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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너무 낯선 나 - 정신건강의학이 포착하지 못한 복잡한 인간성에 대하여
레이첼 아비브 지음, 김유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7월
평점 :
📖 내게 너무 낯선 나
작가: 레이첼 아비브
옮김: 김유경
출판: 타인의사유 @hbls_editor #도서지원
"왜 어떤 사람은 정신질환을 앓고도 회복되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이를 마치 자신의 '커리어'인 양 지니고 살아가는가?"
이 물음은 이 책 안에서, 그리고 이 책 밖에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계속 울릴 물음일지도 모른다.
왜 누군가는 회복되고 왜 누군가는 계속 지니고 고정되며 사로잡혀 살아가는거? 혹은 왜 그렇게 보이는가?
내가 나를 지칭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이름을 지닐때 그것들은 어떤 영향력을 갖는가?
약이 답인가? 아니면 자신을 찾는 것이 답인가? 아니, 애초부터 답이 뭐지?
책을 읽으며 나오는 수많은 물음에 물음을 얹고, 답에 답을 얹으며 읽어나가게 되는 이 책은 사실 큰 영역에서 보자면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야기로 되어있으며 이름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칭하는 형태를 가진 것, 내가 가진것 혹은 보유한 것 혹은 매여있는 것에 대해 이름이 생길때 우리는 모두 그 이름에 매이게 된다. 붙잡히게 된다 그 거대한 이름 속에서 헤메이게 된다.
질병의 이름을 지칭당하고 그 증상들을 정의하는 것 아래에 놓이게 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들은 거기에 매인다고 이 책에서는 쓴다. 그런데 나는 이게 꼭 아이들에 한해서만 그러하고 질병에서만 그러할 것이란 생각은 도무지 들지않는다. 그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매여있는 영역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 수록 매이게 되는 바깥의 판단, 신념, 정보, 환경....들은 어떻게 내면화 되어 자기자신이 되어가는가?
하지만 더 나아가서 그런 신념들만이 전부인가? 우리의 뇌, 호르몬, 신체는 완전한 영역에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영역에 있어 모든 방법이 있다. 다만 어떤 것에 매일떄.... 그것이 환자이든 의사이든 세상이든 간에, 어딘가로 "끌려감" 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때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만 같다.
내 이야기의 길을 잃을 때애, 그리하여 그러한 것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 아래(누구의 판단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불필요한 이야기에 다가가게 될때, 다른 영역의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가 다시 짜일 때 사람들은 다시금 길을 잃으며 엉킨다. 레이도, 바푸도, 나오미와 하비도.... 더 나아가 이 책을 쓴 레이첼 아비브도 그것을 느꼈기에 "이야기"와 이름에 강세를 찍는다. 하지만 이것에 강세를 찍었다고 해서 정답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벗어나기 위함이라 외치며 그것에게서 탈출 할때, 또 다른 고리에 갇히게 되므로, 레이첼 아비브도 그 사실을 이 책에서 천천히 이야기한다.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서,
정신건강의학은, 현대에서는 증상, 형태, 수치화 가능한 것, 증빙 가능한 것을 믿는다. 그건 매우 편리하다. 보험에서도, 경제에서도, 모든 면에 있어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안심을 준다. 그러나 그럼으로서 사람들의 이야기는 통제 가능한 것으로 변환되고 그 안에 갇혀버리고야 만다. 그 바깥에 있는 이야기는 묵살되며 잊혀지고 버려지며 남루하게 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바깥에야 말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사람보다 수치를 존중할때 우리는 편안해할 것이 아니라 수치를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이상하게 변했다고 느낄 때 그 전으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회복하고 싶어하는, 치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맞고 틀림의 영역은 어떨 때는 명백하고 어떨 때는 희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고 그림의 사이에서 가늠하고 짐작하고 이야기를 만듦으로서 이야기를 잃고 만들고 붙잡는 과정들을 반복한다. 이야기는 서서히 쇠퇴한다. 그리하여 길을 잃는다. 이야기는 사라지는 듯 하다. 혹은 망가지거나 없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거기에 있다. 그것은 단지 이야기를 잃어버리는 이야기로 축약될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 그마저도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모두가 해야 할 것은 이야기를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이든 간에 타인이 그 이야기가 어떻다고 말하건 간에. 수없이 자기연민을 연습하고 삶을 연습해가며 살아가는 건 언제든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