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새싹 인물전 21
유타루 지음, 이경석 그림 / 비룡소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시절 내 별명은 "방정환"이였다. 정환이란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초등학생 어린 눈에 놀림거리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방정환"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소파 방정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교과서에 가볍게 배우고 지나간게 다였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정환"이 아이들을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것도 처음알았고(알았었지만 오랜세월에 잊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것도 처음알았으며,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를 열었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책을 통해 "방정환"의 어린시절부터 그가 생을 마감할때 까지의 일대기를 쭉 볼 수 있었는데 어린시절부터 어른들이 어린이를 마땅히 부를말을 찾지 못해 "애새끼,애놈,아들놈,딸년"등 어린이를 낮춰부르는 말을 듣고 바른말이 아니라고 선생님을 지적을 할 정도 였다. 그리고 어린시절 방정환은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고 재주가 있었다. 방정환이 이야기했다하면 이야기듣느라 화장실을 못가서 오줌을 지리기도 하고 슬픈이야기에 하루종일 눈물을 흘렸다는 아이까지 있다는걸 보면 그의 이야기 솜씨가 대단했었나 보다. 

1917년 손병희의 딸과 혼인하고 청년 구락부를만들어 활동하는 한편, 일제 강점기시절 독립신문을 펴내다. 일본순사에게 잡혀가 일주일동안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그의 나라에 대한 사랑은 꺾이지 않았다. 방정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는 일본에게 맞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의 고리점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에 당도했다. 그때부터 방정환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대학에서 아동예술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다. 1923년 <어린이>란 잡지를 창간하고 색동회를 만들었다. 처음 <어린이>란 잡지를 만들었을땐 많은이의 비웃음을 샀지만 창간 7년째즈음엔 독자수가 무려 삼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방정환은 1928년 10월, 서울에서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를 열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비웃었지만 방정환은 그 일을 해냈고 우리나라의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탓인지 세계 아동 예술 전람회를 마치고 시름시름 앓다가 1931년 7월23일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방정환이 마지막까지 남긴말은 "어린이들을 부탁해요."였다고 한다. 그의 어린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느낄 수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