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제주 르포 18세기 지식 총서
정운경 지음, 정민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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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조선시대 제주도에 대한 견문록 같지만 실상은 제주도들의 표류에 대한 취재기와 같은 성격이다. 정운경이 조선시대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제주도에 대한 기록을 남기면서 표류민으로 떠돌다가 돌아온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물론 이 외에도 조선시대 제주도에 자라던 감귤에 대한 자세한 기록도 같이 남겼다. 이 기록중에서 표류민에 대한 기록은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고  배의 시설도 좋지 못하던 시절에 항해란 하늘의 뜻에 맡겨야하는 운명적인 여행이었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풍랑이나 해류를 만난다면 이는 하늘의 뜻이 되는 것이다.


이들 뜻하지 않은 결과로 표류민들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으로 흘러들었지만 멀리는 지금의 베트남까지 갔다온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이 역의 표류민들도 존재하고 조선도 이들에 대한 처리 절차가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조선에 남아 있는 기록들이 많지 않고 오히려 해외에 존재하는 기록들이 더 많이 있다고 한다. 일본 같은 경우는 표류민들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와 기록을 남겨서 현재 조선 표류민들에 대한 역사적 조사를 일본의 자료와 비교하며 검증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의 표류민들이 겪은 경험들에 대해서 체계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운경이 남긴 기록은 중요한 사료일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그 당시 외국인들의 풍습과 모습들은 견문이 좁은 조선 사람들에게는 기록이나 묘사할 단어조차 부족했을 것이다. 더욱이 표류민들로 떠돌았던 이들 중에서 글을 모르는 어부들이나 교역인들은 입으로 그 내용을 전할 수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기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 게다가 중국으로 표류했던 경우는 북경을 제외한 강남 같은 곳은 통역할 통역관이 부족하여 그들에 대한 정확한 자료 작성이나 기록사항들이 부족했던 걸 생각한다면, 문자로 지금 남아 있는 기록 자체가 얼마나 커다란 보고가 아닐 수 없다(일본의 경우는 임진왜란 으로 인해서 일본으로 끌려간 유민들의 후손들이 통역관을 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또한 역으로 생각하면 그 부족한 능력으로 인해서 지금 남아 있는 사료의 빈곤함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8세기의 중국은 청의 안정과 인구 증가로 인해서 상업이 발전하면서 뱃길을 통한 상업의 확대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는 그만큼의 위험 부담의 증가와 표류민의 증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조선으로의 많은 표류민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조선의 태도는 외부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쇄국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그저 절차에 따른 표류민들을 돌려보내기 바빴다. 이는 더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문화와기술 발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무시했다고 볼 수 있다.


정운경의 책에는 탐라라는 섬에 대한 또다른 글들이 존재한다. 그 수려한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이는 남자들이 바다로 나가서 고기 잡이를 하다 죽는 경우가 많고 남겨진 여자들은 대부분 혼자 힘으로 살아 남아야되는 척박한 환경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그의 글에 대한 제주도에 대한 여행기는 읽을만하지만 제주도민들에 대한 자세한 생활상이나 그 시대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책의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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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들 洪秀全과 太平天國 이산의 책 44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양휘웅 옮김 / 이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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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광대한 벌판을 달리던 기상과 용맹성은 자금성 안에 갇히면서 서서히 퇴화되고 한족의 시스템속에서 자신들이 이룩한 과거속의 영광에 안주하고 말았다. 청 제국은 명제국을 무너뜨리고 야만적으로 그 제국을 건설하였지만, 한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로 남는다. 


청제국이 건설되고 늘어나는 인구와 식량의 생산 확장을 위해서 더 넓은 땅들이 개발되고 객가는 이주를 시작하고 한족도 마찬가지로 이주한다. 이들은 늘어나는 인구를 위한 식량을 위해서 더 넓은 땅들을 개척하고 산속 깊은 곳으로 땅을 찾아 이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내지인과 마찰 그리고 그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하여도 중앙정부로부터의 소외된 삶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홍슈취안이 객가로서 주변부적 소외계층에서 벗어나고자 과거시험을 통해 신분상승의 꿈을 꾸지만 세번의 낙방으로 결국 좌절된다. 이 과정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탐독한 책이 성경이다. 물론 이때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고,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책도 존재했다. 결국 태평천국의 근간이 된 핵심 사상은 기독교이고, 어찌보면 홍슈취안은 제 2의 예수이며 자칭하고 신의 대리인이 되기 위해 시기를 기다리던 목자와 같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이 홍슈취안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게 했고, 유교적 관습에 깊숙히 빠져 있던 인민들이 개종을 하게 되었을까. 청조의 고달픈 현실-부패한 관료들과 무능한 시스템-이 그들을 피안의 세계로 도망가게 했는지, 소외된 객가로서 구원을 원했던것인지. 아니면 내세에 평등을 약속하는 천국을 그리원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설교-그가 전도한 사람들과 함께-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하나의 기적을 행하기 위해서 행군을 시작한다. 이 행군은 모반이고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변혁과 반란의 세력이다. 그들이 정한 난징은 복명운동을 원하던 이들이 꿈꾸던 또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고, 개종한 태평천국의 인민들을 위한 천도이기도 하다. 


