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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치 있다 - 마음을 회복하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안드레아스 크누프 지음, 박병화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3월
평점 :
#협찬 설령 불안과 같이여도 당신은 가치 있다.
요즘..
자꾸 심장이 뜁니다.
때때로 마음에
불안함의 파도가 밀려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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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어떤 전문가도 아니기에..
섣불리 뭔가를 스스로 치료하겠다고
나서선 곤란하다는 걸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는데..
행동은 그와 다르게 나옵니다.
자꾸만 뭔가를..
직접 해결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고..
그 오해를 만든 저 자신의
지난 행동을 원망하고, 반성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위축이 되고..
작은 실수도 없도록 하려다 보니..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되서 실수가 생기고;;
머릿속 의식의 흐름이 이렇다 보니..;;;
심장이 자꾸 뛰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뭔 일이 터진 건 없습니다.
그냥 뭔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몹쓸 촉 때문에 자꾸 불안한 건데;;;
이 불안의 정도가 살면서 느꼈던
그 어떤 것보다 큰 것 같아서..
이러다 뭔 일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뻔한 레파토리 같기도 하지만..
나름 진지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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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책을 읽을 때..
저자의 태도에 자꾸만
주목하게 됩니다.
때론 저자가
본인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과한 무리수를 두는 경우들도 보는데..
그런 뉘앙스가 언젠가부터는;;
꺼려지기도 하더라고요.
어느 양 모 의원(?)의 말이..
무진장 불편했던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큽니다......
이 책은 그런 뉘앙스가
안 느껴져서 너무 좋습니다.
제가 아동 심리 관련해서
서천석 박사님을 좋아하는데~
그 분만 맞다는 건 아니지만..
저한테는 가장 잘 맞다고
느껴져서 좋아하거든요.
이 책의 저자인 안드레아스 크누프..
역시 저에게 너무 잘 맞는 심리 전문가
라고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저만 독일인 성별 구분이 어렵나요???
글만 읽다가 누나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면 여성인 줄 알았을 겁니다..ㅜㅜ)
이런 분들께 특히 추천드립니다.
* 자신에게 유독 엄격한 분
* 실수 후 오래도록 자책하는 분
* 타인과의 비교로 자주 위축되는 분
* 번아웃과 무기력으로 지쳐 있는 분
* '완벽한 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은 분 !!!
(Hoxy.. 다 나냐며...........ㅠㅠㅠㅠㅠ)
일단 오늘은 시간을 다 써서..
이쯤에서 줄이지만 ~~~
또 돌아오겠습니다!!!
끝!!
#당신은가치있다
#안드레아스크누프 지음
#박병화 옮김
#인문 #심리학
#베스트셀러 #책추천
불안과 같이여도 가치 있기..
있기 없기..?? ㅜㅜ..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심리학
아래에서부터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나를 대하는 방식 돌아보기
사실, 겉에서 보기에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내면은 초조하고,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자신에게 냉혹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삶을 산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런 자기 불친절은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집단 현상에 가깝다.
내면 성찰을 위한 세 가지 질문
* 당신은 자신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이 부끄러운가?
* 당신은 열등감을 느끼거나 자긍심을 잃지 않고도 자신의 약점과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가?
* 당신은 모든 감정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가?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순간까지도?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다음 '그렇다'라고 흔쾌히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책을 보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은 자신의 내면과 잘 연결되어 있고, '자기 돌봄'을 잘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극소수에 속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p. 23~24
끊임없는 비난의 목소리
실수를 하거나 뭔가에 좌절할 때, 내면의 비평가의 부정적인 목소리를 들어봤자, 자신을 괴롭힐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라디오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틀어져 있다. 특히 뭔가를 실패한 상황에서 아주 심하게 뒤틀린 목소리가 나오는 이 프로그램이 마음 한구석에서 멈추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이대로는 안 돼. 너를 개선해야 해!"라고 속삭이게 된다. p. 31
기분이 행동이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욕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이미 배가 부르지만, 기분 전환을 위해 티라미수를 또 주문하는 사람은 주문하는 바로 그 순간에 밤에 잘 때 배가 아프리라는 예감을 할지도 모른다. 주중에 내내 사람들에게 시달린 나머지 주말에는 조용히 스트레스 없이 주말을 보내야 할 사람이 지난 초대에 대한 보답으로 토요일에 이웃을 그릴 파티에 초대하는 생각을 한다면, 저절로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쉬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런데 단지 보답을 위해 주방에서 오후 반나절을 준비하고 밤늦도록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을 했어."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 불친절하게 대한 기억이 지금쯤 저절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당신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심지어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 적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고 찾아내 보자. 혹시 최근 일주일 동안 그런 일은 없었는가? 또는 오래전부터 계속 반복되는 전형적인 예는 없을까? p. 38~39
우리의 삶은 왜
이토록 고단해졌을까?
