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안에 굳건히 머무르십시오
요셉 라칭거 지음, 방종우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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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즉위하실 당시의 저는 가톨릭 신앙을 접하기 몇 년 전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하느님 곁으로 가시기 전까지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기셨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의 경우 교황님 사후에 발간된 유언인지라 더욱 의미가 큽니다. 띠지를 보면 이 책은 학문적 성과의 완성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훨씬 이후에 가톨릭 신앙을 접한 저지만 가히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글을 편집이나 수정 없이 모아놓은 데다 미공개 원고도 함께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똑 떨어지게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만일 수정이나 편집이 있었다면 이해는 쉬웠겠지만 교황님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교황님은 생전에 독일인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 책은 그 오해를 풀어 줄 마지막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끝으로 저술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셨듯이 교황님 역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점은 유다교의 최고 랍비인 아리 폴거와 주고받은 서간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대체로 그리스도인들은 타 종교를 비하하거나 배척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해 볼 때 대단히 파격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교황님이 하느님 외의 다른 신을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오로지 단수의 개념이고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은 결코 철회되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전에 철회라는 행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때에 따라 적절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과 인류의 역사 사이에서 계약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계약의 역사는 인간이 저지른 실패를 포함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 집중하며 읽었습니다.

왜 제가 이 대목에 집중하며 읽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는 하느님이 못 미더울 때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른이 넘어서도 번듯한 직장이 없고 늘 집안일에만 매달려 있는 상황이어서 대체 나는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습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이렇다 할 경험은 없어서 과연 이런 내가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불안합니다. 이렇다보니 막연히 기도만 하고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에게도 일과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제가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것도요. 그러나 저에게는 일반적인 사람들(능수능란한 업무능력, 원만한 인간관계 같은 것들 말입니다)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는 걸 그분께서도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하느님께서는 그분이 정한 때에 우리에게 응답을 들어 주신다고 하셨으니 저는 그저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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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전을 멈춰 세운 이유 - 원전을 멈추게 한 재판장 이야기, 2024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히구치 히데아키 지음, 강혜정 옮김 / 생활성서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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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원전의 위험성은 고사하고 원전의 존재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 원전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이었다는 이야깁니다. 뉴스에서 간간이 원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봤습니다만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견해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원전을 포함한 각종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는 가톨릭 신앙을 접하면서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원전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 원전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 보수와 진보 등 모든 이들을 위해 썼다고 밝혔습니다. , 원전에 대해 잘 몰랐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원전에 대해 전혀 몰랐던, 문과 출신의 재판장이었습니다. 원전을 멈춰 세운 장본인으로서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왜 원전을 허용할 수 없는지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저자는 원전에 반대하기 위해 전문적인 영역까지 파고들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냥 간단한 논리로 원전에 반대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재판장으로서 공부를 정말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림과 도표, 설명, 각주 등을 추가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정리해 두었습니다. 일본에 정말 많은 원전이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인근에도 원전이 많은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원전에 반대하기 위해 스스로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과제가 생깁니다. 그 첫걸음은 원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겠지요. 원전의 위험성을 잘 알게 된 이상 더는 침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자께서 우리에게 원전이 위험하니 원전을 가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판결했듯이 말입니다. 책의 말미에는 원전 운전 금지 소송에 대한 판결문이 실려 있으니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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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유니버스 - 고전 마니아가 사랑한 세기의 여주인공들
송은주 지음 / ㅁ(미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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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받아 읽자마자 여성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지난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박산호 선생님의 소설의 쓸모와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쓸모에 등장하는 책들은 모두 여성 작가들이 쓴 책만으로 소개되어 있다면 이 책은 고전 속 여주인공들을 다룬 이야기다(작가가 남성인 경우도 있다). 둘 다 재미있으니 시간 내서 꼭 읽어보길 바란다.

드레스는 유니버스속에 나오는 각기 다른 여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발칙함과 당돌함, 영리함과 사악함을 지니고 있었다. 순종적이거나 고상했던 당시의 여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자는 그녀들을 변호하되 무작정 옹호하거나 찬양하지는 않는다. 어떤 소설은 출간되었을 때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었다. 당시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그녀들의 행동은 파격적이고 다채로운 반란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분명히 최애 여주인공이 하나쯤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내가 매력을 느낀 두 명의 여주인공이 있는데 제인 에어의 제인 에어와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 대시우드다. 에마 보바리와 엘렌 올렌스카 등 다른 여성들도 각자만의 톡톡 튀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누굴 꼽아야 하나 속으로 갈등하다가 두 명을 꼽은 것이다. 제인 에어이성과 감성은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다.

