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방
조에 예니 지음, 이창남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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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방. 조에 예니 장편소설. 이창남 옮김.

첫눈이 내린다. 공원 벤치에 두 노부인이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앉아 있다. 박제된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서로의 따뜻함을 나누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한기에 몸을 내맡기고 있어서 그런지 추위마저 잊고 있다. 노부인들 곁에 놓인 벤치에 앉자 그들은 무뚝뚝한 눈길로 바라본다. 아마도 나를 방해꾼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여기 앉아 떨어지는 눈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라고 구태여 변명하지도 않는다. 땅 위에서 두텁고 부드러운 층을 이루지 못하고 곧 녹아버리는 눈, 그 때문에 더욱더 기다려지는 다음 눈송이,
땅에 내려와 아직 녹기 전의 그 짧은 순간들, 당신들과 함께 여기에 앉아 온 땅이 하얗게 뒤덮이기를 기다릴 거라고. 세상을 하얀 층으로 뒤덮는 눈, 눈들을 ……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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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군도 2 열린책들 세계문학 259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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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총살되었다 ㅡ 처음에는 수천 명이.
그다음에는 수만 명이, 우리는 나눠 보고 곱해 보고, 그리고 한숨을 쉬고 저주해 본다. 그러나 하여튼 이것은 엄연한 숫자인 것이다. 그 숫자는 우리의 머리를 찌르지만, 다음에는 다시 잊히게 마련이다. 만약 총살된 사람들의 친척들이 혹시 언제고 출판사에다 처형된 사람들의 사진들을 넘긴다면, 몇 권의 앨범이 출판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을 대강 훑으며 그들의 눈을 건성으로 보기만 해도 우리는 자기의 남은 인생을 위해 많은 것을 얻을지 모른다. 그런 독서는, 글자도 거의 없지만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겹겹이 쌓여 남아 있을 것이다.
전에 수용소 생활을 했던, 내가 아는 한 가족의 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 거행된다. 즉, 살인마 스딸린의 사망일인 3월 5일에, 총살당한 사람들과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모은 수십 장의 사진들이 탁자 위에 진열된다. 그러고는하루 종일 집 안에서 교회나 박물관에서 하는 것 같은 엄숙한 의식이 진행된다. 장송곡이 울린다. 친구들이 찾아와 사진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음악을 듣고 조용한 목소리로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작별 인사도 없이 조용히 물러간다.
이런 의식이야말로 도처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의식이 행해진다면 우리는 죽음들을 통해 마음속에 그 어떤상흔을 되새길 수 있으련만,
이 모든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 P214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삶의 모든 수수께끼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있다. 환영을 찾지 말라. 재물과 명성을 좇으려 하지 말라. 그런 것은 수십 년에 걸쳐 애써 축적된 것이지만 단 하룻밤 만에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초연한 태도로 삶을 살아 나가라. 불행을 두려워할 것도 없고 행복으로 가슴 태울 필요도 없다. 그것은 매일반이 아닌가? 괴로움도 영원한 것은 아니고 즐거움도 완전히 충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다행으로 알라. 등뼈가 부러져 있지 않고 두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두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고 두눈과 귀로 듣고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누구를 부러워할 것이있는가?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러운 생각을 품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좀먹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두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 그리고 당신들을 좋아하고 당신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라. 결코 그들에게 모욕적인 말이나 욕을 하지 말것이며 그들 누구와도 말다툼 같은 것으로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것이 체포 전의 당신의 마지막 행위가 될지도 모르며 당신은 그런 식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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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군도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5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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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적분에 골몰하던 대학생에서 바로 장교가 된 것은아니다. 나는 그전에 6개월 동안 억눌린 사병 생활을 했다. 나는 그때 굶주린 배를 안고라면 항상 누구에게나 복종할 용의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을 지푸라기만도 못한인간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피부를 통해 실감했다. - P248

악한 짓을 하기에 앞서 인간은 먼저 그것을 선이라고 믿어야 하고 자기 행위의 합법성을 찾아야 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맥베스」에서는 정당화가 약하다 양심이 그를 괴롭히기때문이다. 그리고 이아고는 어린 양과 다를 것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악당들의 상상력과 정신력으로는 불과 열 사람 정도의 사람도 제대로 죽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이데올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 그것은 사악한 일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요한 장기간에 걸친 강인함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이론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자신의 악행을 은폐하게끔 도와주고, 비난과 저주를 듣는 대신 칭찬과 존경을 듣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종교 재판관은 그리스도교로, 침략자는 조국의 찬양으로, 식민주의자는 문화로, 나치스는 인종으로, 자코뱅파(초기와 후기의)는 다가올세대의 평등과 우의와 행복으로 무장을 했던 것이다. - P266

인간은 악과 선 사이에서 일생 동안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 동요한다. 그러나 악의 한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선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곳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악행의 밀도, 혹은 그 정도, 혹은 권력의 절대성에 의해서 일단 한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그는이미 인류에게서 떠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로의 복귀도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268

20세기의 우리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할 잔혹 행위가 무엇이며, 들추어내서는 안 된다〉는 〈낡은 것>이 무엇인지를 수십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규명해 둘 의무가 있는것이다!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억압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 악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서 그것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슬그머니 허리춤에 숨겨 둔다면, 그 악은 앞으로도 수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악인들을 징벌하지 않고 또 그들을 비난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비겁한 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은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정의의 온갖 원칙을 앗아 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그들은 <무관심한> 세대로 성장하겠지만, 결코 <교육의 부족>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비겁한 행동이 한 번도 이 땅에서 처벌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자기들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쾌하고 또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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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전집 4 : 비극 1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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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Crossing Guard 의 한 장면을 연상케한 대사.
죽은 후 기념비로 남게 된 줄리엣. 그 뒤를 오필리아가 이었으니, 하나로는 충분치 않았나보다.

내 마음의 납 바닥은 땅 위에 날 붙잡아 꼼짝도 못 하게 해. - P15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 P64

그녀의 조각상을 순금으로 건립하여 베로나의 이름이 잊히지 않는 한 변함없이 정절 지킨 줄리엣의 모습보다 더 높이 쳐주는 인물은 없도록 할 것이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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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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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다시 읽음.
처음 읽었을 때 보다 좋다. 곱씹어가며 읽어야 제 맛임을 알게해준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았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다면 이렇게 표현해 낼 수 없었을 듯하다. 하루 날 잡아 정리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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