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방
조에 예니 지음, 이창남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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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방. 조에 예니 장편소설. 이창남 옮김.

첫눈이 내린다. 공원 벤치에 두 노부인이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앉아 있다. 박제된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서로의 따뜻함을 나누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한기에 몸을 내맡기고 있어서 그런지 추위마저 잊고 있다. 노부인들 곁에 놓인 벤치에 앉자 그들은 무뚝뚝한 눈길로 바라본다. 아마도 나를 방해꾼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여기 앉아 떨어지는 눈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라고 구태여 변명하지도 않는다. 땅 위에서 두텁고 부드러운 층을 이루지 못하고 곧 녹아버리는 눈, 그 때문에 더욱더 기다려지는 다음 눈송이,
땅에 내려와 아직 녹기 전의 그 짧은 순간들, 당신들과 함께 여기에 앉아 온 땅이 하얗게 뒤덮이기를 기다릴 거라고. 세상을 하얀 층으로 뒤덮는 눈, 눈들을 ……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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