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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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게 하는 건 '고통의 균질화'라고. 우리 모두 다 함께 고통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계속 살게 하는 거라고 ... 대신 내가 결혼을 한 후 어머니는 이렇게만 말했다. "지금의 너를 봐, 넌 얼마나 행복하니?" p. 52


자기 자신을 조금씩 밀어붙여서 낭떠러지 끝에 서게 한 다음, 그 아래를 바라보면서 아찔함을 느끼고, 동시에 아직은 안전하다고 안심하는 그런 방식 말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평생 그렇게 실체 없는 거정 속에 휩싸여 살았는지도 모른다. p.110


처음 접한 손보미 작가의 소설은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실려있던 "폭우"였다. 비가 오고, 불이 나며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던 장면은 강렬했고, 계속 머리 속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번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운 장편소설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서평단에 지원했다.


손보미 작가의 공간에 대한 묘사는 여전히 나를 빨아들였다. 표지의 그림에도 나와있듯, 나무 뒤로 길게 그림자가 진 듯, 작은 동네 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그리고 그것을 서술하는 어린 시절 화자의 시점은 일상에 드리운 그림자를, 그 어두움과 서늘함을 독자에게 아낌없이 전달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여성화자들의 돌봄이 그려져있다. 화자와 어머니의 관계 뿐 아니라, 숨어있던 국회의원 내연녀를 돌봐 준 어머니, 그리고 화자가 어린 시절 따돌림 당하는 고정연을 감싸고, 성인이 된 이후에 홀연히 사라진 윤이소를 걱정하는 모습까지. 각자 다른 모습과 방식으로 상대를 걱정하고 돌보았으며, 상대의 행복과 안녕을 바랬던 악의 없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 돌봄이 모두 옳았다고 할 순 없다. 다들 서툴렀으며, 상대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혹은 소극적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건없이 그저 타인의 행복을 바라며, 그것이 본인의 지상과제라고 생각하며 매달렸던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을 적어도 한 명 이상 알고 있고,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자꾸 그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이났다.


이 책은 마지막 챕터에 작은 반전을 가지고 있다. 왜 어머니가 나의 신체적 성장은 박수치고 기뻐하면서, 화자가 학교에서 노력해서 얻은 단소 실력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았는지 마지막 챕터를 읽고서야 비로서 이해가 된다. 다른 독자들도 이 책의 마지막을 읽고 밝혀진 반전에 마음이 저릿저릿해지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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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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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으나, 읽다가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충격적인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했고, 분노하다 결국은 마음이 아려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 시설이 고작 30여년 전, 전국에 버젓이 존재했고, 이에 대한 법적 수사는 형식적인 것에 그친 이 안타까운 사건을 나는 왜 이제서야, 그것도 뉴스가 아닌 소설로 접하게 된걸까. 그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사회 하층민이었던 수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린 사람은 없었다.

길의 걸인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잡아들일 수 있는 내무부 훈령 410호, 심지어 잡혀온 사람들 중 70%는 그냥 일반 사람들인, 아니 그냥 사람을 국가에서 마음대로 치우는 이 행위가 용납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주인공 준과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해서, 차마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알게 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야 한다. 이 사건이 제대로 된 처벌과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현실 뒤에는, 치부를 들어내고 싶지 않아하는 국가 권력과, 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보통 사람들이 있었다. 미연으로 대표되는 피해자들의 삶은 형제의집 감금 사건으로부터 단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살아왔으니, 이제 부터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 말은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다.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 잊혀 지고만 사건은 미연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소설은 망각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방인곤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사람을 사유재산으로, 숫자로 여기고 수 많은 폭력,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형제의집 사건의 실질적인 가해자는 노년에 치매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잊어버리고 하루 하루를 속편하게 독서를 하며 보내고 있다. 미연과 준이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지만, 기억나지 않은 일을 어떻게 사과하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던 그의 모습 앞에서 미연은 그저 주먹을 꽉 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망각이라는 폭력을 행함으로써 형제의집 사건과 같은 인권 유린이, 복지시설을 내새운 돈벌이가 반복되고, 주된 피해자인 사회 하층민들은 이 폭력을 그저 당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이번 소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한다. 사회적 비극을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서 우리는 어제로 부터 한 걸음 겨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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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툰 : 용기 있게, 가볍게 마음 시툰
김성라 지음, 박성우 시 선정 / 창비교육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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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의 궁합은 언제나 옳다.


