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좋은 점보다 싫은 점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친구1은 이를 두고 허공 주먹질이라고 표현하는데 매우 적합한 표현이다. 우리는 친구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서 비판을 삼가지는 않는다. 그런 동정은 되레 모욕이니까.

친구2는 문보영이 신간을 낸다는 소식을 듣고 “문보영이 또 산문집을 낸다고?” 라고 반응했다. 제목을 듣고는 “너무 감성 에세이 같아서 별로다.” 라고도 했다. 친구3은 문보영의 전작 <일기 시대>를 읽고 사차원인 척하는 여중생 같다고 했다. 나는 팬으로서 품위를 지키고자, 반박을 하자니 구구절절 구차한 말만 생각나서 수긍했다.

나 역시도 에세이, 특히 감성 에세이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싫어한다.
1. 아무런 자료조사도 배경지식도 없이 자기 감정에 취해서 발산할 뿐이거나, 일상 속 경험을 통해 대단한 교훈을 얻은 양 하지만 지극히 뻔한 경우가 다분하여 전반적으로 불성실하고 게으르다.
2. 개성이 없어서 누가 쓴 글인지 저자 이름을 가리면 구분할 수 없다.
3. 신선한 통찰력도 재미도 없어서 단순한 쾌락이나 지적 만족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문보영은 드물게도 이와 정반대되는 작가다. 농담 같은 말 속에 깊고 신선한 통찰이 있고,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상대방의 선의를 가정하고 이해하고자 하며,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의 겸손이 있다.

그녀는 사건을 재치 있게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장르가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다. 흔한 필명조차 쓰지 않고 외부 활동도 잦은 작가인데 가끔은 시인의 이름이 거짓이고 외부 활동을 하는 사람은 대리인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만큼 창의성과 재치가 번쩍번쩍 빛나서 이 사람이 꾸는 꿈에 들어와버린 기분이 든다.

문보영을 제외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대부분 외국인이다. 낯선 이국에서 만들어진 문화는 내게 신선함을 준다. 작가 개인이 가진 개성과 매력은 아니지만 외국인인 내게 엇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러한 이유로 이민자 문학을 특히 좋아한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된 줌파 라히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거의 외국인 페티시즘에 가까운 강박적 취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 쓴 글이 내 마음에 공명하게 된 일이 항상 신기했는데, 이번에 그 주인공이 이민자 문학을 직접 탐험해 주어서 나로서는 이 책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었다. IWP에 참여할 한국인으로는 너무 적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이 경험을 통해 성장했듯이, 나도 이 책을 통해 내 취향 발달 궤적을 더터보며 고민할 수 있어 좋았다. 어쩌면 개성을 향한 집착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은 나라는 전 국민이 똑같은 외모와 말투와 취향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그러니 내가 진정 원한 건 한국스럽지 않음, 즉 원래 나고 자란곳에서의 탈출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마음을 변명하고 싶지 않았는데, 반발심이 수그러들지 않아서 친구들의 재반박이 없을 이 곳에 다소 비겁한 반박을 적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 성향이 중도라고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읽고 생각해 보기에 좋다. 비록 한쪽 성향에 가깝지만 최대한 간결하게 그날그날의 일을 적어내어, 그간의 사건을 한눈에 보도록 했다. 막연한 감정이 아닌, 구체적인 숫자와 문자를 바탕으로 판단하려는 냉정한 책임감이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사와 숙명과 의미를 고찰하는 글이 또 나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기원 전에 살았던 철학자가 이미 같은 질문과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아내 훌륭한 솜씨로 기록해 두었는데, 레퍼런스를 확인하지 못한 어리석은 후손이 비슷한 질문과 해답을 엉성한 솜씨로 적어서 다시 책으로 펴내고 있지는 않나?


그런 망설임 탓에 고전에만 집중하느라 현재 살아 있는 작가가 쓴 작품을 멀리하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서.

여기에는 같은 숙명을 지닌 세 사람이 나온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숙명에 대응한다. 체념하거나 순종하거나 반항하거나 협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독립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관과 대응 방식에 영향을 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투와 온도가 같다. 가족이라서, 혹은 같은 생활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당사자 각각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환경 요인으로 인해 능동성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서 자꾸만 의미를 찾는다. 무용한 짓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라도 상황을 합리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환경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혼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써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아질 도리가 없다. 가능하다는 믿음은 오만이거나 비겁이다.

이 책의 세 주인공 역시도 그런 이유에서 생사의 의미를 찾았는데, 사실 그들은 제게 주어진 숙명 뿐 아니라 서로를,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심지어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한다. 이 세 사람이 서로 닮은 것처럼. 그러나 한편으로 매우 다르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이 서로 반목할 때처럼. 그러므로 비슷한 삶이라도, 비슷하게 보일 지라도 매 순간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따분하거나 무력한 작업일지라도.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역사를 빚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사람과 이 세상 둘 중에 무엇을 구하겠느냐고 물으면, 한 사람도 구할 수 없는데 세상을 어떻게 구하겠느냐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없는 숙명을 단지 버텨야 한다면, 그것은 질문이 아니니 답할 수조차 없다. 이 소설은 버티는 방법이 아닌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만을 삶의 태도로 삼고 살아가는 자칭 지식인 계층 남성이 쓴 글 같았다. 반복해서 튀어나오는 약자 대상화와 연민이 꽤나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고 그녀가 그렇게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의 복잡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간 남성의 글을, 시선을 보고 듣고 배워왔으므로. 이따금 나타나는 자아성찰의 흔적에서, 적어도 그 남성의 축축함에 제 몸이 스며들게 방치하지는 않았다는, 최선을 다했음이 느껴졌다. 계속 살아주시고 써주시길 바라고, 작가님의 싸움을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