만일 사회의 시스템이 그렇게 악랄하지 않다면 그리고 직장이 사실 마음이 편할 수도 있는 곳이라면, 번아웃을 이겨낼 수도 있다. '편할 수도 있는 곳이라면'이라는 가정적인 표현을 하는 까닭은 번아웃 유발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고, 이미 오래전에 삶의 전 분야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반가운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우리는 마음속의 목소리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그 목소리에게 맡길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 귀찮은 존재는 몇 차례 반복되다 마는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속을 필요가 없다. p. 42
고통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의 고통은 대부분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과 연결되어 발생한다. 그것은 생명과 연관된 존재론적인 경험이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났다가 죽는다. 모든 생명체는 즐겁고 만족스러운 경험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경험도 하는 법이다. 자기 돌봄의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이런 시각이 중요하다. 나의 고통을 나만의 것으로 보는 시선과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시선은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른 사람과도 연관된 것으로 느낄 때, 그 고통은 경감된다. 그래서 "고통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고통이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라고 확신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되어 고통의 압박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무엇보다 삶을 살아온 결과로 간주한다.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힘든 경험을 할 수밖에 없고, 거기서 불가피하게 개인적인 고통이 시작된다. 바로 이것이 심리치료가 개인적인 삶의 역사에 집중해 온 이유다.
심리치료에서는 이런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완벽한 부모를 만나 완벽한 환경을 누리며 성장한 아이는 살아가는 동안에도 늘 만사가 원하는 대로 전개되고, 더 바랄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치료에서는 인생의 커다란 도전을 이미 겪은 일처럼 간주할 때가 종종 있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너무 일에 매달려 자녀를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아빠, 부모의 조기 이혼 같은 경험에서 모든 고통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어릴 때 트라우마를 경험한 아이에게 유아기는 실제로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다 나은 이론은, 인생의 커다란 도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친다는 것이다. 질병, 노화, 신체적 결함, 언젠가 찾아올 죽음, 이런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도전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폭탄은 끝에 가서 터질 확률이 휠씬 높다. p. 45~47
채워지지 않는 마음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우리 가족의 처지를 아프리카 아이들과 자주 비교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무척 힘들게 사는데, 누나와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시금치를 먹지 않겠다고 하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불평만 한다고 혼이 났다. 그렇게 혼이 난다고 해서 당장 시금치가 더 맛있어지거나 먹고 싶어질 리는 없었다. 대신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고, 고마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말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풍족하게 사는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행복과 거리가 먼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수많은 연구 결과는 행복이 계좌 잔고의 증가에 따라 쉽게 커질 수도 있지만, 소득이 평균 이상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만족 역시 평균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물론 수입이 계속 인상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이스털린의 역설)
행복과 만족이 주로 복지수준과 관계가 있다면, 선진국 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야 하고 빈곤 국가의 사람들은 대체로 몹시 불행해야 맞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명예를 얻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 모든 것을 성취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보고 듣는다. 독일의 기업가인 아돌프 메르클레AdolfMerckle는 회사가 재정 압박에 시달리자 자살했다. 당시 소유재산이 약 70억 유로로 평가된 그는 독일 최고 부호층에 속했다.
세계 최고의 유명 인사 중 한 명인 가수 마이클 잭슨은 50세라는 이른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내면의 고통을 줄이려고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온갖 약을 먹었는데도 계속 불행하다고 느낀 것이다. 내면의 행복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외적인 조건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p. 49~51
스스로 만들어 낸 고통
사람의 이성은 삶이 바라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불교에서는 '고苦'라고 한다. 고란 예를 들어 뭔가 원치 않는 일이 생길 때를 말한다. 고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일어날 수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이웃 사람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출근길에 갑자기 길이 막힐 수도 있다. 아이들이 게임을 못 하게 한다고 아침부터 투덜댈 수도 있고, 퇴근 후에 편히 쉬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웃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고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도 생긴다.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하고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하루 종일 비가 내리기도 하고, 멀리 사는 연인과 만날 날을 오래 기다렸는데, 막상 만나서는 사소한 걸로 말다툼을 하고 5분 만에 헤어지기도 한다. 마음에 꼭 드는 새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어느 집인지 층간 소음을 하루 종일 내는 바람에, 자려고 누워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은 마음에 꼭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해, 날마다 '멋진 집에 살면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아침부터 밤까지 하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괴로움과 고는 현재에 대한 마음의 반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심지어 수년 또는 수십 년씩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사실과 맞서 싸울 때도 있지만("아,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지…?", "그래서는 안 되었어") 과거는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과거의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고 삶을 원망하는 것은 과거에 몹시 시달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 주변을 맴돌 때, 현재를 가꿀 생각도 의지도 사라진다.