요즘 소설이 주는 매력에 푹 빠졌다. 사정이 사정인지라 돈 버는 법, 재테크 하는 법, 자기계발 하는 법을 다룬 책들을 읽어야 마땅하지만 나에게는 소설이 더할 나위 없는 인간관계 지침서가 되어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그랬다. 인간관계에 영원한 이별이나 영원한 인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인물들과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중학교부터 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 듯 했고 고등학교 때도 책 읽는 게 더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성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내내 손가락질을 받아 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계문학 속의 아름다운 풍경과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은 온갖 폭력으로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녹였다. 긴 기간 동안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책을 읽고 있으면 일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책은 나에게 사람보다 더없이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고전의 두께는 어마어마해서 가히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저자 선생님은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는다고 한다. 나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몹시 산만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선생님의 개성 넘치는 서평으로 여주인공들의 매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했던 제인 에어이성과 감성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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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희망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에르난 레예스 알카이데 지음, 이재협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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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면을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올해로 즉위 10주년이라고 나옵니다. 2013년이면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을 때인데 벌써 그리 되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교황님의 존재만 알았지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라고만 여겼습니다(무려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시던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톨릭 신자가 되고 나서는 교황님이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정말 중요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은 모든 인류에게 10가지 부탁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인류라 함은 가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비신자들도 모두 포함한다는 뜻입니다. 10가지 모두 전 지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당면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학대 문화의 근절, 공동의 집 보호, 혐오의 악순환을 끊는 언론, 공동선에 헌신하는 정치, 전쟁 근절, 이주민과 난민, 여성의 사회 참여, 가난한 나라, 건강, 하느님을 내건 야만적 행위 금지 등은 신자가 아니어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과제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소외된 자, 가난한 자, (학교)폭력 피해자로서 교황님의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강한 어조에 그만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록 실제로 알현한 적은 없습니다만 만일 뵐 기회가 생긴다면 남미 언어를 배워서 그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집니다. 단 한 순간도 주류 문화에 속할 수 없었던 제게 교황님의 초대는 그저 감동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교황님의 초대를 받은 이상 저도 마냥 앉아서 얻어먹기만 할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공동의 집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공동선을 위해 지금 바로 움직이는 게 교황님의 초대에 응하는 일이며, 나를 초대하신 교황님께 보답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느님을 체험하는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희망의 초대장을 받아들고 뛰어나갑니다. , 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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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세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황미하 옮김, 신정훈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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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교인들에게 기도는 빼 놓을 수 없는 습관이고 그만큼 소홀해지기 쉬운 활동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기도를 그리 습관적으로 하지 못하는 편이다. 소득 없음과 세금 문제로 사업을 한 달 만에 폐업하고 며칠을 가슴 졸여 온 터라 기도에는 그리 집중하지 못했다. 묵주기도를 하고 나도 내 문제를 꼭 안고서 그것을 하느님께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하느님께 내려놓기만 하면 될 일인데.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마저 하느님께 일임한다면, 그것은 게으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되 어쩔 수 없는 일들은 하느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가 어떻든 하느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께서 결정하신 일들은 결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일으켜 세우시기도 하지만 어둡게도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의 삶은 꽃길처럼 평탄하고 쉬운 삶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하느님을 알았던 성인들, 성자 예수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 그리고 성자 예수님까지 그런 삶을 살아오셨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느님께 불평하거나 그분을 저버리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으셨다. 이들은 현세에서 위험과 수난을 몸소 겪으며 살았지만 사후에는 영원한 하느님 곁에 머무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장점은 직분에 따라 기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자와 사제, 혼인한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기도해야 한다. 이들의 기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동체를 향한 헌신이다. 수도자는 수도 공동체, 사제는 교회, 혼인한 이들은 가정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 외 평신도의 경우 이들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지만 또 그만큼 하느님과 가까이하는 데 제약이 있다.

무엇보다 더 아름다운 점은 저자가 무려 신부님이 아닌 여성분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스위스 최초의 여성 의사이자 영성이론가, 신비가였다. 개신교 가정에서 자라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녀는 세계의 심장으로 잘 알려진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신부님과 인연이 깊은 분이었다. 저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음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으로 이렇게 심오한 기도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 나갔다.

이렇게 볼 때 신앙의 깊이는 단순히 년수만으로 가늠될 수 없는 것 같다. 신앙연수가 아무리 길어도 기본적인 교리조차 모르는 경우가 흔하고, 비록 입교한 지 얼마 안 됐지만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큰 경우도 많다. 후자의 경우 제아무리 어려운 내용의 신앙 서적도 형광펜 들고 밑줄 그어가며 열심히 탐독한다. 내가 바로 후자다. 성경도 이렇게 읽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아쉽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느님을 더 이상 그저 소원 들어 주는 마법사로만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나의 욕구보다 공동체의 욕구로,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관계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기도의 삶은 비록 어렵고 답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나의 시야를 넓혀줌과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킨다. 그리고 나의 좁은 시각이 아닌 하느님의 무한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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