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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평점 :
#협찬 "잘될 거야"라는 희망고문..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처음 이 책의 전면 표지에 적힌
문구를 봤을 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마도 그 말이 제가 막연하게 품고 있던
바람과 닿아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소외된 이들이 더 이상
각자 흩어진 채 남지 않고,
함께 연결되어 지금의 질서를
바꿔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저 역시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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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제가 체감하는 현실은
해당 문구와는 꽤 멀게 느껴집니다.
국내 상황만 보더라도,
또 시야를 조금 넓혀 국외까지 보더라도,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보다
답답함이 먼저 더 크게 밀려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결국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들의 의지보다
기득권이 스스로를 바꾸려는
의지가 훨씬 약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이를 한국 사회에 한정해 보자면,
저는 지금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그리고 언론이 개혁이라는 과제 앞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 인상으로는,
적어도 행정부, 더 정확히 말해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변화와 어느 정도 주파수를 맞추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하지만 입법부와 사법부는
그에 비해 훨씬 소극적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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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흔히 '제4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언론까지 더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저는 한국의 언론 환경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예전과 비교해 기울기의 정도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운동장은
평평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원인을 하나로
단순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결국 기존의 영향력과 이해관계를
지키려는 관성, 즉 '밥그릇을 지키려는 힘'입니다.
특히 언론 소비의 중심이 전통 매체에서
유튜브와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한 상황에서,
기존 언론은 공론장의 신뢰를 회복하기보다
생존과 영향력 유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스로 잘해서 인정 받기보단..
경쟁자를 깎아내려서 반사이익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것처럼 보여서
제 눈에는 비겁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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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제 문제의식은
비교적 분명해집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추구하는 진보'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이란 원래 기존의 권력 배치와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개혁의 필요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는 집단,
오히려 현 구조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에게
스스로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사법 개혁도, 검찰 개혁도,
의료 개혁도, 정치 개혁도, 교육 개혁도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기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부분적 조정만으로 정말 변화가 가능한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책 수정이 아니라
개혁이 작동할 수 있는 전제 자체를 바꾸는 일
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몇몇 전문가나
권력 엘리트의 판단에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되,
형식적인 청취에 그치지 않는
보다 적극적인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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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숙의의 출발점이 '막연한 낙관'
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늘
최악의 가능성을 상정해야 합니다.
비관에 빠지자는 뜻이 아닙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이 될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가장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게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뜻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은..
'최악을 억제하는 시스템'
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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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진보'라는 말 자체를 의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아질 것"
이라는 믿음,
"조금 불편해도 발전의 과정이니
감수해야 한다"는 태도,
"이미 문제를 알고 있으니
언젠가 해결될 것"이라는 안일함을
그는 집요하게 해체합니다.
특히 저는 지젝이 진보를
가속의 문제가 아니라 브레이크의 문제로
다시 묻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의 질주가..
진짜 전진이 아니라 파국을 향한 돌진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멈춰 세울 용기일 수 있다는 말.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오늘의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데
꽤 유효한 통찰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공감했던 부분은 그가 현대인을..
'몰라서 속는 사람'이 아니라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기후 위기, 불평등, 플랫폼 독점,
민주주의의 후퇴 같은 문제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젝은 바로 이 상태를 냉소의 구조로 읽어냅니다.
저는 이 진단이
꽤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위기를 알아도 그것을 현실의 변화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구조적 무력감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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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지젝이 흔히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의 표현은 과감하고,
때로는 도발적입니다.
하지만 그가 위험하게 보이는 데에는
사상 자체의 급진성만이 아니라,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레드 콤플렉스'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틀렸고,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전제를 먼저 세워두면
지젝은 당연히 위험한 인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세계를 여기까지 몰고 온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더 자연스럽고,
더 정상적이며, 더 안전한 것으로 취급되는
현실이야말로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지젝은 무책임하게
세상을 흔드는 위험한 철학자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된
질서를 불편하게 다시 보게 만드는 철학자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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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될 거야"라는 말은
때로 사람을 버티게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미루게 만드는
희망고문이 되기도 합니다.
지젝은 바로 그 점을..
깊게 파고들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막연한 희망 대신, 지금의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전제로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하자는 거랄까요..?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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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서평단
#우중몽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철학
#바닿늘정치
#바닿늘인류학
@woojoos_story 진행,
#우주클럽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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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내용은 제가 생각하는 <진보에 반대한다>
핵심 내용입니다. (제미나이 생성)
1. "나중에는 좋아질 거야"라는 거짓말 (진보의 환상)
우리는 흔히 "지금 좀 힘들어도 세상은 발전하고 있으니 나중엔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지젝은 이 생각이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이 희망적인 믿음이 오히려 **'지금 당장 바꿔야 할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치 병세가 심각한데 "언젠가 낫겠지"라며 진통제만 먹고 버티는 것과 같습니다.
2. 고속열차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혁명의 의미)
흔히 발전이나 혁명은 더 빠르게,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젝은 지금 인류가 탄 열차가 '파국'이라는 낭떠러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속 페달이 아니라 **'비상 브레이크'**를 밟아 열차를 멈추는 용기입니다. 멈추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의 시작입니다.
3. 다 알면서도 안 하는 우리들 (냉소적 현대인)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 플라스틱이 위험하다는 것,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뉴스에서 매일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긴 알지만, 나 하나 한다고 바뀌겠어?"라며 다시 하던 대로 삽니다. 지젝은 우리가 똑똑해졌지만, 행동하지 않는 **'냉소적인 병'**에 걸려 있다고 꼬집습니다.
4.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불가능한 꿈 (생태 위기)
환경을 보호하자며 "깨끗한 옛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젝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그런 순수한 자연은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와 기술이 이미 자연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낭만적인 꿈을 꾸기보다, 쓰레기 더미가 된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구체적인 정치를 시작해야 합니다.
5.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 (결단의 필요성)
요즘은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에게 물어보자", "데이터를 보자"며 결정을 미룹니다. 그러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죠. 지젝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한 계산기가 아니라,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이게 맞다"고 방향을 트는 주인의 결단이라고 말합니다.
6. 결론: "이미 끝났다"고 생각할 때 시작되는 희망
지젝의 메시지는 역설적입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자위하지 말고, 차라리 **"이미 재앙은 시작됐고, 우리는 끝났다"**고 인정해버리라는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섰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을 멈추고, 세상을 바꿀 진짜 행동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