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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세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평점 :
그리스도교 교인들에게 기도는 빼 놓을 수 없는 습관이고 그만큼 소홀해지기 쉬운 활동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기도를 그리 습관적으로 하지 못하는 편이다. 소득 없음과 세금 문제로 사업을 한 달 만에 폐업하고 며칠을 가슴 졸여 온 터라 기도에는 그리 집중하지 못했다. 묵주기도를 하고 나도 내 문제를 꼭 안고서 그것을 하느님께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하느님께 내려놓기만 하면 될 일인데.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마저 하느님께 일임한다면, 그것은 게으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되 어쩔 수 없는 일들은 하느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가 어떻든 하느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께서 결정하신 일들은 결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일으켜 세우시기도 하지만 어둡게도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삶은 꽃길처럼 평탄하고 쉬운 삶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느님을 알았던 성인들, 성자 예수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 그리고 성자 예수님까지 그런 삶을 살아오셨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느님께 불평하거나 그분을 저버리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으셨다. 이들은 현세에서 위험과 수난을 몸소 겪으며 살았지만 사후에는 영원한 하느님 곁에 머무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장점은 직분에 따라 기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자와 사제, 혼인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기도해야 한다. 이들의 기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다. 수도자는 수도 공동체, 사제는 교회, 혼인한 이들은 가정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 외 평신도의 경우 이들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지만 또 그만큼 하느님과 가까이하는 데 제약이 있다.
무엇보다 더 아름다운 점은 저자가 무려 신부님이 아닌 여성분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스위스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영성이론가, 신비가였다. 개신교 가정에서 자라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녀는 『세계의 심장』으로 잘 알려진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신부님과 인연이 깊은 분이었다. 저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음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으로 이렇게 심오한 기도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 나갔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의 깊이는 단순히 년수만으로 가늠될 수 없는 것 같다. 신앙연수가 아무리 길어도 기본적인 교리조차 모르는 경우가 흔하고, 비록 입교한 지 얼마 안 됐지만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큰 경우도 많다. 후자의 경우 제아무리 어려운 내용의 신앙 서적도 형광펜 들고 밑줄 그어가며 열심히 탐독한다. 내가 바로 후자다. 성경도 이렇게 읽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아쉽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느님을 더 이상 ‘그저 소원 들어 주는 마법사’로만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나의 욕구보다 공동체의 욕구로,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관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기도의 삶은 비록 어렵고 답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나의 시야를 넓혀줌과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킨다. 그리고 나의 좁은 시각이 아닌 하느님의 무한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