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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 없는 우정 - 경계를 허무는 관계에 대하여
어딘(김현아) 지음 / 클랩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2025. 12. 10. 작성 글.
#협찬 격 없는 우정은 정말 가능할까?
평소에 저는..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합니다.
수평적인 관계라고만 하면
너무 추상적이라, 부연하자면..
'위아래 없이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고 해야겠습니다.
일상에서는 어려운 측면도 분명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늘 그렇게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요.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권한의 정도랄까요..?)
수평적인 관계를 떠올리면
저는 자연스럽게 한 인물이
생각납니다.
꽤 오래된 일입니다.
대략 2008~2009년 무렵,
그때 제가 겪었던 경험입니다.
그 당시 유행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지금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유행어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이었습니다.
친구가 "김밥 먹을래?"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웃기려고)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니 얼굴이 김밥이다!"
무슨 말을 하든 결국..
"니 얼굴이다."로 받아치는 식이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장난스러운 눈빛만 주고받아도
조건 반사로 "니 얼굴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놀았습니다.
보통은 친구들끼리 그러곤 했는데,
어느 날 후배가 저에게 슬며시 다가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님, 얼굴입니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익숙해진 만큼, 주변 친구들은
"저놈 골 때린다.."며 개념 없는 놈
취급을 하기도 했지요.
(웃으며 넘기는 부류와, 더 벼르게 되는
부류로 크게 나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저런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제 안의 '수평적 관계'에 대한 생각을
자라나게 한 것 같습니다.
핵심은 결국..
더 힘을 가진 쪽에서 먼저 수평적이려고
노력하는가, 그 의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에 '문화적 압력'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상황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악인이 될 수도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해 줄 마음은 없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고, 직접 그 상황에
처해보기 전이라면 단언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문화)에 따라 사람의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평소에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교육'이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육에 쌓인 게 많습니다...)
평소 좋아해서 자주 찾아보는
여러 콘텐츠의 작가님들이
비슷한 교육 환경 속에서
자랐다는 건..
그 자체로 무척 의미가 큽니다.
국회 앞에 모여든,
남태령에서 모여든..
주류를 구성한 신인류는..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것이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의 연결성이 있는지..
데이터로 확인한 건 아니고...
그냥 관련이 있겠다는 추측입니다.
영향이 정말 컸을 것 같아요.....)
격 없는 우정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그 주변을 작은 행성과 위성들이
맴도는 듯한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혹은 숲이 퍼져나가며 아름다운 자연을
스스로 조성해 내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올해 읽은 책들 중..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최소한으로 발췌한 내용을..
댓글에 공유하겠습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경계를 허무는
관계에 대하여..
#격없는우정
#어딘(김현아) 산문
#북스타그램 #바닿늘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교육
#바닿늘글쓰기
#바닿늘인류학
아래에서부터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글은 글방과 글방 이외의 영역에서 내가 만난, 생명력 넘치면서도 참으로 웃긴 어린이들, 삐딱하지만 의젓한 청소년들, 용감한 여자들, 다정한 남자들, 환대로 맞아준 이국의 친구들, 근사한 이종의 생명들과 도와 덕을 갈고닦은 시절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들이 다가올 것이고 그 시공간을 살아낼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해야 할 시기, 끝끝내 심중에 두어야 할 한 마디는 무엇인가,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사랑하고 꿈꾸고 맹세하고 기약하며 우아하고 근사하게 인간의 길을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궁구하고 실험하고 도모하고 공조했던 이야기다.
명랑한 에너지
용맹한 손발
담대한 마음자리
유연한 연대
랄랄라 춤추고 노래하던 내 동지들의 이야기다. p. 9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나와우리'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일하게 되었다.(…)
근 10년 단체 일에 매진하고 몰두했다. 세상의 모든 불의 따위 두고 보지 않겠어, 무모하게 덤비고 겁대가리 없이 싸웠다. 마음껏 일해봐 다 해줄게, 라던 몸이 파업을 일으켰을 때 그러므로 나는 오만했다. 따라오라고,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중무장한 진압군처럼 몸을 일으키려 했다. 몸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마침내 나는 몸에게 졌다. 긴 시간 아팠다. 격렬하게 아팠다. 나와우리를 그만두어야 할 만큼. p. 24~25
기술과 예술 면에서 어느덧 한국은 표준과 기준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반도체부터 철강, 면도날까지 만드는 나라는 세계에 두 나라밖에 없단다. 한국과 중국. 그러니 이 세대는 무대를 넓게 쓸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감지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다른 생명종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비존재와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공부와 체계가 필요하다. 그들의 조부 세대는 전후 세대였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세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들의 부모 세대는 선진국을 따라잡느라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뒤처지지 않고 선진국 모델을 따라 하는 것이 목표였다. 믿지 않겠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조부 세대도 부모 세대도 그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지난 시절의 감수성과 감각은 아뿔싸 청소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류가 맞닥뜨린, 해결해야 할 질문의 최전선에 우리 어린이들이 청소년들이 서게 되고 말았다. p. 45~46
평의 전공은 삼림과학이다.
