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와 나는 재수 없는 일을 겪거나 누군가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 슬픈 감정이 차오른다고 느껴질 때면 우리만의 ‘정화의식’을 가졌다. 각자 침을 세 번 뱉고, 삼십 초 동안 숨을 참았다. 손을 잡은 채 눈감고 열까지 셌다. 열을 센 다음, 동시에 눈을 뜨면 우리가 완전히 깨끗해졌다고 믿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셈이라고. 우리 중 누구도 상하지 않았다고. 만약 누군가 먼저 눈을 뜨거나 늦게 눈을 떴다면 다시 감았다. 둘이 동시에 눈을 떠야 완전히 깨끗해지는 거라 생각했다. 동시에 눈을 뜨기 위해 자꾸만 눈을 감아야 했다. 눈을 감고 열을 세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 열 번의 다른 호흡이 열 번의 같은 호흡이 될 때까지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결이 같은 호흡을 나누면서 깨끗해지길 꿈꿨다. 우리에게 일어난 나쁜 일들을 씻기고 태우고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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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 위고 / 2020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읽는것에 비해서 기억할 수있는 능력 부족
그래서 메모도 해보고 독서노트도 쓰보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지금도 갈팡질팡
그래도 이것저것 그냥 해보면서 어느 것이 나에게 맞는방법인지를
찾아보는 중
그래도 읽지 않는것 보다 읽는것이 낫고
쓰지 않는것 보다 쓰는것이 낫다는걸 아니까
오늘도 읽고 쓰고 기억하려한다
마무튼 메모다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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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흘 내 빈소를 지키다 병원에 상복을 반납하며 서글픔과 후련함을 함께 느꼈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가 부끄럽지는 않았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 세상 누구도 내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는 반발심이 들었다. 동시에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무언가 의미 있고 따뜻한 말을 해주길 바랐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를 간병하는 동안 나 역시 인간관계며 경조사를 거의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다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보낸 화환이었다. 플라스틱 꽃바구니 아래 길게 늘어진 흰 띠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 외에 어떤 정보도 적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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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은 형용사로만 이루어진 문장 같았다. 가볍게 흔들리고, 흔들리다 떨어질 것 같고, 사라져도 문제될 것 없는 존재. 미옥은 세상을 꾸미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꾸밈이 필요 없는 곳이라면 미옥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되리라. 나는 엎드려 턱을 괸 채로, 내 앞을 서성이는 불안정함을, 소리 없이 가득한 음악을 감상하는 게 좋았다.
미옥은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법도 없었다. 문제가 생겨도 ‘그게 뭐, 별일이라고?’ 말하고는 웃어버렸다.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웃어─, 버렸다. 웃음 뒤에 따르는 것들─멋쩍음, 짧은 적막, 달라진 공기, 몸의 들썩임, 허전함, 씁쓸함─마저 웃음과 함께 버렸다. 마치 버리기 위해 웃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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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본질은 약한 척이다. 약함을 인정하는 일. 당신이 나를 돌본다면 나 역시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겠다는 서약도 포함된다. 귀신에게 내 약한 목덜미를 보여주어 귀신의 공격 의지를 잃게 만들어야 했다. 기도를 하는 중에 대문 쪽을 바라보면 감나무 이파리들도, 시멘트 바닥도, 기어가는 개미 떼도, 내가 신은 어른 슬리퍼도, 귀신을 향해 맞잡은 두 손도, 밤의 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어둠을 지배하는 신을 향한 내 믿음은 오래 이어졌다. 훗날 내 기도가 귀신을 향한 서원(誓願)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서늘해졌다. 내 오랜 서원으로, 삶에서 뭔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죽은 혼에 대고 중얼거린 어린 날의 기나긴 기도, 그 시간이 마당 구석에 켜켜이 쌓여 내 그림자를 이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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