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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생사와 숙명과 의미를 고찰하는 글이 또 나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기원 전에 살았던 철학자가 이미 같은 질문과 고민을 하고 답을 찾아내 훌륭한 솜씨로 기록해 두었는데, 레퍼런스를 확인하지 못한 어리석은 후손이 비슷한 질문과 해답을 엉성한 솜씨로 적어서 다시 책으로 펴내고 있지는 않나?
그런 망설임 탓에 고전에만 집중하느라 현재 살아 있는 작가가 쓴 작품을 멀리하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서.
여기에는 같은 숙명을 지닌 세 사람이 나온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숙명에 대응한다. 체념하거나 순종하거나 반항하거나 협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독립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가치관과 대응 방식에 영향을 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투와 온도가 같다. 가족이라서, 혹은 같은 생활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당사자 각각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환경 요인으로 인해 능동성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서 자꾸만 의미를 찾는다. 무용한 짓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라도 상황을 합리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환경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혼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써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아질 도리가 없다. 가능하다는 믿음은 오만이거나 비겁이다.
이 책의 세 주인공 역시도 그런 이유에서 생사의 의미를 찾았는데, 사실 그들은 제게 주어진 숙명 뿐 아니라 서로를,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심지어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한다. 이 세 사람이 서로 닮은 것처럼. 그러나 한편으로 매우 다르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이 서로 반목할 때처럼. 그러므로 비슷한 삶이라도, 비슷하게 보일 지라도 매 순간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따분하거나 무력한 작업일지라도.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에게 역사를 빚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