"삼림과학과 삼림공학의 차이는 뭐야?"
"삼림공학은 유전공학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구요, 삼림과학은 자연환경부에 속하는데 전체적으로 삼림을 관리한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숲도 변화해 가는데 자연천이가 이루어지도록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조율하고 조정하는 일을 하는 거죠."
"핀란드에 갔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50년마다 한 번씩 나무를 다 베어내고 새로운 숲을 조성한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숲도 설계되는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 핀란드는 삼림이 기간산업이라 하더라고." (…)
곰곰 자세히 보니 평, 이 녀석 어쩐지 나무를 닮았다. 나무를 너무 많이 보아서인가. 방학 때도 화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서도 가지가지 식물을 키운다더니.
"왜 때문에 자발적 멸종주의자가 된 거야?"
"환경 문제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잖아요.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오래 생각을 했는데 '자발적 멸종운동'이란 걸 알게 됐어요. 환경 문제의 원인을 잘 들여다보면 사실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아요. 어느 한 종이 과잉된 상태가 된 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인 거 같기도 하구요." p. 74~75
"결,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저희가 청소년이다, 청소년이다 소리를 질렀는데도 마구잡이로 잡아갔어요. 개같은 경찰들이."
"오케이, 지금 현장에 누구누구 있어요?"
"다 있어요. 저희 다요."
"결, 내 말 잘 들어요. 오늘은 일단 집에 들어갑시다. 지금 다들 약간 흥분한 상태라 오늘은 집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결이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투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떠별(*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에서 학생을 지칭하는 별칭)들이 거부 의사를 밝힐 때 쓰는 말은 주로 싫어요 혹은 안 돼요, 같은 것들이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라니. 이토록 분명하고 결연한 어투를 청소년에게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
간곡하게 나는 결을 설득했다. 이번에는 쏠이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어딘."
소음 사이로 쏠의 말이 분명하게 들렸다. 아니 이 말투는 또 뭐지?
"친구가 잡혀갔습니다. 잘못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인데 이제 청소년까지 잡아갑니까. 저희는 오늘 못 들어 갑니다."(…)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청사에서 오래, 들여다본 사진이 있다. 깔끔한 슈트에 반들반들한 구두, 포마드를 발라 멋지게 넘긴 머리. 깎아놓은 밤톨 같은, 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20대 초중반의 독립운동가들,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든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이들이 함께 찍은, 눈부시게 낡은 단체사진. 세탁소나 전당포에서 빌렸을 연미복을 폼 나게 차려입고 내일이 없는 청년들이 명랑한 표정으로 서 있다. 100년 전에도.
p. 121~124
- 국회로 달려가야겠네요. 고운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단정했다.
- 여러분 국회로!!! 대통령이 계엄 선포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10시 56분, 내가 보낸 문자에 대한 답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여릿여릿한데 어떤 상황에서 고운은 기민하고 담대하다.
- 저희는 이제 곧 출발해요. 12월 4일 정오를 막 넘긴 12시 10분이었다. 나도 답했다.
- 누가 가는지 알려주고 이후 연락은 텔레그램으로 합시다.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여러 개 열어둡시다. 현장에 누가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같이 가는 사람 꼭 알려주세요.
마지막 문장을 쓰는데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저 자리는, 지금 그들이 달려가는 저 자리는 오늘 밤의 최전선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 제제 아산떼 조개 비움 의미 결, 그리고 저. 이렇게 갑니다.
한 시간 남짓 동안 일곱 명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국회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리라. 결에게도 연락이 왔다.
- 자다가 전화받고 일어나서 알았어요. 국회를 열어 한다고 해서 지금 애들이랑 가보려고요.