태평천국의 인민들이 쫓기며 긴장정에 올랐던 역사는 훗날 공산당의 대장정을 예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산당은 대장정을 마치고 하나의 중국을 건설했으며, 태평천국의 난은 난징에 천도를 건설한다. 하지만 하나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건설한 천국은 끊임없는 청국과의 대결로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는 천왕을 지키던 충직한 네명의 왕들이 하나둘씩 천국으로 올라간 뒤 결국 천와의 주변에 남은 친인척들 때문일수도 있고, 청에 끝까지 조력자로 남은 충직한 유교의 지도자들 때문일수도 있지만, 어느 쪽에서나 외척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천왕은 이 모든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올라가 버렸다. 결국 남은 이들은 그들의 세계가 도래하는 것을 볼 수 없었고 말이 없는 하늘을 원망했을 수도 있다.


한족의 오래된 유교 시스템 속에 안주하고 거대한 땅덩어리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었던 만주족의 한계이던, 방만하게 운영되던 부폐한 청조의 관료시스템이던 기울어가는 운명속의 청조에게 태평천국의 난은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 난을 진압하고 어떤식으로 해석하던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쓸쓸히 저물어가는 석양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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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하라 한국경제 - 이권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제개혁 플랜
박창기 지음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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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한국의 경제는 요소경제, 이권경제, 혁신경제, 공공경제로 나뉜다. 이는 저가가 자신의 이론을 펼치기 위해서 임의로 나눈 방식인데,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 이권경제다. 이권경제는 담합과 비리로 얼룩진 어두운 경제의 이면이다. 이는 대다수의 침묵과 묵인하에 기생세력과 권력세력간의 밀착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창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기존에 국민들이 생산한 이익을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서 착복하는 과정이다. 이런 결과는 부의 소수 집중만을 위한 결과를 낳고 대다수의 소외된 국민들에게는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들 세력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경제는 쇠퇴하고 성장은 악화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심각한 저성장 단계로 들어섰다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저성장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동안 구가하던 성장동력들이 점점 노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로머가 이야기한 지식의 전파로 인해서 새로운 지식을 갖춘 혁신경제가 등장하여 이를 메꾸지 못한다면 쇠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여기서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한다면, 아마 저성장의 미래를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이 버블경제가 붕괴된 후에 결국 재기를 못하고 무너진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여기에 일본의 자체적인 원인 신성장동력의 부재도 한몫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 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던 한 국가에서 지속적인 성장의 패턴을 끊는 계기는 결국 부동산 버블이었다. 이는 이권경제에 가까운 모습이다. 어떠한 부도 창출하지 못하고 단순한 렌탈 이익만 추구하던 결과는 어떤 모습을 갖는가 알 수 있다. 한국도 이런 문제점이 현싯점에 급격하게 들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정권과 앞으로 정권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볼 수 없다는게 더 안타깝운 현실이다. 


IMF를 계기로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한 빈부격차는 보수진영에서 조차 경제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적절한 조치에 있어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자신의 이권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어떤 광의의 협의가 힘든 부분이다. 결국 보수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채 미온적인 반응으로 그들의 현위치를 지키고 싶어하고 바닥에 있는 민중들은 더 많은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경제 덩치는 예전처럼 높은 성장율을 구가할 수 있는 구조를 벗어났다. 그나마 정착된 대기업들만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이익구조를 바꿀 생각은 없어보인다. 아니 골목상권까지 침투하고 있는 자식 챙기기의 기술을 시전하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게 새로운 혁신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단지 새로운 먹이감을 포식하기 위한 먹이사슬의 다양화밖에. 진정 이나라의 젊은 사람들의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할까 고민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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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두 도시 이야기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46
찰스 디킨스 지음, 신윤진 외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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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전후, 영국은 위험하고 불안했으며 프랑스는 절망하고 분노했다. 소설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희망이 있었고, 동시에 절망이 있었다. 그 어느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혼돈의 시기였다. 안개속을 달리는 우편마차 안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뿌연 안개속에서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처럼, 도처에 출몰하는 산적들과 승객으로 가장한 산적들이 숨어들 수도 있는 시대였다. 서로를 의심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 


프랑스 혁명은 피와 고름으로 얽룩지고 딱지가 내려앉은 상처를 들어내고 그 상처를 치료하는건 고통스러운 일과 같다. 혁명이란 어느 것이 순수한 혁명의 피인지 어떤 것이 혁명을 더럽히는 고름인지 알기 어렵다. 그 혼돈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이 혁명의 과정이고 그 순순한 피가 완전히 소비 되었을 때 완성되는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일 것이다. 

