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는 건 결핍과 욕망의 스위치를 잠깐 끄고 생명력을 충전하는 것. 잡념을 지우고 새로운 저장장치를 장착하는 것. 쓰라린 일을 겪고 진창에 빠져 비틀거려도 아주 망해버리지 않은 건 잘 수 있어서다. 잠이 고통을 흡수해준 덕분에 아침이면 ‘사는 게 별건가’ 하면서 그 위험하다는 이불 밖으로 나올 용기가 솟았다. 잠은 신이 인간을 가엾게 여겨서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탐하는 사람은 상처를 재배열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자다. 당신의 피를 내 쪽에 묻혀 희석하려는 욕망. 만약 내게 저들이 앉은 테이블에 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먼저 내 인생의 찢어진 페이지 몇 장에 대해 들려줄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지켜볼 테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상처받는 순간을. 기억과 기억이 만나 상처를 조율해나가는 동안 얼굴에 드리워지는 무늬들을 보고 싶다.
옥상 위를 걸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여덟 걸음이면 완성되는 산책. 누군가 함께한 적도 있었지만 혼자일 때가 많았다. 작은 발이 작은 발의 임무를 다하는 시간 동안 별을 보았다.옥상에서 보면 골목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고작 이 층 높이였는데도 훤히 보였다. 비스듬히 쌓아놓은 연탄 더미들, 쓰레기를 담아 내놓은 봉지, 깨진 화분, 취한 남자의 휑한 머리통까지 다 보였다. 옥상에서 초연함을 배웠다. 가까이에서 멀어지는 연습을 했다. 널어놓은 빨래에 기대는 연습. 눈이 네 개가 되는 연습. 잠자리처럼 보는 연습. 슬픔을 층층으로 재조립하는 연습. 그런 걸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그 노트를 꺼내 누운 채로 끄적였다. 기진이 죽은 뒤 새로 생긴 습관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면 다 적었다. 나는 그 노트에 진실만을 적기로 맹세했다. 그게 아무리 형편없고 엉망이고 낯이 뜨거울 정도로 날것의 문장이라고 해도 진실이라면 다 적었다. 처음에는 나의 진실이란 원래 그렇게 부끄러운 것인가 싶었다. 쓴 것들을 다시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죽기라도 해서 누가 이 기록들을 보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쓰고 나면 그 즉시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나는 겨우 참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게 진실이 맞다면, 나는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게 내게는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아침 8시30분이면 요가매트를 펴고 유튜브 요가를 켜놓고 20분정도 요가를 하는 나에게 요가의 넓은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책일본에서 패션 일을 하다가 뉴욕에서도 패션 일을 하려고 무작정 미국행을 택해 물가 높은 미국 뉴욕에서 5불짜리 요가를 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언어의 장벽에 부딛치며 요가 강사가 되기까지의 힘든 과정 성취감 희열 아픔을 그려놓은 책언어의 장벽이 얼마나 힘든것인줄 알기에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