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켜 두신 이유
- 텔레비전을 켜 놓은 동안에는 스멀스멀 밀려오는 고독감을 억누를 수 있지만 텔레비전이 꺼지는 순간 다시 고개를 드는 숨 막히는 적막감이 어머니는 싫으셨을 게다. 20p
떠나보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 관계에 있어 '충분함'이라는 것이 있을까? 늘 관심을 가지고 채우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고 말라버리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24p
아버지의 체온
- 초등학교 1학년 때쯤...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억수 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귀한 시절... 수업을 모두 마치고 친구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 노란 비옷을 입고 교문을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의를 벗더니 내게 등을 내미셨다. 내가 등에 엎드리자 아버지는 그 위에 다시 우의를 걸쳐 입으셨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때만큼은 정말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다시 한번 그 때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볼 수 있다면...29p(수정)
이제 알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을
- "고맙습니다, 아버지." 33p
딱 한 번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적어도 임종만은 지켜드릴 수 있는 순간으로라도 돌아가고 싶다. 하루 종일 아버지 옆에 앉아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북어처럼 마를 대로 말랐던 손도 잡아드리고 싶다. 37p
나에게도 품어줄 고향이 있다면
-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주저않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 알 수 없는 울분이 목까지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 이유 없이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질 때, 왜 왔느냐고 묻지 않고 그저 넉넉한 웃음으로 반겨줄 수 있는 그런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43p
옛날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우리는 가난한 시절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시설을 함께했던 우리 주위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함께 채웠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49p
수정이에게
- 초등학교 6학년 때...새하얀 피부에 예쁘장한 얼굴...부끄럽지만 그 때 네 모습은 정말 예뻣어... 세월이 아주 많이 지나 20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가부장적인 남편을 만나 통금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며 동창회 자리마저 허겁지겁 박차고 일어나던 네 모습에 가슴 아팠어. 그게 너의 마지막 모습일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기에 어느 날 바람에 밀려온 낙엽처럼 훅 던져진 네 부고가 더욱 가슴 아팠어. 52p(수정)
그 때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 45년전 배가 고파 술 찌꺼기를 먹고 등교하여 수업시간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지금은 보란 듯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p56(수정)
지식이 아닌 문화의 차이
- 누군가 명품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은근 주눅이 드는 것마저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랴 가난 속에 살아온 환경이 명품보다 값싼 제품들에만 눈이 가도록 길들여져 있었던 것을..그러기에 나는 명품에 대한 나의 무지가 그리 부끄럽지 않다. 61p
이제는 미룰 시간이 많지 않음을
-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며 산다. 공부도, 일도, 사람도, 그리고 사랑도....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하기 싫다는 이유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무기력하다는 핑계로, 하지만 그렇게 뒤로 미룬 일들은 언젠가는 후회로 다가오는게 세상살이의 이치인 것 같다. 65p
붙들고 있을 소중한 기억이 있다는 것
-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나들이를 제안했다. 목적지는 어린이대공원...안타깝게도 그날은 몹시도 추운 겨울날이었다. 너무 추운 탓에 모든 동물이 사육사에 들어가 있었다. 많은 동물을 볼 수 있을거란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지만 온 가족이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나들이는 만족스러웠다. 40여 년이 다 된 낡은 기억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68p(수정)
아버지, 당신의 마음속 고독을 헤아립니다
- 늘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았던,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이용도 많이 당했으나 끝까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치 않았던 아버지, 가슴속에 그렇게 깊은 그리움을 담고 있으면서도 마음 놓고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아버지는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웠을까? 74p
편안함의 반대말
- '편함'의 반대말을 무엇일까? 불편함? '편함'의 반대는 '서러움'이 아닐까 싶다. 78p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 아니라 망각의 동물이 아닐까
- '전화 한 번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이, 어머니는 어느덧 팔순을 넘기고 말았다. '어어'하는 사이에 어느새 내 주위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82p
우리, 이 정도면 참 잘 살아왔다
- 가지 않은 길은 어디까지나 미련일 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지 모른다. 그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일, 소심해서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친 일들이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뀔수 있을까? 내가 가지 않은 길은 내 길이 아니다. 8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