혁명이 대중의 염원이고 숭고한 정신적 승리라면 그 속에는 분명 혁명을 더럽히는 개인적 피의 복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길로틴으로 대변되는 성스러운 처형대는 처형의 고통을 줄이고자 발명되었지만, 피의 향연을 위한 도구로서 유명해졌다. 이 같은 모순속에서 민중은 자신이 당하던 분노를 복수하기 위해서 나섰고, 혁명이 끝난 후 귀족과 왕족들은 다시 반혁명을 일으켜 복수했다. "빵 대신 케익"을 외치던 마리앙뜨와네트는 목이 잘린 후 창끝에 메달려 길거리를 떠돌았지만, 프랑스 왕정이 누리던 호사속에서는 민중의 머리가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던 시기다. 그들은 개보다 못한 삶을 살았고, 살아남는 것이 고통스러워 여자가 아이를 낳아 대를 잇지 않기를 바랬다.

이 소설의 커다란 줄기속에 등장하는 인민들은 너무나 천박하고 야비하며 저열하다. 피의 복수속에서 즐거워 하며 미래에는 어두운 사람들 같이 보인다. 귀족들 또한 인민들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들을 인민의 희생은 신이 내린 권리였다. 어느 누구도 바닥에 깔린 인간적 절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속에서 카던이 선택한 사랑은 절망을 뚫고 시대를 넘어서려는 하나의 절규적 몸부림이다. 그 사랑이 위대한 것은 주어진 숙명을 거부하고 미래를 투영하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가고자 하는 사랑인 것이다. 어느 것도 깨끗하지 않고 어느 것도 善이라 부를 수 없는 혼돈의 순간에 지고의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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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여인의 죽음 이산의 책 2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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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사를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모호한 부분들이 매우 많다. 특히 어떤 지역은 생명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 2000칼로리를 월등하게 넘어서는 부유한 지역이 있고, 어떤 지역은 거기에 극단적으로도 미치지 못하는 빈한한 지역이 있었다. 근대사에 나타나는 중국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최저 생계수준에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넓은 대륙을 볼때 결코 일반적인 하나의 모습으로 파악되지 않고, 역사적 사료도 많이 남아 있지가 않다. 다양한 환경이 존재하고 상대적 빈부차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의 명말,청초의 모습은 중국 근대와 얼마나 달랐을까. 근대의 풍경 속에 존재하는 중국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말에 확실한 사실 하나는 하나의 국가가 무너지면서 등장하는 대혼란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장다이를 통해서 저자가 보여준 풍요롭던 강남의 삶은 하나의 제국이 무너지면서 그 파국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지를 보여준다. 장다이는 부유한 집안과 풍류를 즐기던 상위 계층으로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에 비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탄청현은 극적인 대조를 보여준다. 환경 자체가 빈약하고, 이 빈약한 환경에 각종 재해가 들이닥쳐 그나마 힘겨운 현실에 곤궁함을 가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탄청현의 일지에 등장하는 지진과 가뭄 그리고 메뚜기떼에 의한 농작물의 피해등은 그나마 힘든 자연환경에서 더욱 가중되는 고통을 보여준다. 게다가 명말이라는 시기적 상황은 권력의 횡포와 함께 찾아오는 민중의 반란도 있다. 이 민중들은 결국 도적떼가 되고 그들의 동료이며 가장 연약한 존재인 민중들을 착취한다. 이런 악순환속에서 힘있고 돈있는 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더욱 잘 지켜내고 더 부유해질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도적떼 이외도 만주족의 침입으로 인한 약탈은 마을 자체를 초토화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약탈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마도 청조가 들어서면서 자신들을 약탈했던 만주족에 다시 복종해야하는 굴욕을 당했을 것이다.


명말의 혼돈속에서 무너지는 관리체계는 민중들의 생활고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특히 지대와 세금, 공역등은 힘없고 줄없은 가장 밑바닥 민중들에게 할당되고 이를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굴레 같은 멍에였다. 게다가 이를 피해서 도망간다고 해도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던 시스템에서는 평생 낙인 찍인 도망자가 되거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착취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올가미에 묶이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왕여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탄청현의 자연환경속에서 빈한하게 살았으며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달아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시 돌아왔고, 그 남편으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비련의 여인이다. 당시 여성은 전족을 하던 풍습으로는 외지로 도망을 가서 떠돌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며, 머물수 있는곳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가 간 왕여인은 그 시대의 가장 잔혹한 희생자일지도 모르겠다. 자연환경마저 혹독했던 탄청현에서 빈한한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했고, 아이도 없었다. 왕여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댓가는 상당히 혹독하고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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