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선'이라는 인물이 낯설지 않다. 분명 역사책의 한자락에서 공부한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역사와 함께 했던 이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으니 역랑을 읽으면서 새롭게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이를 가늠해봤다. 저자 이주호의 역대작이 될 <역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두꺼운 책을 가늠도 해보기 전에 두근두근 만날 기대감이 무척 흥분되게 만들었다.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이고 당연 히데요시까지 뒤따라 오지만 우리 역사속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또 있었다는 데 너무도 크게 알려지지 않은점은 지금이래도 알게되어 다행이다 싶다.
히로, 그는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온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을때 겨우 살아남은 자손이다. 일본으로 가서 살면서 뎃포 부대원이 된 히로는 자라면서부터 전쟁속에서 지내는 운명이 된다. 뎃포는 총에 화약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총기다. 몸은 약했으나 뛰어난 머리로 뎃포부대를 이끄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히로, 나는 조선인인가,일본인인가.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칼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장수가 목숨을 던지고 죄 없는 인물들이 죽어 나가고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여인이 볼모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조선으로 전쟁을 나서야 했던 히로가 본 갈등의 모습이다. 자신이 조선인임을 알고 살아왔고 살아오면서도 조선인출신이라는 것때문에 친구들에게조차 핍박을 받았다. 그런 히로가 본 조선의 모습은 전쟁통이기도 했기에 참으로 비참하고 남다르다.
자신의 뿌리가 이렇게 크게 다가올수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 뎃포를 연구했던 히로에게 "원하지 않아도 시대가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다."라고 했던 이에야스의 말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어쩔 수 없는 숙명같다. "이리도 무레한 놈들이었는가!.네놈들의 도리를 보아 하니 형편없는 나라임이 분명하구나."동래부사 송상현은 부산진성이 함락되었을때도 일본군에게 이렇게 당당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히로는 더욱 남다른 기분.....그래서 뿌리가 중요한거구나 느껴본다.
왕은 도망치고 있는 중이지만 힘없는 백성들은 죽기살기로 나라를 지키려한다. 조선인?그들의 모습에서 히로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지는거 같다. 이순신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게 역사적으로 있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실패로 끝나면서 그는 반대로 이순신 덕분에 귀화를 하게 된다. 결국은 항왜(항복한 일본인을 이용해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는 일)를 한 히로덕분에 조선의 나라지키기는 더욱 수월했을터.
전반적인 부분에서는 히로의 일본인 생활이였고, 후반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을 다루고 있다. 그 속에 있었던 우리 역사, 그리고 미약하나마 죄를 씻고자 김충선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지켜주는 그의 생애가 그려져 있다. 요즘 끝난 유명드라마에서도 미국인도 조선인으로도 속함받지 못한 한 남자의 생애가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김충선의 일대기도 그렇겠지 않나 싶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박한 역사물은 아니였지만 한 남자를 통한 역사의 바로보기는 무척 신선했다. 조국을 지켜내고자 하는 뿌리의 중요성을 보면서 임진왜란의 또 다른 영웅을 만나 무척 가슴떨리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