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수련회를 다녀온 이후로 기억한다. 수련회에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후로 내 피부는 일반적이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이렇게 글을 시작하니 마치 심각한 바이러스에 노출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이야기 같다). 그 무렵 무언가에 긁히면 긁힌 자국 그대로 피부가 부어올랐다. 피부가 공기 중에 직접 노출되면(옷을 걸치고 있지 않은 상태) 어느 순간 등이나 팔뚝을 벅벅 긁고 있는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었다. 손톱의 공격을 받은 목덜미, 등, 팔 등의 피부 부위는 벌겋게 부어올랐다. 심지어 손톱으로 글씨를 쓰면 글씨 그대로 피부가 부풀어 올랐다. 미관 상 보기에 좋지 않은 건 물론이었다.
그 증상은 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고(최근까지) 인식하지 않고 지내던 어느 순간, 더 이상 긁힌 자국이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피부과를 간 적도 없고 약을 먹은 것도 없고 특별히 어떤 조치를 취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피부가 공기에 직접 노출되면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지금도 등짝을 벅벅 긁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책에는 내가 겪은 증상이 정확하게 설명돼 있다. 이른바 '피부묘기증(皮膚描記症)'. 피부가 묘기를 부린다는 뜻이 아니고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 피부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라고 한다.일종의 두드러기 증상인데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쉽게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번도 피부과에서 치료를 해보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당신이 이제껏 참아온 그것, 알레르기 입니다』를 읽고 인지하게 된 한 가지는 내 피부가 건조하다는 점이다. 겨울철에는 특히나 전기를 자체 생산해 왔는데, '딱' 소리가 날 만큼 꽤 강한 전류를 발사하기도 한다. 그런 전기를 발산한 후에는 손가락 끝이 얼얼해지고 그 느낌이 꽤 오래가기도 했다. 정전기를 몸에서 제거하기 위해 시도한 행동은 전신에 오일을 듬뿍 바르는 일이었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타고난 신체적 운명이려니 생각하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내가 너무나 한심해 보인다. 보습을 철저히 유지한 뒤로 손가락에서 전기를 발사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두드러기와 같은 피부 알레르기 뿐 아니라,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도 보습을 꾸준히 유지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피부 보습은 여러 모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책에서는 피부 알레르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 비염, 천식, 만성기침, 음식 알레르기, 약물 알레르기, 아나필락시스, 호산구증가증, 곰팡이 알레르기를 각 챕터에서 다룬다. 무엇보다 책을 집필한 의사들의 말처럼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약을 안 먹으면 7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감기 바이러스를 약으로 다스릴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고 의사에게 처방을 받으면서도 알레르겐(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 인자)으로 인한 증상을 치료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그 원인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이유를 왜곡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흔히 알레르기는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외부의 바이러스 공격이나 기타 반응에 취약해진 상태에서 나탄나는 증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알레르기는 오히려 면역기능이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다양한 증상을 발현시킨다고 봐야 한다.
알레르기는 유전적인 인자로 나타날 확률이 높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주변에서 비염으로 고생하는 사람 한두명쯤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사실이다. 모든 알레르기 반응을 명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알레르기를 방치하다가 더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판단할 수 있으므로, 내가 혹은 주변 사람들이 알레르기로 신음하고 있다면 함께 읽고 대책을 논의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