잠에서 깨 찬바람을 맞으며 부랴부랴 국회로 가는 결은, 그녀의 벗들은 계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이다. 그들을 기다리는 게 실탄을 장전한 총구라는 걸 책으로 영화로 아는 이들이다.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맨몸으로 달려가 이들이 마주쳐야 하는 게 또래의 중무장한 계엄군이라는 사실에 간담이 서늘하다. p. 125~126
산소, 이제 비밀을 발설할 시간이 되었구나. 마침내 때가 온 것 같아 오래 간직한 이 비밀을 너에게 전하니, 이 말을 접한 네가 할 일은 언젠가 때가 오면 너 역시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사바나의 숲에서 두 발로 선 이후 지금까지 인류는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뭇 생명을 살리는 유전자가 승리하도록 진화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야. 고귀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전승된다. 겨우 간신히 가까스로. 의심스럽다면 《종의 기원》이나 《다윈 지능》, 《이기적 유전자》 따위의 책을 훑어보길. 거기 네 염색체의 지도(한 번도 진 적 없는)가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을 터. 그러니 산소, 너는 네 유전자를 믿고 마음껏 살아가길. 최초의 생명이 너에게 전하는 심중의 말 한마디 가슴에 품고. 담대하게, 다정하게, 명랑하게.(…) _2023년 봄날의 끝자락에, 정릉에서 어딘
p. 154
20대 시절, 돈을 벌고 글 쓰는 것 외에 한 가지 일을 더 했다. 청계피복노동조합 문화학교 강사. 대학을 졸업한 해에 시작한 일이다. 1990년이었고 군부독재가 여전히 서슬퍼렇던 시절이었다. 강철같은 마음을 가진 선배나 친구들은 인천이나 부천, 구로 등지의 공장으로 가서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운동을 했다. 공장에 갈 자신은 없었으나 운동의 자장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소시민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학출 나부랭이인 나는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문화학교에서 안전하게 일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1970년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젊디젊은 청년이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요구인가만은 그 시절 평화 시장 봉제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에게는 가장 절실하고도 절박한 문제들이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비롯해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온갖 탄압과 억압 속에서도 맹렬한 투쟁과 연대로 청피는 한국 노동운동의 주요한 한 축이 되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그해부터 해마다 해마다 해마다 모란공원에서 아들의 말을 전했다.
'지금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내 말만 들어요…. 내가 다 못한 일을 엄마가 해준다고 내게 약속해 주세요.'
온몸이 불에 그을린 천금 같은 아들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어머니는 뼈가 가루가 되도록(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 일을 했다. 이소선 여사는 이제 아들 곁에 나란히 누워있다. p. 155~160
이십 대 시절엔 글 쓴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엄혹한 시절, 목숨을 걸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글을 쓰는 건 어쩐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었다. 나는 그랬다. 그러므로 쓰는 자의 정체성 같은 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으나 요즘은 가끔 글방에서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다. 쓰는 자들이란 무슨 일을 해도 글을 쓰지 않으면 어딘가 헛헛하고 개운치 않은, 몹쓸 느낌을 달고 산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러므로 쓰는 자들의 삶이란 고달프다. 쓰지 않고 살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삶이다.라고. 진정이다. 요즘은 그래도 어디 가서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나이 먹으니 미추가 동등하고 경중이 대등하고 혁명과 글이 평등하다. 침묵과 소란이 하나다. p. 162
"와, 이건 뭐 한국의 역사랑 아주 흡사하구만."
창권이 기가 막히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 베트남을 공부하면 베트남의 근현대사와 한국의 근현대사가 쌍둥이처럼 비슷했고 라오스와 캄보디아, 아프리카도 어느 언저리에선 우리와 닮아 있었다. 식민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분단과 비극, 과도한 열정과 견고한 신념이 다른 과도한 열정 견고한 신념과 부딪치면서 생기는 스파크와 균열, 피, 눈물, 한숨, 비명. 물론 이 갈등과 충돌의 근원에는 땅과 강과 자원과 심지어 인간의 마음마저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설계하고 구조화한 제국주의의 기획이 바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버마(*우리가 흔히 미얀마라고 알고 있는 국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세 번에 걸친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1885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니 우리보다 30여 년 먼저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은 셈이다. 우리가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어라, 미얀마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다. 아시아 나라들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할 정도로 엉뚱한 데서 일본이 튀어나오곤 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이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말레이시아 괌 싸이판 미얀마 등 아시아의 나라들을 '먹었기' 때문이다. p. 184
크리스퍼와 관련해서도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윤리와 도덕이 만들어져야 하는 시대다.
무엇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국가의 경계 따위를 훌쩍 뛰어넘는 지구 법을 만드는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사람 이외의 종과 생명체들의 권리는 누가 대변할 수 있는가.
모든 세대와 다양한 계급과 계층, 장애를 가진 사람, 동성애자, 이주민,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 여성과 남성이 모두 이 문제를 이해하고 개입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동참해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섬세하고 꼼꼼한 사고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바야흐로 대이야기의 시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나의 생명이 내 조카들의 미래가 '자본'과 '일부 전문가'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AI, 크리스퍼, 기후 변화, 재난, 전염병. 둘러보면 진정으로 물질이 개벽하는 시대다. 말인즉슨 낯선 세상이 열리고 있고 기존의 윤리와 도덕 따위로는 이 개벽의 시대를 살아낼 수 없다. 지금은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하는 시기다. 소여노남(남녀노소가 아니라)이 모두 참여하여 성글면서도 촘촘하게,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생각의 방향성을 만들어야 한다. 남성들과 노인들은 입을 조금 다물고 청소년들과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판을 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성' '지식인'들이 만든 세상이 붕괴하고 있으니 그 책임을 조금은 져야 하지 않는가. 소여노남의 순으로 대이야기의 시대를. p. 24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