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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미자 씨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18
정주희 지음 / 북극곰 / 2025년 2월
평점 :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의 표지 그림과 '미자 씨'는 누구길래 팔랑팔랑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걸까요?

뒷표지도 살펴볼게요. 알람이 울리면 미자 씨는 자신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찾아 다니나 봅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지네요.

그림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요. 색연필로 사각사각 공들여 색칠한듯한 그림 덕분에 그림책이 더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일반적인 침대는 아닌 것 같고, '미자 씨'로 추측되는 할머니가 관 속에서 주무시고 계시네요. 그리고 방 입구에 B1이라도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분일까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이야기를 예상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작가님을 살펴볼게요. 마음이 가는 일에 의미를 두시는 분이시군요. 그래서 이렇게 멋진 그림책을 만드신걸까요?
미자 씨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왜 미자 씨가 관에 누워계셨는지, 왜 B1층에서 지내셨는지 알 수 있네요.
요즘은 돌아가신 분의 묘를 만드는 경우보다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가 더 많아서 아이들에게 이 부분은 좀 더 설명을 해 줘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추석에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성묘를 갔던 경험이 있는 친구라면 좀 더 이해를 하기 쉽겠네요.

자녀분들이 가져오신 미자 씨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나비와 함께 나눠먹고 있는데 알람이 울립니다.
누군가가 미자 씨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신호지요.

나비를 타고 날아간 곳에는 미자 씨의 손녀가 보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손녀의 기억입니다. 다시 볼 수 없는 슬픔은 크지만,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겠지요?

다음으로 미자 씨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들입니다. 자녀에게 먹을 거리를 택배로 보내시는 할머니를 뵙자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나 봅니다. 택배 꾸러미를 보니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떠올랐어요.
양가 모두 먼 지방에 있어서 자주 뵐 수 없지만, 가끔 갖은 반찬, 재료, 과일, 고기 등을 택배로 보내주시는데, 늘 저렇게 메모를 적어주시거든요. 이 장면을 보면서 이 책을 눈물 없이 다 보진 못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저희 집 냉장고는 늘 깔끔하게 정리하기가 참 힘든데, 두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지요. 사실 받을 때 마다 다 먹지도 못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주시나 불만이기도 한데, 이젠 뭐든 다 감사히 받고 맛있게 먹어야겠어요.

잘 익은 매실 하나를 보며 미자 언니를 떠올리는 동생 복자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나를 추억하며 그리워해주는 이들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고 나서 얼마 정도의 시간동안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30여년? 50여년?
한 사람의 생이 끝나고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나'라는 사람의 흔적이 희미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미자 씨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큰 딸입니다.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네요.

이 장면은 딱 저의 어린시절 같아서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엄마는 떼를 밀어 줄 때, 왜 그렇게 살갗이 벌게지도록 밀어 주셨던걸까요.
그리고 큰 딸 등을 때렸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미자 씨의 표정에 마음이 아립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어휴..
먼저 세상을 떠난 미자 씨를 잠들 때마다 그리워하는 남편입니다.
잠자리에 함께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추억,
더운 여름 날, 등목을 해주던 추억,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를 함께 쓰며 본인 어깨는 다 젖어도 미자 씨는 조금이라도 덜 젖길 바라며 우산을 기울여줬던 날들...

두 아이 키우며 알콩달콩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 영원이 제 곁에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고 있지만,
제가, 혹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 남을 사람은 늘 그리워하며 살게 되겠지요.
남편에게 서운한 점만 보지 말고, 좀 더 따뜻한 말로, 웃는 표정으로, 조금이라도 더 사랑의 표현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운 이의 눈물을 병에 담아와 나비와 함께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며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합니다.

작가님의 말을 읽으며, 몇 년 전 남편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어요.
아이가 조금씩 크고부터는 혼낼 일이 점점 많아지던 날이었지요. 어떤 날은 제가 제 자신이 싫어질만큼 아이를 혼내고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아이가 제법 커서 오늘의 기억이 커서도 남아있을텐데, 엄마를 떠올렸을 때, 나는 어떤 엄마로 아이에게 기억에 남을까.. 라는 생각이요.
그 얘길 남편과 나누면서, 오늘처럼 괴물같은 엄마를 아이가 떠올리는건 너무 슬프고 끔찍한 일일 것 같다고, 아이에게 늘 따뜻하고, 비빌 언덕 같은 엄마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얘길 했어요.
하지만 그 다짐이 채 3일은 갔을까요? 다름 아닌 어제도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화는 냈거든요.
저도 소나기를 보면 떠오르는 엄마가 아닌, 따뜻한 햇살 혹은 살랑살랑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엄마가 떠올를 수 있도록 소중한 사람들을 더 소중해 대해야겠습니다.

마지막 속 표지입니다.
미자 씨가 누군가를 그리워했나봅니다. 또 누군가가 나비를 타고 팔랑팔랑 날아오네요.
미자 씨의 엄마군요.
이 책은 한 페이지도 그냥 넘어가질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는 아이들, 가족, 나의 부모님, 그리고 또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습니다.
아이들, 그리고 남편, 또는 소중한 사람들과 꼭 함께 읽어보세요.
그림과 글귀가 주는 울림이 어마어마한 책이었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