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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평점 :
"지금 내가 가진 언어를 그때는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배움의 발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나는 이 문장을 선택하겠다. 모르몬교(국내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음) 가정에서 태어난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태초의 카오스 상태에서 세계의 질서가 갖춰지는 모습과 유사하다(이 내용은 성경의 창세기 첫장에 잘 묘사돼 있다).
인간의 '사유' 능력은 지구 상의 어떤 생명체도 갖추지 못한, 다른 생물들과 극명한 존재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다. 이 독특한 능력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파악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를 탐구하는 데도 절대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신비라고 말하기도 하고 종교라고 불리기도 하는 영적인 세계를 인식하고 상상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사유'가 종교를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종교개혁 이후로 신비의 영역을 인간의 이성으로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파악하려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물론 그 이전 역사에서도 사례가 많았지만) 다양한 종교 분파가 만들어지고, 이단이 등장한다. 모르몬교가 이단으로 규정된 이유도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를 비틀어 자신들만의 종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모르몬교가 왜 이단인지 서술하는 건 글의 의도에 벗어나는 범위이기에 이정도로만 설명).
모르몬교 가정 중에서도 더 유별나다고 할 수 있는 가정에 타라 웨스트오버는 일곱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종교적 신념(이단적 신념)에 따라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출생 신고도 하지 않고, 학교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고, 심지어 심한 교통 사고를 당해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 어머니의 약물 치료에 모든 가족이 의존할 뿐이다. 타라의 아버지는 문명화된 모든 것을 거부한다. 종말의 날을 기다리며 마지막 때를 준비할 연료를 모으고, 음식을 저장하며, 정부군의 공격에 대비할 무기를 사들인다. 가족에게 아버지의 영향력은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아무도 감히 반대하고 나서질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모아들이는 폐철처럼 구부러지고 단단한 이들 가족의 세계는 '교육'이라는 단어가 스며들며 녹이 슬기 시작한다.
셋째 오빠 타일러가 대학에 가겠다고 선언하고 집을 떠난 후로 타라의 세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타라는 더이상 아버지의 폐철처리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감정의 근원을 명확하게 자신의 언어로 인지하지는 못한다. 다만, 다른 일자리를 구해 아버지와의 분리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음악과 춤을 배울 기회를 접한다. 소녀는 그렇게, 다른 세계를 향해 발을 딛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구축한 단단한 세계를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아버지에게 세뇌받은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타라는 자신이 뿌리 내린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벗어나고 싶은 세계보다 더 악하다는 믿음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떠난 둘째 오빠 숀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타라가 집을 떠날 계기가 마련된다. 숀은 아버지와 대립하고 아버지의 세계를 떠나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만큼, 교통사고로 굳어 버린 동생의 척추를 어머니의 약물 치료에 맡기지 않는다. 마치 아버지의 굳어버린 세계를 비트는 것처럼 굳어버린 타라의 척추를 자신의 힘으로 비틀어 버린다. 하지만 숀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동생을 재단한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은 폭력으로 드러나고 그 감정이 이성을 지배해 타인의 고통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라가 숀과 좋은 추억을 쌓기도 하지만 숀은 아버지보다 더한 폭언과 폭력으로 타라의 세계를 더욱 좁게 조인다.
아버지가 구축한 세계를 떠날 수 없었던 타라를 떠나게 만든 건 역설적으로 그 세계의 중심 사상이었다. 모르몬교의 이단적인 교리, 가부장적인 분위기, 남성 우월주의, 그리고 비진리와 비이성. 타라는 대학에 입학해 한걸음씩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홀로코스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질문을 하다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모르몬교 교리를 따르다가 룸메이트들에게 별종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교육'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자신만의 언어가 하나씩 내면에 쌓이면서 타라의 세계도 넓어진다.
교육이란 얼마나 깊고 넓은 단어인가. 우리는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아주 작은 범위의 교육을 떠올릴 뿐이지만, 타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수도, 새롭게 할 수도 있는 게 교육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어떤 배움을 경험하는 가에 따라 그 배움이 한 사람의 삶을 찌그러뜨릴 수도, 자유를 획득할 수도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