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해 전 그녀를 보았다. 지방의 한 요양원에서 똑같은 시간 전화기 앞에서 뚫어져라 전화기를 쳐다 보던 그녀.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웬지 기분좋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30대 수학강사였다. 어느날부터인가  수업을 하는 도중 잠깐씩 기억의 일부를 일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건망증이 그녀의 삶을 앗아간 알츠하이머란 병이었다. 충격이었다. 뇌가 늙어서 생기는 병인줄로만 알았던 알츠하이머가 아직 창창한 나이인 30대에도 발병할 수 있다는게....이렇게 젊은 사람들에게 발병하는 알츠하이머를 "조발성 알츠하이머"라고 부른다.

알츠하이머 하면 기억나는 또 한가지. 지금도 유명한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의 소재 역시 노모가 알츠하이머란 병으로 길을 잃고 가족의 품으로 결국 돌아오지 못한 이야기다. "엄마를 부탁해"의 이야기 전개는 가족들 한명한명이 엄마와의 추억들을 되집어보고 후회하면서 그들의삶을 엿볼 수있었던데 반해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당사자 앨리스를 통해 세상이 비춰지고 있다. 이 책을 쓴 작가는 하버드대 신경학 박사라는 독특한 이력의소유자 리사 제노바이다. 누구보다 많은 알츠하이머 환자와 가족들을 만났던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입장에서 누구보다 섬세하게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내가 집에서 길을 잃을 수가 있지? - 195page

앨리스의 가족들은 남부러울 것없는 직업을 가진 상류층의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족을 상류층이라고 한데에는 아마도 알츠하이머란 병이 직업과 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어느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데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듯했다.

앨리스는 폐경과 함께 찾아온 건망증을 사소하게 넘겼다. 종종 기억이 사라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그녀는 건망증이란 이름으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후 병원을 찾게 되고 조발성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게 된다. 몇해 전 보았던 30대여성의 알츠하이머를 보았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점점 심해져 가는 건망증때문에 나 역시 알츠하이머를 의심했었다.지금까지 건재한걸 보면 단순한 건망증인것 같지만 앨리스의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이 다시금 그 기억을 되살려냈다. 

                       둥둥 떠있는 우편물, 내 뇌가 고장 났어 - 268page

앨리스가 남편과 세자녀들 앞에서 자신의 병명을 공표했을때 그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알츠하이머란 병은 환자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추억까지 야금야금 갉아먹는것 같다. 처음엔 그 병을 이겨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엔 환자도 가족들도 텅비어버린 마음만 남은채 포기하고 마는게 이 병이 아닌가 싶다. 앨리스의 가족들은 그녀의 병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듯 했다. 가족이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은데 솔직히 나 였어도 주위에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다면 어떻게 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우려와달리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친다. 

너무나 적나라한 알츠하이머란 병 앞에 단점이라면 두려움이 생겼다는것과 장점으로는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환자의 고통과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내 주위에서 이 병명을 가진 사람들이 없길 바라지만 운명의 신이 그 병을 만들어 내신다면 이 책을 읽기전보다는 알츠하이머 환자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틀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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