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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전쟁 - 우리는 왜 이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가
요한 하리 지음, 이선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9월
평점 :
#도서협찬 마약 전쟁 / 요한 하리 / 어크로스
잘못 채워진 첫 단추,
마약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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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어떤 압력 아래서,
혹은 그 압력의 풍선 효과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악'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영역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종교, 사회복지, 환경..
악과는 무관해 보이는 곳에도 말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뿌리는 "악을 뽑아야 한다"는
선한 의지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은
때때로 오만함으로 변해 더 큰 파괴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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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리의 <마약 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은
중독을 뿌리뽑겠다며 시작됐지만,
결과는 범죄 확대와 더 깊은 중독이었습니다.
합법적이던 약물이 금지되자
폭력조직이 시장을 장악했고,
중독자들은 범죄자가 되어
더 고립되었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중독자를 환자로 바라보고
치료와 연민의 길을 제시했지만,
국가는 이를 탄압했고
그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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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약 전쟁은
뿌리를 뽑는 싸움이 아니라
'연결'을 회복하는 싸움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립된 사람을 다시 공동체와 잇고,
범죄자가 아닌 인간으로 대할 때
비로소 문제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어떻게 뿌리뽑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연결할까'를 묻는 것....
그때야 비로소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끝!!
마약과의 전쟁과의 전쟁....?? 🤨
#북스타그램 #바닿늘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_1887년 영국 액턴 경이 편지에 쓴 말..
📌
@woojoos_story 모집, @어크로스 도서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우주서평단 #마약전쟁 #요한하리 #어크로스
비슷한 주제의 글은..
#바닿늘저널리즘
의사들이 체포되다
술을 마시는 사람 중 대부분은 알코올중독자가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아편제를 복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마약중독자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불안정한 신경계를 지탱하기'위해 아편제를 복용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저녁에 와인을 마시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소수의 사람이 중독에 빠지긴 했지만. 그런 중독자들조차 대부분은 생업을 이어가면서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정부의 공식 연구에 따르면, 마약 금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전에는 자칭 중독자(단순 마약 복용자가 아니라 중독자) 중 4분의 3이 안정적이고 꽤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중독자의 22퍼센트 정도는 부자였고, 6퍼센트만이 가난했다. 그들은 중독으로 인해 더 차분해겼다. 물론 그들이 중독에서 벗어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통제력을 잃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14년 해리슨마약법이 통과되었고, 16년 후 해리 앤슬링어가 나타나 그 법의 강도를 빠른 속도로 계속 높여갔다.
의사들은 바뀐 정책이 빚어낸 결과를 피부로 느꼈다. 이와 관련 헨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합법적 방법으로는 마약을 얻을 수 없게 되자 각계각층 수만 명의 사람들이 마약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이 물을 갈망하듯 마약을 갈망했다. 그들은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약을 확보해야 했다. 그들은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마약을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 까?(그런 법을 만든 사람들은) 그들의 포고령이 불법 마약 사업을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과 완전히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상 마약 밀수업자 집단이 생기도록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마약 밀수업자는 이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마약을 팔 수 있게 되었다. 약국에서는 모르핀이 한 알에 2~3센트였지만, 범죄조직은 1달러에 팔았다. 중독자들은 값을 부르는 대로 돈을 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상, 중독자들이 폭력배들로부터 마약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종종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윌리엄스 형제는 해리 앤슬링어가 이끄는 마약국 때문에 두 가지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첫째, 마약을 미국으로 밀수해 중독자들에게 판매하는 폭력조직 집단이 생겼다. 다시 말해 해리 앤슬링어는 마피아와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수익성이 높은 거대한 사업을 그들의 손아귀에 쥐여주었다.
둘째, 마약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고, 그래서 중독자들이 마약을 계속 얻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헨리 스미스 윌리엄스는 "일반적인 중독자(공식 인구조사에 따르면, 보통 사람)가 부득이하게 필요한 마약을 구하려고 하루에 10달러에서 15달러씩 지불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썼다. "해결책이 무엇일까? 중독자들은 평범한 수단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꺼림칙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구하고, 빌리고, 화폐를 위조하고, 훔쳐야 한다. 남자들은 보통 도둑이 되고, 여자들은 종종 매춘부가 되었다."
헨리는 "마약에 반대하는 관료들로 구성된 미국 정부는 최근 몇 세기 중 가장 강력하게 대규모로 범죄자들을 만들어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해리 앤슬링어는 마약범죄자를 새로 만들어낼 때마다. 그의 부서가 살아남고 승승장구해야 할 새로운 이유도 만들어냈다.
중독자를 위한 처방전
에드워드 윌리엄스는 마약중독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방안, 이미 완벽하게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고 서서히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체포되는 길로 접어들었다.
