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푸른 이파리가 드바노프 옆으로 가볍게 떨어져 내렸다.
나뭇잎의 가장자리는 이미 누렇게 변해 있었다. 자기 생을 다 살고죽어 대지의 평안으로 돌아간 것이다. 늦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진한 이슬과 황량한 스텝의 길이 시작되는 때다. 드바노프와 고프네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구름 끼고 낮아 보이게 했던 태양의 흐릿한 힘이 사라져 버려 하늘은 더 높게 보였다. 드바노프는 지나간 시간에 애수를 느꼈다. 그 시간은 계속해서 길을 잃어버린 채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인간은 같은 자리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남아 있는 것이다. 드바노프는 왜 체푸르니와 체벤구르의 볼셰비키들이 그토록 공산주의를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공산주의는 바로 역사의 종말이며, 시간의 끝인 것이다. 시간은 자연에서만 흘러갈 따름이며, 인간에게는 슬픔만 남아 있기에.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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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티티치는 초원으로 걸어 나가 몸을 녹이려고 태양을 마주보고 누웠다. 그는 최근 부르주아 쥬진이 살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 고독한 바퀴벌레가 한 마리 있어서 그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야코프 티티치는 바퀴벌레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었다.
바퀴벌레는 그 어떤 희망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존재했지만,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인내하고 끈기 있게 살았는데, 바로 이것 때문에 야코프 티티치는 바퀴벌레를 소중히 대했으며, 심지어는 남몰래 바퀴벌레를 닮으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그 집의 지붕과 천장은 낡고 허물어져 야코프 티티치의 몸으로 밤이슬이 떨어져 내렸다. - P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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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으며, 태양은 가난한 땅 위로 떠올랐다.
드바노프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평평한 장소를 따라 걸어가는 단조로운 움직임 때문에 그의 의식은 축소되었다. 드바노프는 지금 자기 심장이, 부풀어 오른 감각의 호수의 압력으로 끊임없이 전율하는 둑과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감각은 심장에 의해 높이 올라갔다가, 이미 완화된 사유의 흐름으로 변하고 난 후, 심장의 다른 면을 따라서 흘러내렸다. 하지만 둑의 위로는, 인간에게 관여하지는 않지만 인간 안에서 값싼 급여에 선잠을 자곤 하는 바로 그 문지기의 경비 불꽃이 항상 타오르고 있었다. 이 불꽃 덕분에 가끔씩 드바노프는 부풀어 오른 감각의 따스한 호수와, 그 둑 너머, 자기 속도 때문에 식어 버린 사유의 긴 흐름이라는 두 공간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드바노프는 자신의 의식을 살찌우지만, 또 제동을 걸기도 하는 심장의 작업을 따라잡을 수 있었으며, 행복해질 수 있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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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너 괴로운 일은 없니?"
"없어요." 양아버지의 습관에 익숙해진 사샤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자기의 의혹을 이어 가며 자하르 파블로비치는 말했다. "모두 반드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모두 살아야만 해요." 아버지의 슬픔을 조금 이해하면서 사샤가 대답했다.
"뭘 위해 살아야만 하는지, 어디서라도 읽은 적 없니?"
사샤는 책을 덮었다.
"살면 살수록 더 잘 살게 될 거라는 말을 읽었어요."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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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찌르듯이 아팠다. 흡사 심장을 뒤집은 다음 서투른 손놀림으로 저며 내는 것 같았다. 자하르 파블로비치는 거대하고 흡사 무너져내릴 것 같은 자연에 의해 짓눌린 저 먼 곳으로 철길을 따라 떠나던 프로슈카의 작고 여윈 몸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자하르 파블로비치는 분명한 사상도, 말의 복잡성도 없이, 자신의 인상적인 감각의 따스함 하나만으로 생각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던 프로슈카의 애처로움을 보았으며, 프로슈카나 그의 교활한 삶과는 동떨어져 작동하 - P76

는 철도도 보았다. 그러고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슬픈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름도 없는 자신의 슬픔에 애통해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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