거의 쉰이 다 된 내 의뢰인 중 한 명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언니만을 애지중지했다는 괴로움에 평생 시달렸다.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언니가 더 이상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지금도 화를 낸다. 자기가 겪는 모든 괴로음과 고통의 원인은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이 불공평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p. 54~55
내 마음의 진짜 주인
사람의 몸속에서는 쉴 새 없이 수백만 가지의 다양한 신체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 우리가 영향을 미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작용은 몇 개나 될까? 단 하나도 없다. 그런 작용은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우리의 의지로 영향을 줄 수 없는 영역이다. 몸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데 우리가 걱정하며 개입한다면 신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호흡이나 식사 후에 인슐린 수치를 맞추는 것을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고 개입한단 말인가!
우리는 어떤 전달물질을 쏟아내야 하는지, 신체의 저항력으로 어떻게 세균을 막아낼 것인지, 얼마나 빠르게 머리칼이 자라게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 우리는 신체의 활동 과정에 일체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다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예를 들어 운동량을 늘리거나 단백질을 더 섭취해서 영양 상태를 조절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제한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최근에 나는 한 의뢰인에게 사람은 대부분 신체 내부의 작용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그에게 어떤 책임도 없다는 설명을 했다. 그는 내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저 자신이 하는 일이니 책임도 제가 져야 한다고 봐요. 제가 만일 나쁜 생각을 하면 제가 나쁜 사람인 거죠."
이 의뢰인처럼 많은 사람이 생각을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방금 생각이 떠올랐는데" 또는 "생각이 났어"라는 말은 일상적인 표현이다. 바로 이런 표현으로 분명해지는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내기보다 생각이 "발생한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은 자기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뚱뚱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다른 생각, 예를 들어 '나는 최고의 용모를 지녔어'라는 생각을 선택할 수 없다.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냥 '나는 너무 뚱뚱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다른 생각을 그 앞에 들이미는 시도를 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생각을 믿을 것인가는 결국 통제 밖의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생각을 하는 것인가?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각은 우리와 무관하게 서로 소통하는 수천만 개의 신경세포를 통해서 발생한다. 신경세포 사이에서 '산책하고 싶다'라는 내용이 충분히 발생하면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산책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생각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뇌 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 생각의 주인이 아닌 셈이다.
여기서 사람의 감정과 행위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감정이 원하는 대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냥 나타난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갑자기 전혀 뜻밖의 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움찔하고 놀란다. 소음이 날 때, 최대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도, 이어서 예상치 못한 굉음이 들리면 우리의 심장은 박동이 더 빨라지면서 몸은 움츠러들고, 손은 땀이 나서 축축해진다.
나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가끔 밤에 어두운 숲길을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다. 덤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나는 불안해 진다. 아직 숲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고, 만난 소리의 주인은 노루 정도뿐이다. 대개 개와 함께 다니기 때문에 확률상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낮다. 그런데도 나는 불안해지며, 이 불안에 대하여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혼자 걱정하지 마!" 또는 "덤불 속에 웬 짐승이 있나 보지"라고 짐짓 크게 소리 내서 말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고 숲이 끝나 불빛이 보이는 길로 들어서서야 불안은 사라진다.
슬픔이나 기쁨, 수치, 분노 같은 다른 감정도 아무 때나 예고 없이 나타난다. 아마 당신도 "기죽지 마, 기운 내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다니까"라는 충고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당신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슬픔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고작 마음속의 고통을 옆으로 밀어놓고 감정을 감추는 정도만 할 수 있다. 그 이상은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다.
기쁨이나 호기심 같은 즐거운 감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기쁨은 아무 때나 찾아오고 아무 때나 사라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겨우 기쁨이 생길 때 그것을 즐기고, 다시 사라지려고 할 때 놓아주는 것뿐이다. p. 6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