1914년 헤로인과 코카인을 금지하는 해리슨마약법이 제정되었을 때 이 법안에는 일부러 집어넣은 아주 명백하게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의사, 치과의사, 수의사 등 의료 전문가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마약을 계속 처방할 수 있고, 이처럼 중독자들을 연민으로 대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윌리엄스가 실천하기 전까지 그 조항은 역사의 쓰레기 더미에 던져져 있었다. 그는 중독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세우도록 도왔고, 그곳에서 자원봉사로 진료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처방전을 써주었다. 그리고 환자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았다.
윌리엄스조차 환자들의 변화하는 모습에 놀랐다. 몸이 망가진 실직자였던 환자들은 마약을 불법화하기 전과 똑같이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마약이 금지되기 전의 질서와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그 진료소가 로스앤젤레스가 받은 위대한 선물이라고 추켜세웠고, 그 지역 연방검사는 이 진료소들이 '한 달에 걸친 모든 기소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루 만에 해낸다"라고 발표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연방마약국은 그런 상황 때문에 엄청나게 화가 났다. (…)
로스앤젤레스의 진료소가 문을 닫고 에드워드 윌리엄스 같은 의사들이 체포된 후 거의 모든 중독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다시 하루치 마약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굵어모으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범죄자와 노숙자로 전락했고, 그들 중 수십 명이 사망했다. 연방마약국은 의사들이 중독자들에게 처방전을 써줄 수 있다고 확인한 대법원의 명백한 판결을 무시하고 있었다. (…)
에드워드 윌리엄스와 함께 2만 명 정도의 의사들이 해리슨마약법을 위반했다고 기소되었고, 95퍼센트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부분은 엄청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처방전 하나에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의사들도 있었다. 배심원들이 몸서리치며 유죄 선고를 내리지 않은 지역도 많았다. 그 의사들이 그저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았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앤슬링어는 계속 강력하게 마약을 단속했다.
해리는 다른 어떤 의사보다 에드워드 윌리엄스가 무너지기를 바랐다. 윌리엄스가 널리 존경을 받는 데다 많은 사람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 때문이었다.
앤슬링어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을 때의 도덕적 효과로 마약을 더 경계하게 되는 가장 확실한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몇몇 의사만 무너뜨리면 나머지 의사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꼭대기로 올라가서 최대한 위협하자. 이것이 언제나 해리의 방식이었다. p. 76~85
세계로 뻗은 마약국의 그림자
의사들을 채찍질해 복종시킨 다음에도 해리의 골칫거리가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그는 전적으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독자와 의사, 마약상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해리는 특히 한 도시를 마약 퇴치 방법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본보기로 삼으려고 했다. 그가 요구한 모든 강경한 법적 조치를 채택했기 때문이었는데, 그 도시는 볼티모어였다. 하지만 뭔가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볼티모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약 없는 낙원이 되지 않았다. 해리는 한 가지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사회 저변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마피아 세력을 일찍이 엿보았듯 이제 그는 또 다른, 은밀하게 세상을 조정하는 더 사악한 세력이 있다고 믿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분명히 미국에 마약을 대량으로 유입시키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토대를 위태롭게 하려는"냉정하고 계산적이고 무자비하고 체계적인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해리의 생각이었다. 그는 의회 증언에서, 중국의 초원에서 미국 백인의 혈관으로 곧장 흘러들어오는 '공산주의 헤로인'의 흐름을 자세히 설명했다. 중국인들은 왜 이런 짓을 할까? 그들은 백인을 약화시키고 미국 안에서 이적 행위를 하는 집단, '마약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반역죄도 저지를' 중독자 집단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 해리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제 중독자들이 그저 범죄자와 폭력배만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경고했다. 중독자는 공산주의 반역자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1950년대에 이렇게 공산주의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리는 볼티모어의 실패를 마약과의 전쟁을 확대할 근거로 삼을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시행해야만 마약 금지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유엔을 찾아가 인류를 위한 마약 금지 지침들을 내밀었다. 우리가 벌인 일들을 다른 나라들도 실천해야 한다.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리의 모든 행동 중 이 유엔 방문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제네바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한곳에 묵었고, 더 작고 약한 나라들에서 온 대표들을 쏘아보며 마약 금지령에 대해 외쳤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은 고개 숙이기를 거부했다. 예를 들어 태국은 아편 흡연이 자국의 오랜 전통이라서 금지하면 더 해롭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해리는 이런 나라들의 팔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가 아꼈던 부하 중 한 명인 찰스 시라구사는 "미국의 대외 원조 계획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가볍게 언급하기만 해도, 거의 즉시 우리 방침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으스됐다. 나중에는 그 나라 상품을 미국에 하나도 수출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도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래서 태국은 굴복했다. 영국도 항복했다. 위협을 받은 사람들은 결국 모두 백기를 들었다. 미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고, 오랫동안 아무도 감히 미국에 맞서지 못했다. 어떤 나라들은 다른 나라보다 더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 (…)
마약국에서 일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해리는 자신의 생각이 이상하고 무질서한 방향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해리의 개인 기록을 보면 중독자들은 '전염성이 있어서' 그들을 즉시 '격리'하지 않으면, 우리 중 누구라도 감염될 수 있다고 미친 듯한 어조로 경고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해리는 몇 달 동안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사실 해리는 정신이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업무에 복귀했을 때 그의 편집증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는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적들과 그들의 음모, 그리고 은밀 한 시도를 어디에서나 찾아냈다.
