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어린 수녀님이 속세의 친구에게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관심을 끌었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얘기였다. 남동생이 어찌나 고약하게 구는지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왜 하필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 비관도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세상엔 속 썩이는 젊은이가 얼마든지 있다, 내 동생이라고 해서 그래서는 안 되란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뭐관데……’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동생과의 관계도 호전이 되더라고 했다.
‘왜 내 동생이 저래야 되나?’와 ‘왜 내 동생이라고 저러면 안 되나?’는 간발의 차이 같지만 실은 사고(思考)의 대전환이 아닌가. 나는 신선한 놀라움으로 그 예비 수녀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 막내딸보다도 앳돼 보이는 수녀님이었다. 저 나이에 어쩌면 그런 유연한 사고를 할 수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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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모든 터널에 끝이 있는 것처럼 그 시간에도 결국 끝은 있었다. 우연히 닿은 곳이 목적지가 아니어도, 우회해서 도착하더라도, 빛나고 소중한 무엇이 있었다. 어두운 것이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경험했던 청춘은 추종이었고, 꿈을 있는 힘껏 부풀리는 것이었고, 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누군가는 그것을 이루지만, 또 누군가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시절이었다. 청춘이라 말하고 인생의 봄이라 믿지만, 또 그렇게 봄 같지 않았던 시절을 그렇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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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이 울음을 삼키며 꾸역꾸역 밥을 다 먹었다. 금남이 남겨놓은 쪽지가 필요했다. 항상 웃음 가득한 그 분의 한마디가.

매운 음식 할 때 손이 얼마나 에린지 몰라. 고춧가루가 살에 닿으면 몇 시간이 지나도 쓰려. 오늘은 에리고 아픈 건 내가 다 할 테니. 먹는 당신은 해피하기만 하슈. 해브 어 나이스 데이 혀고!

큰 눈망울에서 결국 눈물이 톡 떨어졌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서툰 손으로 수능 도시락을 싸주던 아버지가. 이런 목소리로 전화하면 왜 코맹맹이 소리가 나냐고. 울었냐고. 병원에서 무슨 말 들었냐고. 빙빙 둘러 물어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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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양쪽에 나란히 줄 서 있는 길, 모두 불이 꺼진 상가들 틈에서 노란빛이 새어 나왔다. 노란 은행잎들이 단정한 한옥 기와지붕 위에 곱게 쌓여 있었다. 그때 은발 머리를 집게로 잘 올린 70대 정도의 할머니가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콩알만 한 진주귀걸이를 한 그녀의 입가엔 많이 웃어 생긴 주름이 다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종소리가 들렸다. 운명을 만나면 종소리가 들린다는데 밥솥 위에 딸랑딸랑 흔들리는 추 소리가 종소리처럼 머리를 울렸다. 밥 냄새와 섞여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종이에 글을 쓰며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의 모습이, 좋았다. 깨끗하게 잘 닦인 진열장에 곱게 포장한 도시락을 칸칸이 올려놓는 주름진 손이 애틋해 보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올려 간판을 보았다. 달빛에 환히 비치는 간판은 보고만 있어도 따뜻했다. 맛나 도시락…. 맛나 도시락? 이건 그때 간호사가 준 도시락집…? 정이가 뒷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날카롭고 각진 은박지가 느껴졌다. 사각형으로 잘 접힌 은박 호일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조심스럽게 펼치자 흰 종이에 쓰인 글자가 보였다.

이렇게 눌러 담은 고봉밥을 먹고도 배가 고프다면 또 오슈. 리필 가능. 언제든 웰컴! 그럼 씨 유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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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땅에 사는 누구나처럼 지극히 한국인스럽게 살았다. 정신없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혀 가는 대로 허겁지겁 먹었다. 정신이 없는 상태란 사실 굉장히 위험한 것인데 우린 그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그게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
건강한 삶에 필요한 시간과 여유? 다 사치스런 얘기였다. 내 먹을거리에 최소한의 신경을 쓰는 게 사치처럼 여겨지는 삶, 내 건강을 지켜줄 단 한 시간조차 확보할 수 없는 삶… 이 자체도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건데,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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