시를 짧고 간결한 문장과 단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낸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독자의 마음에 남아 오랫동안 머물다 가곤 한다. 하지만 종종 시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시인의 보여주는 세상과 마음에 다가가고 싶지만, 어렴풋한 느낌 외에는 더 이상 다가가기 힘듬을 느낄 때가 종종 있고, 그렇기에 시는 나에게 강렬하지만 어려웠다.


하지만 만화와 함께 시를 읽으면서 나는 그 장벽이 사라짐을 느꼈다. 일상의 사소한 상황을 그림과 몇 마디의 대사로 읽은 후에 나타난 시는 온전히 가슴을 열고 나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특히 최현우 시인의 "코코, 하고 불렀습니다" 라는 시를 읽을 때는, 만화에 나온 강아지와 견주의 마음이 가슴 깊숙히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친절하고 가벼운 시집이 주는 여운은 어느 책보다 따뜻하고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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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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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에 없는 것이 있다면 Why(왜?)라는 질문이다.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길, 그리고 생각하기를 멈췄고, 그들의 삶에 더 이상의 자유는 없었다. 이처럼 사유를 한다는 것, 삶에 작은 것에도 궁금증을 가지고, 사유하고 도전하는 삶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더 나아가 행복하게 만든다.


줄리엔 반 룬 작가의 "생각하는 여자"의 책은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의, 우정 이 6가지의 일상적인 분야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철학이 그러하듯 정해진 답은 없다. 수 많은 질문이 있고, 수 많은 주장이 있을 뿐, 독자가 할 일은 그저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는 것이다. 이 책이 다른 철학적 책과 다른 점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놀랍도록 쉬운 가독성이다. 알렝 드 보통의 책과 같이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와 다양한 철학적 대화가 번갈아가며 배치되어 있는데, 저자의 자전적 산문은 독자로 하여금 관련 주제에 더 많은 몰입을 하도록 만들었고, 여성 철학자들과의 대화는 적절한 타이밍에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두번째는, 살아있는 지금 시대의 여성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엮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어져온 철학적 사유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지금 시대에 더 생각해야 할 사유들이, 그리고 여성이기에 고민했을 철학적 문제는 필히 존재하고 이 책은 이 간지러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준다. 여성으로써,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문제에 대해 이 책은 다양한 관점을 그리고 질문을 던져준다. 특히 제 3장에서 다룬 "일" 은 특히 더 와닿았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로써, 나의 노동력을 노동 시장에 판매한다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게 다루는데, 과연 나를 팔지 않고 일을 하는 일이 가능한가에 대해 끝없는 사유를 이어갈 수 있었다.

"생각하는 여자"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시대와 밀착되어 있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책이고, 이 질문들은 많은 여성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답을 당장 찾을 수 없을진 몰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6명의 여성 철학자들을 보며 특별한 유대감과 위안, 더 나아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The true will set you free!

#창비

#창비서평단활동

#생각하는여자

#줄리엔 반 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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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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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절할 수 있을까?


김봉곤 작가가 그려내는 이별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서로를 경멸하며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서 그럴까? 그의 헤어짐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화자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따금 연락을 주고 받을 때면, 서로의 오래된 별명을 부르며 다정하게 대화를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음을 화자를 알고 있고, 그게 그를 아프게 했다. 형섭과 함께한 추억이 있는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함께 키웠던 강아지를 정겹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자의 가슴 속엔 가시가 자라나 그의 마음을 찔러댔다.


화자는 불현듯 더 이상 그에 대한 글을 쓸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글 속에만 존재할 뿐, 앞으로 그는 소설이 될 수 없는 사람이 됨을 화자는 느낀다. 하지만 '사랑했었다'는 감정은 여전히 그의 마음을 짓누르며 그를 완전히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그러니까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에는 형섭을 놓지 못한 화자의 애절함이, 용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심정지가 온 환자의 가슴에 딱 한번만 더 CPR을 하는 의사의 마음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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