나는 언제나 생경하게 느껴지는 해리의 주장을 읽으면서 때때로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 일반 시민들, 상원의원들 그리고 대통령들로부터 받은 편지 더미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설득되고 싶었다. 그들은 얽히고설킨 두려움을 해결할 쉬운 해답을 찾고 싶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들인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면서 잘난 척하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충동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종, 불평등, 지정학처럼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들을 몇몇 가루와 알약의 문제로 간단히 설명하면서, 이 가루와 알약들을 세상에서 치워버릴 수 있다면 이런 문제들도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두려움을 무너뜨리고 싶을 때 그 두려움을 어떤 상징으로 바꾸고 그다음 그 상징을 파괴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런 일은 십자군 전쟁부터 마녀사냥,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류 역사 내내 되풀이되고 있다. 마약 취하려는 인간의 충동처럼 복잡한 문제를 곰곰이 따져보면 그 충동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언제나 어떤 문제들(그리고 어떤 쾌락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 문제를 끝낼 수 있다는 다른 이야기를 훨씬 더 듣고 싶어 한다. 우리가 그 말을 듣고 따르기만 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p. 96~100
마치며
이 책을 덮기 전에 해리 앤슬링어에 대해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그가 결국 마약 사용자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마약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해리는1950년대 미국 의회에서 아주 주목받는 한 의원이 헤로인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영향력이 큰 의회 위원회 중 하나를 이끌었다. 미국과 자유세계가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고 운명을 만들어가는 일에 그의 결정과 발언이 큰 역할을 했다"라고 해리는 썼다.
해리는 국회의사당 복도에서 그 의원에게 다가가 마약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의원은 "나는 마약과 관련해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을 거예요, 국장님. 무언가를 하면 당신에게 좋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어떤 조치를 하든 나는 마약을 얻으려고 폭력배들을 찾아갈 거니까요. 그리고 그 일이 사회적 스캔들이 되면 이 나라에 해가 될 거예요.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선택은 당신 몫이죠"라고 협박하듯 대답했다.
해리 앤슬링어는 미국 어디에서는 합법적으로는 마약을 구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 그래서 중독자들은 더럽혀진 마약을 얻기 위해 폭력배들을 찾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감정적이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퇴폐적이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사악한'계층들이나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상상했다.
그런데 이제, 해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알고 보니 중독자였다. 해리의 태도는 달라졌다. 위싱턴 D.C.의 약국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마약을 제공해 줄 테니, 절대 폭력배들을 찾아가거나 마약 없이 지낼 필요가 없다고 그 의원에게 장담했다. 심지어 그 의원이 사망하는 날까지 마약국이 약 값을 치렀다. 한 기자가 그런 내용을 알아냈고, 기사로 터뜨리려고 했다. 해리는 한 마디라도 보도하면 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게 하겠다고 그 기자를 협박했다. 그래서 그 기자는 그 이야기를 덮었다. 여러 해 후, 관련자가 모두 죽었을 때, 해리 앤슬링어와 함께 책을 썼던 윌 어슬러는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에 이 의원이 사실은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라고 밝혔다.
해리는 윌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은 후 이내 눈길을 돌렸다고 했다. 공산주의자 타입에 열을 올리던 붉은 얼굴의 매카시는 마약중독자였고 해리 앤슬링어는 그에게 마약을 공급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대로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해리 앤슬링어조차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에드워드 윌리엄스처럼 따뜻하게 대했다.
해리 앤슬링어는 은퇴하고 몇 년 후 협심증에 결렸다. 그래서 그토록 없애려고 했던 바로 그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모르핀을 복용했다. 앤슬링어는 세상에서 추방하기 위해 싸웠던 그 화학물질들을 혈관에 집어넣으면서 사망했다. 나는 지금, 처음 복용한 아편제가 몸속을 훑고 지나가면서 고요하고 평온해진 해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려고 한다. 그는 그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p. 405~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