시랑 거의 비슷한데 오늘 정말 쓰레기 같은 일을 겪었는데 어차피 해결 방법 없는데 속이 답답해서 한 번 쏟아붓는다. 들어줘 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오늘 생일이니까 축하해라(해줘라도 아님) 라고도 하는 사람이라. 블로그만 봐도 평소에는 진짜 혼자서 주절거리는 느낌이다가도 응원이 필요할 때는 응원해주세요, 자랑일 때는 자랑합니다 이런 식으로 딱딱 요구를 하거든. 문득 생각해보니 엄마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쌓여서 그런지 원하는 걸 말하지 않고 그냥 알아주기를 뉘앙스로 비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해주지 않는다.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서 표현하려는 노력 정도는 하라고. 물론 말하는 사람에게는 엄청 잘 챙겨주긴하는데 확실히 내가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닌듯.

 그리고 엄마와는 다른 결혼생활을 할 것 같은 이유 하나 더 꼽자면 나는 집이 더러운 꼴 잘 보거든. 보통 남편들이 집안일을 해도 다시 해야 된다, 눈에 안 찬다 그러면서 자기가 다 하는 사람들 상당히 많은데 난 대충 해도 그냥 살 자신 있고, 심지어는 안 하면 방치할 자신 있음.


 다시 강조하지만 나의 삶과 나의 시간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서서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챙겨주는 사람도 아주 드물게, 이 세상의 슈퍼히어로 비율 정도로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건 그 사람이 대단한 거지 당연한 게 아니다. 내가 나를 좀 소중히 여기자.

 

 워낙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워킹맘, 전업맘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쓸 거라 짧게만.

 

 나는 이제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이 그만 오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남녀 임금 격차로 십수년째 OECD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성격차 지수가 이슬람 국가들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인 나라에 살면서 여자의 적이 여자라니. 좁은 입지에서 서로 경쟁하다 보니 여자들끼리 부대끼는 건 당연한 건데, 보다 운신이 자유로운 남자들은 그걸 구경하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몇몇 여자들은 당장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여자를 보며 그 말을 따라한다. 어떤 여자가 상처를 주었다면 그 사람이 나쁜 거지 여자가, 전업맘이 워킹 맘이 나쁜 게 아니다. 222p

 

 미친 여자가 있다면 여자가 미친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미친 거다. 쓰레기 같은 남자가 있다면 남자가 쓰레기가 아니라 그 남자가 쓰레기인 거다. 특정 집단을 일반화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그 집단이 나를 본격적으로 처치해야할 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뿐이다. 지금 이 세상을 여자로 사는 것도 참 힘들고, 남자로 사는 것도 참 힘들다. 워킹맘으로 사는 것도 힘들고, 전업주부로 사는 것도 힘들다. 내가 하는 일이 중간중간 쉬는 텀이 있는데 그때마다 느꼈다 나는 전업주부로는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겠구나. 이에 관해서는 [전업주부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포스팅을 따로 해서 구구절절 풀어낼 예정이다.

 

 제목만 보고는 살짝 까칠한 이야기, 부정적인 독설들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동안 손을 못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일러스트도 귀엽고 에피소드들도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정이 묻어나서 내내 입꼬리를 올리고 읽었다. 처음에 적었듯이 이 책이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져서 소장하기로 결정을 했고, 나이가 들어서 내가 혹시라도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는다면 이 책이 어떻게 읽힐지도 궁금하다. 잘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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